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게 싫었어
새큼한 반찬 냄새, 고소한 기름 냄새, 우욱
요즘은 아니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명절에는 친척들까지 둘러 모였다. 모여서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고기를 구웠다. 온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명절 음식을 준비한다는 집이 드물게 있긴 했으나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집도 저 집도 엄마 할머니 고모 이모가 좁은 부엌에 끼어서 음식을 준비했다고 했다. 아빠, 할아버지, 삼촌 등은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인심 쓰듯 상을 펴주는 정도가 다였다.
남녀의 갈라 치기가 오늘의 주제냐고? 내가 뭐 대단한 82년생 어쩌고 소설을 쓸 것도 아니고 당연히 아니다. 나는 명절 냄새, 그러니까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사방에 풍기는 그 냄새가 몹시 싫었다. 워낙에 전을 싫어한 것도 한몫한다. 베어 물면 기름기가 입안에 뜨겁게 싹 도는 전. 그 음식의 첫인상은 불쾌함이었다. 어릴 땐 먹는 것을 싫어했다. 특히 기름기라면 질색하는 편이었다. 프라이드치킨이나 튀기듯 구워낸 피자를 싫어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전이나 불고기나 하나 같이 내게 너무 기름기 가득한 느끼한 음식이었다.
집에서는 안 먹으면 그만이었다. 엄마아빠가 한 입만, 한 입만 더, 애걸복걸하면 딱 그것까지만 타협하고 끝냈다. 대신에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혹은 김에 싸서 최소한 어린이가 지켜내야 하는 식사량은 지켜냈다. 내 지랄 맞음에 부모는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다. 그 정도만 먹어도 내 할 도리를 다 한 것처럼 그들 역시 타협을 했다. 그러나 명절에는 온 친척이 그것만 먹어서야 되냐며 내 식사에 성화였고 엄마도 나도 눈치를 보며 식사를 완수해야 했다.
게다가 명절에는 안타깝게도 밥 먹기로 식사가 끝나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면 여자 어른들은 우르르 식탁을 치우고 부엌으로 후퇴했다. 과일을 깎고 송편, 약과를 산처럼 쌓아서 다시 식탁에 올렸다. 어른들은 어쨌든 조그만 인간더러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권하면서 먹을 때까지 쳐다본다. 꾸역꾸역 속에 넣고 나면 멀미가 났다. 명절이 끝나면 배앓이를 했다. 혹은 속을 게워 올렸다. 엄마아빠는 명절을 쇠고 집에 돌아오면 늘 다투고 있느라 내가 아픈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내게 명절은 그런 날들이었다. 불편한 분위기.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계속 먹어야 하는 곤혹스러움. 배가 불러도 자꾸 먹어야 하는 납득 불가한 시간. 서로 관심 없었을 사람들에게 맘에도 없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그닥 원하지도 않는 돈을 받아오는 날. 다녀오면 엄마는 울고 아빠는 말없이 있다가 불현듯 짜증 섞인 고성을 지르는 때. 괴롭고 불쾌한, 누구를 위한 날인지 모르겠는 날.
여전히 명절 냄새는 달갑지 않다
아마도 내가 가족을 이루지 않기로 결심한 건 그때부터였을 거야. 오랜 운전으로 지친 얼굴을 하고 티비 앞에 자리 잡은 남자 어른들이나, 부엌에서 뜨거운 기름이 튀는 바람에 팔을 문지르며 전을 부치던 여자 어른들이나, 가지 않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려대던 우리들이나. 모두 불행해 보였거든. 나는 그깟 음식, 그깟 용돈 포기해도 좋으니 안 가면 안 되나, 맨날 생각했어.
나도 동생도 전 부치는 냄새를 '명절 냄새'라고 부른다. 어릴 때에 비하면 식성이 많이 평균 범위에 들어오게 되었고, 기름기 있는 음식들도 잘 먹고 많이 먹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전이라면 질색을 한다. 특히 산적꼬지는 최악이다. 그것만 보면 그렇게 입맛이 싹 달아난다.
쟤는 저렇게 안 먹으니까 뼈다귀만 남았다는 둥, 저런 애들이 키가 안 커서 난쟁이가 된다는 둥, 쟤는 나이가 몇인데 엄마 고생하는데 옆에서 돕지도 않냐는 둥...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내가 들어야 했던 여러 비아냥거림이 생각나서인지. 엄마도 나도 고된 감정 노동 끝에 얻어오는 게 고작 반찬통에 담긴 산적꼬지였다는 게 생각나서인지. 아니면 좋아하지도 않는 전을 명절 후에도 내내 먹어야 해서였는지. 하여간 나는 그놈의 전이 정말 치가 떨리게 싫다.
오늘 편의점에 가다가 갑자기 '전 냄새 공격'을 맞았다. 어떤 사람은 한국 나이 34세에 접어든 어른이 아직도 어릴 때 일 때문에 전 냄새만 맡으면 오만상을 찌푸리게 된다는 이야기에 그럴 일이야? 잊어버려, 간편히 말하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우리 엄마아빠도 그런 말을 하겠지만. 세상엔 도저히 잊히지 않고 인이 배긴 일들도 있고 세월이 흘러 더께가 쌓일수록 더욱 차갑게 대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 세상 온갖 것을 안주 삼아서 술을 마시지만 전 하나 시켜서 술 먹자는 애들은 대학생 때도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호박전이나 감자전을 시켜주는 사람은 오케이. 모둠전을 시키자는 사람의 의견은 과감히 묵살했다. 모둠전에는 높은 확률로 산적꼬지가 나오거든요. 산적꼬지를 비롯한 전, 너희들은 죄가 없지만 나는 너희를 거부한다. 명절을 거부한다. 치욕과 모멸감이 가득했던, 그러나 누구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은 시간을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