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사랑스러운 거니까
그들은 참 사랑스러워
피아노 레슨을 받고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피아노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온 날이면 어쩐지 기분이 퐁실퐁실 뛰어오른다. 그는 솔직하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표현하는 데 가감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이 싫어한대도 괘념치 않아 보이는 얼굴이 보기 좋다.
그런 얼굴을 갖고 싶었더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이 싫어한다고 말할까 봐, 그래서 내 관심사와 취향이 평가절하될까 봐 벌벌 떨어대는 얼굴은 그만하고 싶었다. 경련이 일어나는 얼굴을 감추려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척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진실이었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걸 굳이 싫어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려고 애쓰는 데에도 좋은 점이 있었다. 나는 누구 옆에 붙여놔도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둥근 모서리를 가진 식탁은 어느 집에 두어도 튀지 않는 것처럼, 나는 모서리가 둥근 식탁이 되어서 여러 사람들과 밥을 나누어 먹고 커피를 마셨다.
먹을 것과 시간을 나눈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었다. 수줍은 사람도 목소리가 기차 화통 같고 끊임없이 자기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가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잘 맞는 성격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네.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우리 잘 맞는 것 같아. 아마 나의 무난함이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사랑스러웠던 건가 봐.
내가 나다운 것에 죄책감 갖지 않기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을 무난하게 좋아하는 시기를 지나서, 내 취향이 곧게 서는 시기가 왔다. 단순하고 깔끔한 모양새를 좋아한다. 그게 물건이든, 햄버거든, 사람이든. 늘 '기본'에 가까운 물건을 산다. 어떤 대단한 수제버거 가게를 가도 치즈버거를 먹는다. 생각이 과히 많지 않은 사람을 좋아한다.
남들이 촌스럽다고 말할지라도 난 치즈버거를 먹는 사람이다. 디테일이 적은 재킷을 사는 사람이다. 단순하게 결심하고 단순하게 행하는 사람이다. 누구의 허락을 맡을 필요도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내 취향을 평가절하한다면 그저 웃으면 되는 것. 누구도 품에 안긴 바 없는 수치를 갖지 않을 것. 이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아빠는 늘 말했다. 겸손해라.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늘 너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라. 그리고 엄마는 때로 나의 미감과 외모에 대한 평가를 끼얹어서 말했다. 촌스러운 사람이 되지 말아라. 너 그런 것 다시는 사지 말아라. 그런 말들과 함께 방을 쓰며 자란 나는 습관적으로 창피함을,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다.
괘념치 않은 얼굴을 한 사람들에 질투가 일곤 했었다. 내가 가져본 적 없는 얼굴을 누군가는 평생 이렇다 할 노력 없이 가졌다는 사실은, 피와 울분이 드글드글 끓는 20대의 어린 이의 눈가를 개울가처럼 만들기도 했다. 어린이와 청춘 사이에 놓여있는 나날에는 쉽게 기쁘고 쉽게 분노스럽다. 그런 감정이 스스로를 찌른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애썼는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한 겹의 껍데기를 벗음으로써 나 또한 괘념치 않는 얼굴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더는 문책받은 바 없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괘념했던 얼굴을 가졌던 시기를 가졌기에 괘념치 않은 얼굴이 얼마나 멋있는 얼굴인지 잘 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멋있는 얼굴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애쓰기. 그게 진짜 내 얼굴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