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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12. 2017

미취인들에게 다가온 시련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미아가 되다?!

아니 차장님? 기차에서 내리라니요?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 인생이라더니 여행에서 몸소 겪게 될 줄이야...



 어젯밤은 악몽이었다. 우리의 빌어먹게 큰 캐리어 때문에 차장이 무게 값을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짐을 이고 타던데 왜 우리에게만 무게 값을? 다행히 모스크바 대학에서 공부 중인 숙모 조카와 연락이 닿아 차장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지만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통화를 하고 난 뒤에도 차장은 우리에게 내려서 무게 값을 내고 다시 타야 한다고 했다. 무게 값 내다가 기차가 떠나면 어쩌라고? 시베리아 한복판에 우릴 버려두고 간다는 건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국제 미아가 되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이 아련한 소통의 흔적

 새벽기차인지라 다들 짐을 올려두고 잠을 자고 있는데 우리만 패딩도 벗지 못하고 그대로 앉아서 3시간을 있었다. 심지어 의자 하나는 뚜껑이 열린 상태였는데 닫지도 못하고 그냥 그 사이에 끼여 불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난민의 모습 그 자체였다. 눈치 없이 큰 28인치짜리 캐리어를 그 자리에서 부시고 싶었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엄마의 만류를 무시하고라도 24인치를 챙겼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나는 과거의 일은 빠르게 단념하고 손양과 하라쇼와 함께 기차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갈지 회의했다. 일단 곧 도착할 우수리스크에 내려서 한인민박이라도 가보 자라는 결론까지 내렸다. 그때는 어찌 되든 되돌아가서 다시 여행을 시작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멘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기 최면을 걸었던 거 같다. 

 그림도 그려보고 어플도 켜서 차장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소통이 잘 될 리가 만무했다. 긴 시간 긴장을 한 탓에 손이 덜덜 떨리고 춥고 배고픈데 그 와중에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우수리스크 역을 지나고 그다음 역을 지나고 또 지날 때까지 차장은 기다리라고만 하고 우릴 끌어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3시간쯤 지나니 끝에는 쪼그려서 바짝 긴장한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우리가 옆에 끼고 있던 무거운 캐리어들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침대 위에 있는 짐칸으로 옮겨줬다. 그러더니 어서 자라고 모션까지 취해주는가 아닌가. 역시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우리가 짐을 짐칸에다가 올리면 되는 일이었는데 워낙 당황한 나머지 침대 위에 짐칸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겨우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고 동이 틀 무렵 우리가 있던 칸 20번 침대에도 사람이 들어왔다. 아침이 되고 우리는 기차에서 지낼 짐을 챙기며 아침밥을 준비했다. 지난밤의 악몽을 생각하면 정말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창밖에 보이는 자작나무 숲의 풍경 속에서 우린 따뜻한 인스턴트 메쉬드 포테이토를 먹었다. 음! 짰다. 그래도 맛있었다. 진수성찬이 아니면 어떻겠나 우린 기차를 타고 있는걸.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이 일류인 것이다. 


 기차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약 72시간이 걸린다. 내가 부득불 기차 여행을 가자고 한건 이 길디긴 시간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소비해보고 싶어서였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카드게임을 하든 말이다. 그렇지만 배에서도 느꼈듯 역시 지루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을 먹자마자 바로 트럼프로 원카드 게임을 시작했다. 원카드 5판에 한두 시간 정도는 순식간에 흘러갔다. 20번 사람이 카드게임에 관심을 보이길래 우리는 원카드 룰을 알려주며 같이 게임을 했다. 그렇게 몇 판을 치고 나서 통성명을 해보니 이 친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일하려고 러시아로 넘어온 로마라는 청년이었다. 놀랍게도 우리보다 1살이 어렸고 굉장히 순박한 미소를 가진 친구다. 

화투치는걸 구경하던 로마의 모습

 로마와 인사를 나누자 우리를 구경하기만 하던 다른 사람들도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로마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아즈벡, 끝내 고향을 알려주지 않은 아사벡, 같이 카드는 쳤으나 이름을 알 수 없던 몽골 사람까지. 아사벡은 나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해주기까지 했다. 물론 다 같이 열심히 원카드를 한 덕이었다. 말은 제대로 통하는 게 없는데 각자의 고향도 알고 뭘 하려고 떠나는지도 대충 알아듣게 되는 게 정말 신기했다. 기차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제 앞으로 이틀, 이르쿠츠크로 가기 위한 48시간의 기차여행이 남았다. 벌써부터 기차 칸이 시끌벅적한 게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Tip. 

기차에 있는 짐칸은 침대를 들어 올리면 있는 짐칸과 이층 침대 위에 있는 짐칸으로 총 2개다.(3등석 기준) 24인치 정도의 가방이라면 침대 밑에 두면 되고 그 이상으로 크면 이층 침대 위 짐칸에 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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