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여파로 젊은 세대의 취업 절벽이 극심하다. 이런 시기에 공기업이라는 직장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하는 자책도 든다. 하지만 애프터 코로나 못지않게 '애프터 취업'도 중요한 문제다. 몇십 년이 될지 모르는 취업 후의 삶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취업 절벽이 창창한 젊은 세대를 점점 더 '무작정 입사'라는 선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무작정 취업이 간절했던 이유
나는 10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인턴’이라는 이름으로 1년간 인턴 생활을 했다. 그 당시 <미생>이라는 웹툰이 연재되고 있었고, 그 웹툰의 주인공 장그래를 나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 원하는 직장에 정규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슬픔은 못내 서러웠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했던 직장의 정규직 채용 필기시험에 낙방한 날, 회사 책상에 있는 짐을 하나씩 정리하며 서러운 눈물을 삼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취업이 간절했다. 대학 졸업 후 학자금 대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했고, 월세를 내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규직 시험에서 수없이 탈락하자 돈을 벌며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싫었다. 돈 걱정 없이 취업에 필요한 공부만 해서 빠르게 정규직이 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에게 이입했는지 모른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자’,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은 자’가 바로 비정규직인 내 모습 같았다.
기재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의견은 사양이다. 바둑과 알바를 겸한 때문도 아니다. 용돈을 못주는 부모라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 아프니까. 열심히 안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해서인걸로 생각하겠다. -웹툰 <미생> 중에서-
정규직이 되면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학자금을 갚고, 월세를 낼 수 있었지만 인턴은 아니었다. 인턴이 끝난 후 나는 백수로 돌아가 모아논 돈으로 얼마간을 더 '미생(未生)'으로 살았다. 그래서 나의 간절함은 '무작정 취업'으로 흘렀다. '받아만 주시면 어디든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른 채. 내가 어디로 가야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탐색은,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이라던 그 시기 나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취업을 해도 완생(完生)은 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여러 회사를 거치며 세 번의 인턴 경험을 쌓은 끝에 정규직이 되었다. 묻지마 지원 끝에, 비교적 합격 난이도가 낮은 공기업의 문을 열고 들어갈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합격’의 가치는 ‘내가 그곳에 메여서 놓칠 수 있는 다른 기회비용’의 가치보다 높아야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정규직 첫 월급은, 기본급 170만원대에 실수령 160만원대였다. 청년인턴을 하던 회사의 월급과 실수령액이 똑같았다. 물론 인턴 시절 갖지 못한 정규직이라는 안정성을 얻었다. 그럼 그 안정성이 주는 가치가 모든 단점들을 상쇄하고 남을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