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근속연수가 긴 직장이 최고의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려 N년간 회사에 몸을 담으며 이직을 시도하게 되자 재직 중인 회사의 장점은 최고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근속연수가 긴 것은 회사가 나를 자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하지만 내가 회사를 탈출하고자 할 때는 다른 의미가 된다. 근속연수가 긴 것은 탈출하기에 불리한 직장이라는 의미이다.
최종면접에 가면 임원들은 묻는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도 좋은 직장인데 이직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말의 표현 형태만 달라질 뿐 면접에 가면 열이면 열 ‘이직 사유’에 대해 묻는다. 그들의 시선에서 안정적인 회사를 두고 이직하려는 사람에게는 ‘그 장점을 박차고 회사를 옮길 만한 무언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될 놈’이었다면 이직 사유에 대해 잘 대답하고 최종 합격을 했겠지만(혹은 잘 대답하지 않아도 최종 합격이 되었겠지만), 나는 안 되는 놈에 속했다.
나의 대답에 면접관은 공감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면접관의 반응도 이해가 된다. 근속연수가 긴 안정적인 회사에서 N년간이나 직장 생활을 했던 사람을 굳이 신입사원으로 채용해야 할까?
평생 다닐 마음이 있다면 최고의 직장, 평생 다닐 마음이 없다면 창살 없는 감옥
운이 없게도 나에게 현재 직장은 평생 다닐 마음이 없는 곳이다. 불편한 진실은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더라도, 결국 정년까지 다닐 것이라는 것이다. 희망퇴직의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는 직장인이 보았을 때는 배부른 고민이겠으나, 배가 부른 것이든 고픈 것이든 어쨌든 대부분은 잘리지 않고 ‘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발전 없는 삶을 견디어 내는 무기징역수’가 확정된다. 보통 용기와 결단력이 아니고서는 탈옥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안주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속을 계속 옮겨 다니며 권태를 극복하거나, 인맥을 잘 쌓아 비교적 편한 부서로 옮길 기회를 얻은 뒤 그곳에서 평생 말뚝을 박거나, 일을 하지 않아도 잘리지 않는 회사인 것을 이용해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재테크 도사가 되는 등......! 다양한 무기징역수들을 보아온 바 있다.
보수적인 직장은 비정상을 싫어한다. 하지만 보여주고 싶다.
변화를 원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에 지원한 나는 어쩌면 비정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안주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구태여 힘들게 도전하고 애쓰는 나를 면접관이 긍정적으로 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보다 나이 어린 신입을 뽑는 것이 편해서? 나보다 직장이 없는 친구들이 더 간절함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결혼 임신 출산 시기가 임박했을 것 같아서? 나는 또 이직을 할 것 같은 사람이어서? 내가 보유한 경력이 물경력이어서? 아니면, 그냥 운이 없어서?
언젠가는 그 이유에 대한 정확한 통찰을 얻을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모범 무기징역수’보다 조금은 정상이 아닌 나에게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