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쉬려고 사는 건가
가끔 삶이 저를 짓누를 땐 하염없이 걸어 다닙니다. 합, 합, 공기를 베어 물듯 마십니다. 이렇게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사는 건가, 그저 이렇게 숨만 쉬면서. 혼잣말을 하면서 걷는 골목은 조금 외롭고, 적잖이 막막합니다.
어느 날엔 숨을 쉬는 것도 폐에 먹먹한 상흔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뭘 그리워하는 줄도 모르면서 막연히 뭔가를 그립니다. 행복했던 어느 날을 더듬는 건지, 아니면 적어도 언젠가 행복하리라고 자신만만했던 때를 찾는 건지. 이 그리움이 완성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지. 사는 것은 그리움과 상흔이 전부가 아닐까.
요즘은 뭘 써야 하나 생각합니다. 고통스러울 때는 고통스러운 대로, 활기찰 때는 활기찬 대로 기획도 많았고 문장도 많았습니다. 요즘은? 남들만큼 행복하고 남들만큼 불행합니다. '남들만큼', '평균치'라는 말은 일차원적으로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다른 차원의 불안감이 엄습하는 말입니다. 남들만큼만 예민하고 남들만큼만 무디어 사회 속에 섞여 있지만 그게 과연 나의 글에, 나의 본성에 도움이 되는 걸까.
그 생각 또한 폐에 구멍을 냅니다. 숨만 쉬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냥 그런 일기가 아닌, 내가 손으로 빚어낸 예쁜 글을.
알고 보니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죽고 싶었던 시간이 많았습니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우두커니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을 뿐인 시간이 많았다고 여겼습니다. 고여 있다고 느낀 무수한 순간들이 어찌나 형벌 같았는지. 내가 갖고 있던 사랑이 몽당연필처럼 닳아 없어진 것 같은 순간들.
돌아보니 그때에도 사람과 사랑과 예쁜 기억이 있습니다. 언젠가 낙엽이 굴러 떨어지는 골목에서 울다가 본 달. 내가 죽어버릴까 봐 걱정한 엄마가 머뭇대다 걸었던, 그러나 정작 따뜻한 말은 한마디도 못 하고 밥 얘기만 하던 전화. 포드득 날아오른 참새 날갯짓에 여름 바람에 그네 타는 아기 배냇머리처럼 날리던 민들레홀씨. 저 멀리 보낸 친구를 보러 여럿이 함께 타고 가던 자동차 속 더운 공기.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죽을 용기가 없었던 순간 무채색 궁지에 몰리고도 작은 풀을 보며 잠시 평온함을 느꼈던 나를. 몽당연필만 한 작은 마음으로 멀리 가버린 친구와 아직 떠나지 않은 친구를 붙들려고 애썼던 나를. 엄마의 전화를 무시하지 않은 나를. 웅크려 겨우 숨만 쉬면서도 언젠가, 언젠가-를 주문처럼 외며 현재를 견뎠던 나를.
시간은 견딜 때는 불에 덴 듯 고통스럽습니다. 대신에 시간은 견뎌낸 사람의 머리를 쓸어줍니다. 인간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은 망각이라던가요. 고통과 슬픔은 슬며시 그림자 너머로 몸을 숨겼고 그때 내가 가졌던 마음과 풍경이 남았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그리워하는 정체 모를 감정은 시간의 축복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