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잠 Dec 27. 2023

잘 보여야 할 사람과 좋은 사람은 다르다.

아부가 득세하는 조직생활을 경험하며

자기가 잘 보이고 싶은 상사를 좋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는 남직원이 있었다. 반대로 자기가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직원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와 함께 일하는 동안 그는 무거운 몸집만큼이나 엉덩이가 무거웠다. 그가 일을 하지 않아 내가 그의 업무를 하고 있는 날이 많았다. 나는 그보다 선배였고, 그보다 나이도 적지 않았지만 잘 보일 필요없는 평범한 여직원이었던 것일까.


"아유~ 자꾸 도움을 받아서 어째요." 

그는 종종 나에게 '말로는'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의 엉덩이는 항상 무게감을 유지했다.


'웬일로 내 집게를 뺐어서 고기를 구우지?' 내가 놀랐을 땐 옆의 남자 과장님이 남직원에게 눈치를 줬을 때였고, '웬일로 커피를 타겠다고 재빠르게 움직여서 커피를 쏟지' 내가 놀랐을 땐 본부장님과 팀장님이 방문했을 때였다.


"OO 씨~"

"옙!"

상사의 부름이 있을 때도 그의 엉덩이는 가벼웠다. 그는 상사와 수다를 떨며 순회를 간다는 명목으로(순회를 둘이 같이?) 자주 자리를 비웠고 역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그의 상사는 그가 없는 회식자리에서 그를 안될 놈이라고 지칭했단 거다.

 "걔? 어차피 본사 본부 못 가~"

자기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부하 직원이었다. 하지만 상사인 부역장에게 그 남직원은 어차피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


그 자리에서 부역장은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어디가 아픈지를' 소개했다. 그가 하는 말의 99%는 언제나 가십이었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았다. 저 직원은 얼굴이 늙어 보인다, 저 직원은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듣기 힘들었던 내가 그에게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그는 동료를 위해서 점심을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던 나에게 '컵라면 같은 거 먹으니까 병에 걸리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 적도 있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물었다. 그 말은 너무 심하시지 않았냐. 그는 대답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에게 나는 잘 보여야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본질을 눈치챈 나는 일찌감치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직원은 신기하게도 '자기가 아부해야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회생활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다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어서, 알면서도 그렇게 짝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거라고, 사회생활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자기 자신을 다독이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짝사랑들은 그가 잘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옮긴 조직에서 나와 비슷한 여직원을 만나 갈등을 빚고 또 조직을 옮겼다는 소문이다. 회식 때 만난 그는 여전히, 입이 가벼워 둥둥 떠다니는 그 부역장이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칭찬하고 있었다. 사람을 보는 눈은 다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이상하게 자신이 아부하는 사람에게만 평이 후한 사람들을 보면  그 모순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박정희를 이해할 수 있다며 현실주의자인 척하던 독서모임장도 떠오르고. 그 좋은 노력을 약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에도 같이 썼다면, 진짜 좋은 인간이 될 수 있을 뻔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독특한 사람 취급받는 나는 나답게, 독특하게(?) 생각해 본다.

[약자에 대한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의 진정한 인품이 드러난다.]

여기가 군대인지 회사인지 혼란스러운 나는 어서 그들이 전역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속연수가 긴 직장은 이직에 걸림돌이 되는 직장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