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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Apr 17. 2024

3대 200 4주 차: 벤치 하다가 깔릴 뻔했다

나의 헬스 일기

   황천길 직행열차 탈 뻔

   벤치 프레스를 하는 날이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요즘 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어서 벤치 프레스 세트를 채우고 다른 운동도 후딱 해치우고 할 일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시간과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다가 집중력을 잃었다. 가슴 근육이 뽕긋 솟아날 정도로 힘 있게 바벨을 밀었어야 하는 내 팔은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그것만으로도 큰일이었지만 더 큰 일은 내가 최고 무게를 꼽아놨다는 사실이었다. 여태까지 내 기록은 30kg에 머물러 있는데, 32.5kg로 무게를 달아본 참이었다. 2.5kg라는 무게 자체는 작고 귀여워 보이나, 헬스인이라면 이 작은 무게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모두 알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동안 벤치는 (그나마) 잘했기 때문에 당연히 잘할 거라고 믿고 딴생각을 하는 우둔함을 범했다. 바벨은 내 갈비뼈로 무섭게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내 뼈를 강타하기 직전에 바벨을 다시 들어 올렸다. 팔꿈치가, 그리고 조상님이 나를 도운 덕이었다.


   바벨이 몸에 떨어지는 대참사는 막았지만 여전히 난관은 남아 있었다. 놀라서 힘이 빠져 바벨을 봉걸이에 걸지 못하겠는 기분이 들었다. 헬스장에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에 가기 때문에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트레이너가 이런 때를 대비해서 봉에서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준 게 생각났다. 그 방법을 쓰진 않고 결국 힘으로 들어 걸었지만 트레이너가 그런 걸 미리 가르쳐줘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참고로 나 같은 헬린이 여러분을 위해 팁을 공유한다. 혼자 벤치 프레스를 할 때는 양쪽에 마구리를 달지 말고, 바벨을 들어 올릴 수 없을 땐 좌우로 천천히 기울여 원판이 떨어지게 한 뒤에 빈 봉을 들면 된다. 


   바벨을 봉걸이에 걸어두고 일어나 앉았다. 한참을 앉아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원판을 뺐다. 과장 조금 보태서 왠지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부상 없이 난관을 지났고 새로운 삶(?)도 얻었으니 기뻐야 하는데 그보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 새로운 기록 만들 수 있었는데.


   자신만만함은 금물, 욕심도 금물

   너무 자신만만했다. 나 벤치 잘합네- 으스거리며 주의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다행히 이번엔 무사히 넘어갔지만 까딱하면 크게 다칠 뻔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딴생각을 하고, 세트 수 사이에 휴식 시간도 거의 없다시피 하며 빠르게 진행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으레 그렇다. 내가 좀 익숙하다, 잘한다 생각하는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다. 


   비슷한 순간은 운전할 때도 있었다. 자차는 없지만 차를 빌려 드라이브를 가끔 한다. 오히려 왕초보 때는 바짝 쫄아서 주의를 상세히 살피고 조심스레 운전을 하니 사고가 날 뻔하는 위기 자체가 없었다. 되려 운전에 좀 익숙해지니 부주의하게 운전을 하다가 차를 긁어먹기도 하고, 어린이 보호구역인 줄 인지하지 못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조상님이랄지 신이랄지 나를 가호해 준 덕에 무탈히 넘어갔다. 식은땀을 흘리던 순간들을 잊어먹고 또 실수하고 만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라지만 너무 심하게 잊어 먹었잖아.


   욕심이 앞섰다. 빠른 시간 안에 해치우겠다는 다짐도 욕심이었고 신기록을 들겠다는 집착도 욕심이었다. 3대 200에 가까워지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건 좋았지만 최근에 무게와 기록에 매몰됐던 문제가 있었다. 갈비뼈가 으스러질 뻔한 일이 있고 나서는 한풀 가라앉히고 천천히 생각을 좀 했다. 3대 200에 가까워지려던 근본적인 출발은 뭐였지? 나는 왜 매일 헬스장에 나가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꼭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였다. 사람은 여정을 계속하다 보면 처음 마음을 몽땅 잊을 때가 많으니.


   물론 나의 운동에는 여러 생각이 있었다. 기왕 운동하는 거 대단한 무게를 들어 보고 어디 가서 수줍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아주 건강미 넘치는 몸을 만들어서 바디 프로필을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 언젠가 먼 미래에 크로스핏 대회에도 한 번쯤 나가고 싶은 마음...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내 성실함을 시험해 보고픈 마음이었다. 하기 싫은 마음에 맞선 경험이 별로 없다. 각종 합리화를 통해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생활을 접고 정면 타파하고 싶었다. 그 결심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운동이 채택됐을 뿐이다. 


   스스로 성실함을 한 달 정도 입증하고 나니 다른 마음이 앞섰다. 이제 성실함 뒤로 선 욕심과 집착을 밀어내고 새로운 마음을 세워야겠다. 여유를 갖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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