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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n 16. 2017

굴업도, 넌 누구니?

원더풀 굴업도에서의 하룻밤

굴업도掘業島

 섬의 형태가 사람이 엎드려서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 뜻을 풀이해보면 파내고 뚫는 일을 업으로 하는 섬이라는 뜻이다.

해질 무렵의 개머리언덕

 어쩌면 굴업도의 독특한 지형을 만드느라 수고한 거센 조류와 파도, 바람을 위해 지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일매일 이 아름다운 섬을 위해 온몸을 부딪히고 바람으로 깎아내는 노력을 해왔으니 말이다.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가는 길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굴업도는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섬이지만 덕적도에서 배를 한번 갈아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쉽게 가기는 어렵다. 게다가 하루에 단 한번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가는 배편이 있다. 훌쩍 떠나기엔 다소 번거롭고 인적이 드문 섬이다. 굴업도는 아직 크게 알려진 여행지가 아니다. 나 역시도 섬 이름이 낯설어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백패킹 마니아에게 굴업도는 일명 '별보기 스폿'으로 유명한 섬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직 대중적인 여행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굴업도가 가진 큰 매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굴업도로 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별게 없었다. 직장인 친구 둘이 떠나는 여행에 내가 초대받아 얼결에 함께 떠난 셈이었다. 내가 해야 할 준비라고는 배를 예매하는 것뿐이었으니 놓치기엔 아쉬운 기회였다. 게다가 쏟아지는 별을 구경한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쏟아지는 별만으로 충분한 여행이 될 거란 기대가 컸다. 

 굴업도는 정말 작은 섬이다. 총 7가구가 거주 중이고 그 흔한 마트도, 식당도 없다. 마을로 가는 길이 한 곳이어서 트럭과 여행객이 함께 걸어 다니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적어도 마을 안에서 길을 잃을 일이 없다는 건 매우 좋은 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배에서 내리면 민박집 트럭들이 예약 손님들을 태워가는데 트럭을 타고 구불구불한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가면 굴업도의 코끼리 바위를 구경할 수 있다.  


신선놀음을 즐기다
평상에서 즐기는 컵라면의 맛

 고민이 넘쳐나고 수도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정해진' 코스를 따르는 여행은 마음 편한 일이었다. 굴업도에서는 다른 코스를 선택할 여지가 없다. 백패킹을 한다면 개머리 언덕으로, 민박을 한다면 민박집으로. 그리고 그 외의 부분들은 크게 다를 게 없다. 매 끼니를 챙겨 먹고 자연을 구경하고 잔잔히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즐기는 것이다. 딱히 꼭 봐야 하고 해야 하는 일 없이 바닷가 앞 평상에 누워 신선놀음을 즐겨도 좋다. 이렇게 단순한 여행코스라니!  

 게다가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도 없이 제때에 민박집에서 챙겨주는 식사만 먹으면 된다. 굴업도에서 자란 해산물과 나물로 한 반찬과 매 끼니 바뀌는 찌개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해진다. 문명의 맛이 그립다면 이장님 댁에서 판매하는 4종류의 과자와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구비되어 있다. 나 역시도 이장님 댁에서 사 먹은 빠삐코가 정말 맛있었다.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을수록 고전적인 맛을 선택하는 게 실패할 확률이 낮다. 

 간드러진 바람과 파도소리에 깊은 낮잠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너무 깊은 잠에 빠지느라 제때 섬을 구경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겠지만 쏟아지는 달콤한 낮잠을 포기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어차피 신선놀음을 하고 싶다면 제대로 즐겨야 하지 않을까. 


러닝화 신고 오른 개머리 언덕
해질 무렵의 개머리 언덕

 새벽부터 출발한 여행에 지친 나는 밥을 먹고 한 세 시간쯤 내리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벌써 해가 슬슬 저물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숙소 코앞에 있는 개머리 바위는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말에, 길이 '순하다'는 친구의 말에 개머리 언덕을 올라가게 되었다. 현지인들은 슬리퍼를 신고도 오른다길래 그리 힘든 길이 아닌가 보다 했다. 웬걸! 생각보다 경사가 급한 곳이었다. 초반에는 바위들을 붙잡고 사족보행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러닝화를 신어서인지 더욱 발이 미끄러워서 고생을 했다. 

고생 끝에 도착한 개머리언덕에서

 나의 저질체력을 탓하며 개머리 언덕에 올라가니 사방이 탁 트인 섬의 전경이 펼쳐졌다. 바다 너머 해무에 가려진 섬의 모습까지도 신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용이 헤엄쳐올라올 것만 같은 고요한 풍경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방금까지의 고생이 보람된 순간이었다. 왜 사람들이 바로 이 작디작은 굴업도라는 섬에 여행 오는지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정말 이국적이면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개머리 언덕에서 보는 바닷풍경

 언덕을 내려올 때는 핸드폰 후레시 빛으로 길을 비추며 사족보행으로 걸어 내려왔다. 올라갈 때보다 힘이 배로 들었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다. 다만 그 무거운 짐을 이고 개머리 언덕을 오르내리는 백패킹족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별보기는 다음 기회에....
굴업도를 떠나며

 아쉽게도 우린 굴업도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별보기에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가뭄 끝에 내린 비가 별보기를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비구름이 갇힌 하늘에서는 별을 볼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새벽에 마을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봤지만 역시나 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비를 맞으며 배를 기다리는데 내심 배가 오지 않길 바랐다. 일상과는 너무나 먼 별세계 같은 공간인 굴업도에서 제대로 별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는 조금 늦었지만 굴업도를 찾아왔고 한여름밤의 꿈처럼 굴업도 여행은 아쉽게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덕적도에서 먹은 물회와 파전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어찌나 물회가 새콤하고 회가 쫄깃한지 비가 내리니 그 맛이 배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1박 2일의 짧은 굴업도 여행은 물회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너는 어떤 섬이기에 이리도 작고 둥글며 평화로울까. 너는 누구이기에 하늘 이불에 별들을 수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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