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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Apr 26. 2024

좋아요 좋아요 좋소기업 비켜! 좋좋공이 있다.

좋좋소 작가도 못 믿을 것 같은 좋좋공의 현실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PTSD를 이끌어냈던 웹드라마 '좋좋소(좋아요 좋아요 중소기업)'을 봤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장님부터 무능력한 직원들, 열악한 현실까지.......나는 생각했다.


누가 우리 역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었어?


역장은 좋좋소 정필돈 사장을 닮았다. 업무 인수인계 시간, 계모임 온 아줌마처럼 '어제 만난 미친년 CCTV 좀 보라'며 신이 나 있다. 하지만 역장과 차장은 CCTV를 돌려보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공익을 차장 책상에 앉혀 일을 시키는 중이었다. 그들과 업무교대를 하는 내가 출근하니 그들은 우리 호구 왔네~라는 표정으로 일을 넘긴다. 어젯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뭘 하다가 이제?


나는 차장에게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묻는다.

'근데 이 CCTV를 꼭 봐야 하는 건가요?'

차장은 대답한다.

'아니~ 역장님이 보래서 보는 거지.'


CCTV를 신나게 감상한 역장은 급 소재를 바꿔 수다 삼매경이다.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기 싫은 나는 금고에 있는 동전을 꺼내 동전계수기에 넣고 동전을 센다. 드르르르륵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꽤 시끄러운 편이지만 헛소리를 듣는 것보단 기분이 좋다.


역장은 퇴근 시간이 20분이 지났는데도 집에 안 가고 있다. 젊은 사내부부 걱정을 시작한다. 여자가 몸이 약해서 애기 갖는걸 계속 실패해서 걱정된단다. 본인은 결혼도 못했는데 다른 직원들의 생식 능력을 걱정한다. 걱정도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히스테리 부리는 날에 비하면 조금 낫다. 12개 문항을 자체적으로 점수를 매겨 역장에게 제출하는 일이 있었는데, 역장이 그걸 보고 부글부글 끓더니 왜 3점이나 되는 점수를 막 매기냐고 급발진을 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3점 체크한 문항 1개밖에 없는데...그걸 바꾸면 될까요?'

그 자리에 없는 역무원이 3점을 무더기로 준 것을 보고 애먼 사람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역장, 생리하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남자도 생리를 하나? 여자보다 더 여성화된 남직원들이 많은 곳이 좋좋공이다.


3점을 무더기로 줘 역장을 급발진하게 만든 역무원은 하이브 방시혁을 닮은 우리 역 최고 빌런이다. 그는 역장에게 체크리스트 작성법에 대한 설명을 들어놓고, 다른 역무원들에게 해당 업무를 인계하지도 않은 채, 이면지들 사이에 체크리스트를 끼워 놓고 퇴근했다. 이면지 사이에 숨겨져 있는 체크리스트를 발견한 내가 관심법을 발휘해 점수를 매겨서였는지, 역장의 마음에 마구니가 낀 것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어떤 부역장은 방시혁을 닮은 그의 뇌에 아무래도 병이 있는 것 같다며 진지하게 말했다. 자신이 반년 간 지켜보며 느낀 증상들은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빌런은 부역장의 업무 지시에 급발진을 하며 부역장에게 욕설을 한 바가 있다.


그러나 부하 직원이 상사를 괴롭히는 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목격한 막장 드라마를 역장에게 보고했으나 역장을 비롯한 공기업 조직의 태도는 역시나 예상대로, '나만 아니면 돼'였다.


그는 평소 업무를 소홀히 하고 다른 직원들과의 협업에도 비협조적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조로 일하지 않는 역장에게는 그 이야기가 쇠 귀에 경 읽기와도 같았다. 역장은 말했다.

'그냥 무시해~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왜들 그래.'


하지만 그가 누락한 업무들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관리역에서 누락된 점검부를 시스템에 입력하라는 지시가 왔다. 초등학생도 배우면 할 수 있을 수준의 일상 업무인데....그 기본적인 업무가 그 차장의 출근일에 대거 누락되어 있었다. 출근해서 한 번만 입력해 주면 되는 일인데, 빌런은 거의 한 달 치 점검부를 누락했다. 중간에 한번 내가 대신 입력해 주고 업무에 신경 좀 써달라고 인수인계했지만, 그 역장처럼 남의 말을 뇌에 거의 담아두지 않는 편이었다.


결국 그 일은 또 내 일이 됐다. 이런 하루하루 반복이 <좋좋공>이었다.





사회초년생일 때는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50대쯤 되면 노화로 뇌기능이 떨어져서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순진했던 시절을 지나, 직장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서 나는 좋좋공-좋아요 좋아요 공공기업-의 진실을 알게 됐다. 그들이 CCTV도 찾아볼 줄 모르고, 클릭하고 저장하면 되는 초등학생 수준의 일도 하지 않는 이유는.......그냥 '평생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평생 다른 직원에게 일을 미루고 살았다. 자신보다 입사가 늦은 직원들에게, 때로는 자신의 상사에게, 인턴에게, 공익근무요원에게, 심지어는 근로장학생에게 일을 미루고 자신은 그것을 할 줄 모른다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OO아 나 그거 안 하고 계속 너한테 의지하면 안 될까? 농담이야~'

종종 술에 취해 출근하는 차장의 카톡이었다. 몇십 년을 역무원 월급을 받았지만 역무 업무를 모른다고 하고, 술에 취해 출근한 어느 날에는 휴대폰에 울리는 전화마저 받을 줄 모른다고 말하는 차장이었다.

매달 필요 비품들을 구입하는 일을 혼자 하던 나는 다른 직원들과 그 일을 돌아가면서 하자고 제안했다. 작년부터 나의 제안을 러 차례 모른 척하던 다른 직원들은, 역 카톡방에 부역장이 글을 올리자 처음으로 반응이란 걸 했다.


방시혁 닮은 빌런이 물건을 구입할 차례가 왔다. 하지만 역시나. '할 줄 몰라' 모드로 상사를 괴롭혔던지, 그는 업무에서 빠졌고 상사가 학을 떼었다. 결국 그들은 또 일을 하지 않게 됐다.  




역장은 <좋좋소> 사장처럼 직원들의 이야기 따위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공익보다 직원이 업무 대해 몰라도, 툭하면 에 취해 출근해도, 상사에게 '지랄하지 말라'설을 하더라 '그냥 무시해'도 된다는 태도다. 인은 해까지만 버티다 정년퇴직금 챙겨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가 유일하게 귀기울여 듣는 것은, 앞서 퇴직금을 수령하신 임금피크제 선배님의 말씀 뿐이다.


오늘은 근로 장학생이 필요한 역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 역은 근로 장학생들이 폐급 직원보다일을 잘해주어서, 올해도 와주었으면 하는 기대 있었다. 하지만 역장은 직원들의 의사는 묻지 않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근로장학생 자리만 차지하고 필요 없어. 우리 역은 받지 마. 안 받을래.'

 근로장학생 없어도 상관 없다. 하지만 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묘하게 반발심이 들었다. 

진짜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서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가 누구인지 생각은 해보셨나요? 되묻고 싶었다. 

없어도 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좋좋공>에 많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퇴근 후 조용히 순댓국에 맥주를 들며 마음을 가라야 했다.


"여기선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냥 받아들여요."라는 좋좋소의 대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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