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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GunGa May 02. 2018

"수고했어, 오늘도."
그 너머에 있는 것

위로 다음의 것을 꿈꾸고 싶다.

회사가 얼추 안정되자 긴장이 풀린 것인지, 언제나 문제 되었던 체력 때문이었던 건지

올해 봄날은 유달리 계속된 병치레로 무너진 체력을 관리하는 데만 신경을 몰두했다.

정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데에만 집중한 셈이다.


그리고 닷새 전, 독립 후 첫 1년을 머물렀던 자취방에서 약간 더 작고 불편해졌지만

회사와는 가까워진 곳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마치고 4일간의 휴식 동안

이틀은 온전히 쉬었고, 하루는 동네를 산책했다. 그리고 오늘은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 대학생 때는 취업이라는

대체로 정확하고, 노력하면 획득할 수 있어 보이는 미래가 있었다.

그것은 반짝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인 지금, 이토록 미래에 불안해 본 적이 없었다.

적당히 연차를 쌓고, 연봉을 올리는 것 외에 미래의 어떠한 내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회사에 나가 일하겠지. 퇴근하겠지. 퇴근 후엔 자겠지. 돈도 없고 주말엔 지쳐 누워있겠지. 

미래는커녕 고작 일주일의 나를 그려보아도 이 정도뿐이다.


노력한다고 바뀔 것 같지 않은 구조와 오늘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허덕이는 삶 속에서

내가 그동안 좇아왔던 반짝임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장을 찍어내는 듯한 매일의 연속,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칭찬하는 하루들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게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을 살아간다는 것은

동시에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이 즐거웠다면 모르겠다만 대체로 나의 오늘은 늘 피로감이 가득했다.

회색 물감에 분홍색을 더하고 노란색을 더해도 계속 탁한 색이 되듯이

단것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예쁜 것을 보아도 잠시일 뿐 뒤섞이고 난 하루의 끝은 결국 회색.

똑같은 종이에 계속 색을 입혀봐야 탁해지고, 물에 젖어 찢어질 뿐이었다.


나에겐 다음이라는 새로운 흰 도화지가 필요했다.


어떠한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고, 물감을 올리기 전 스케치를 그려보기도 하고.

틀리면 지우개로 고쳐보기도 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갈 도화지가.


아무라 작은 도전일지라도 실패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세대는 주어진 스케치북이 너무도 얄팍하여 감히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고

한 장의 종이에 나머지 삶을 모두 구겨 넣고 있는 것만 같다.




"일단 오늘 살이야 내일도 온다." 같은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하루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

오늘이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듯이 미래가 오늘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서점의 모든 책이 오늘을 위로하려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다는 글을 보았다.

(*의미가 비슷할 뿐 아마 정확한 문장은 아닐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 약간의 왜곡이 있을 것.)

나 역시 그러한 글을 쓰는 주로 입장이면서도 서점에 가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서로가 모두 너무 힘들어서. 힘내, 힘내 하고 모든 문장이 모여 하나의 파도처럼 나에게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소확행이니 스몰 럭셔리니 트렌드 서적 속 '트렌디'하다 일컬어지는 단어들은 어쩜 이리

모두 얄팍해졌는지. 주말 오후의 서점에서 마음이 물에 젖은 휴지마냥 무거웠던 기억이 있다.




오늘을 넘기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는 게 욕심이 되어버린 것 같은 시대지만

나는 당장의 위로, 그 다음의 것을 보고 싶다. 오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은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지

다시 한 번 가계부를 고쳐보았다. 작은 종이를 이어 새로운 도화지를 만드는 마음으로 말이다.


마음속에 피우지 못한 잔불이 아직 남아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간절히 필요한 날. 오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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