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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Jan 31. 2024

역피라미드 조직인 공공기관에서 MZ로 산다는 것

아직도 제가 왜 이걸 해야 하죠? - 너 밖에 할 사람이 없는데 어떡해.

"제가 왜 이걸 해야 하죠?"

MZ에 포함되긴 하는 것 같다. M세대도, MZ는 MZ니까.


"너도 안 한다고 해!"

나의 반복되는 푸념에 친구들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너도 안 한다고 하면 되잖아. 왜 너만 하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네가 호구라서 그런 거 아냐?'라는 말처럼 들려 나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나 빼고 다 엄마 아빠뻘인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 사람들과 똑같이 안 한다고 해? 나까지 안 한다고 하면 공백이 생기는데 어떻게 해!"

안 한다고 해서 안 할 수 있으면 그게 고민이겠니. 직장 생활해본 친구들과 대화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난 후에도 나는 화가 났다. '맑눈광 하고 거절해'라는 식의 생각 없는

조언이나 들을 것 같았으면 멀리까지 친구들을 만나러 갈 필요도 없었는데, 하고 그날의 만남을 후회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들의 직장과 나의 직장은 한참 다르다. 그들은 내가 일하는 조직보다 한참 젊은 조직에서 일하고 있었다. 대기업과 어린이집이다. 조직의 인력이 역피라미드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공공기관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그렇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구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신규 채용은 점점 줄어들지만 기존에 채용되어 들어온 많은 인구들은 그대로 정년을 맞이한다. 역피라미드 조직인 공공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당신이 중년이 되어도 막내인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내의 일을 분담할 신입 사원을 기다리는 일이 10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


당신도 이제 잡다한 일을 위임하고 더 성장하고 도약해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어르신 직원들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여전히 젊고 잡다한 일을 해야 하는 그냥 직원일 것이다. 퇴직을 앞둔 어르신들이 한참 배우고 성장해야 할 중년의 직원에게 좋은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은 보기 힘들었다. 주로 내가 들은 말은 이런 말이었다.


유형 1(자기 계발 금지형)

"대학원? 이 회사 다니면서 대학원까지 공부해서 뭐 하게? 우리 회사는 빽 없으면 그런 거 못 들어"

유형 2 (혼자만 먹냐 버릇없게형)

"요즘 젊은 직원들은 커피숍 다녀오면서 자기 먹을 커피 하나 딸랑 사 오던데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 커피 맛있어? 우리도 조금만 따라줘 봐."

유형 3 (눈이 안 보여형. 단골 유형.)

"나 요즘 눈이 안 보여서 (공문, 문서를) 못 읽겠으니 네가 좀 봐줘. (일은 네가 다 해줘)"

유형 4 (할 줄 몰라형. 컴퓨터부터 자잘한 사무실 전선 정리까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자녀 양육과 교육은 성공적으로 마치셨다함)

"나 이런 거 (컴퓨터) 할 줄 몰라. 못하겠어."

유형 5 (이별이 오지 못하게형. 굉장히 많이 봤음)

"나보다 일찍 다른 소속으로 가지 말아요. 내가 다른 데 갈 때까지는 가지 말고 같이 일해요."

유형 6 (내로남불형. 나는 안 된다고 말한 직후 너는 되냐고 바로 말하는 당당함)

"나는 몸이 피곤해서 다른 직원 쉬는 날 대체 근무는 절대 못해. 다음부터 대체자들 구해지면 쉬고 없으면 쉬지 마. 근데 내가 쉬는 날 대체 근무는 네가 좀 해줄 수 있을까."



기성세대 직원들의 입장에서도 물론 할 말이 많을 것이라는 걸 안다. 기성세대들이 젊은 직원이었을 때, 그들은 선배들을 잘 대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급이 있는 선배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조직 관리 등 더 골치 아프고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어 선배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퇴직을 목전에 두고 한숨 돌리며 사소한 일들을 후배들에게 위임하려고 하니, 요즘 젊은 직원들은 말한다.

"제가 왜 이걸 해야 하죠?"

그 황당함을 함축했기에, 이 대사가 밈처럼 퍼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비슷한 대사를 한 적이 없었을까?


"근데 왜 항상 저한테만 이런 일이 돌아오는지 모르겠어요. 누구도 저를 직접적으로 괴롭히신 적은 없는데, 다들 못 한다고 하니까 항상 저에게 괴로운 일이 돌아와요. 어제는 친구들 만나서 상담했다가 '너도 안 한다고 해'라는 말 듣고 화내고 왔는데요.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불과 얼마 전 이렇게 말했었다.


젊은 직원들의 숫자에 비해 너무 많은 선배님들을 대접하게 되어 버린 MZ 직원들은 그들 나름대로 화가 부글부글 쌓여 있다. 자기 계발을 크게 하지 않아도 근속승진으로 가장 높은 급수까지 올라간 선배들과는 다르게, 우리 세대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데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단순한 마우스 클릭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선배들이 밉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덧붙여 매뉴얼을 만들어도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내가 출근하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마감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3명의 선배직원들 중 일을 진척시킨 사람이 단 한명도 없어 출근날 출근 하자마자 부글부글 끓는 건 내 몫이란 게. 이해되지 않는다. 할 줄 아는게 없다던 그들 3명은 나도 아직 시작 못한 연말정산을 재빠르게 처리한 뒤, 그 파일을 바탕화면에 아름답게 깔아두고 퇴근하셨다.


왜 저 혼자서, 다른 젊은 동료들도 없이 다수의 선배님들을 감수해야 할까요? MZ는 묻는다.

너도 후배 받으면 똑같아질 거라고? 슬프게도 그럴지도 모른다. 나쁜 건 빨리 배우는 법이니까.

그렇게 될까 경계하는 마음으로 쓴다.


기성세대가 많은 직장에서 일하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선배들 노하우를 배울 회가 상대적으로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서다. 쌩신입시절, 아무것도 몰라 답답했을 나에게 자상하게 일을 가르쳐주던 선배님들 기억한다. 하지만 그 시절이 지난 후로는, 발전없는 기나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느덧 더 나이가 드신 선배들을 만나고 그들은 이제 젊지만은 않은 내게 말한다.


"나는 몰라. 젊고 똑똑한 OO씨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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