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스스로를 정비(整備) 하는 에세이 (1)
20대 중반에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의 아래 문장을 읽고, 많은 잡생각에 빠진 적이 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
다사이 오사무 [인간실격]
모든 도서를 통틀어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인 이 말에서 우리는 이 책이 어떤 책일지, 주인공은 어떤 사람일지, 단번에 와닿을 수 있다. 그만큼 하나의 소설 첫 문장으로서 독자의 몰입감과 서사에 대한 예측을 극대화하기에 최적화된 문장이다. 근데 내가 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문학-공학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자조적이면서도 후회스러운 이 한마디를 읽으면서 인간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와 같이 후회하는 부끄럼 많은 인생을 살지 않게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부끄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시간을 되돌이켜 보았을 때 바꾸고 싶은 것, 특히 자기의 가치관으로 용납할 수 없지만 용기가 부족해서 용인하였던 과거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현실을 이루어 나간다면, 한 사람의 생애는 부끄럼이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지금은 30대 중반. 위 문장을 마음속에 세긴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나는 다행히 오바 요조와 같은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고 있지는 않다. 비록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갈 것인지 시점적으로 지각(遲刻)한 편일 수는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성에 대한 지각(知覺)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 방향성이란 결국, 내가 나중에라도 뒤 돌이 켜 보았을 때, 부끄럼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20대 중반과 지금이 달라진 것은, 그때는 학생이었고, 지금까지는 샐러리맨이었다는 것이다. 학생 때는 '차카게 사는 것'의 범위가 귀엽도록 작았다. 컨닝 안 하고, 술 먹고 개(�)되지 않고, 퇴학당하지 않는 것 정도만 지키면 '정도 (程度)'있는 삶이었다고 한다면, 샐러리맨으로서의 지난 6년은 그러한 정도의 범위가 너무나도 넓었던 것 같다. 모든 샐러리맨이 나와 같이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편해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갈림길이 매일같이 펼쳐지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도를 지키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의 도덕성을 지각하는 샐러리맨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느껴졌다. 정확히 이야기해서, 샐러리맨으로 성공하고 싶은데, 도덕적이고 정정당당하고 공명정대한 샐러리맨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듯 느껴졌다. 나의 특수한 상황에서 느꼈던 것일 수 있지만, 시스템적으로 피라미드를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경쟁이 필수적이고, 직장에서의 경쟁이란 수학과 같은 산식으로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왕도만을 추구하는 샐러리맨이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면서 순수하게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된다면, 성공을 위한 타락도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다.
좀 더 빠르고, 직접적인 길들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목표까지 나를 빨리 데려다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길들은, 내가 거짓말을 해야 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었다. 그러한 필요조건에 나라는 공범이 끼게 되면 필요-충분조건이 달성되는 예시가 많았다.
당연히 나는 지름길이 내 도덕성을 희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갈등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했었다. 다행히 갈등을 하던 나는 언제나 이득을 보지 않는 방향으로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항상 가치 판단의 준거점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것이냐'라는 항목이었고, 다행히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결정을 하지 않고 지내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아름 답지 많은 않고, 때로는 거짓말과 위선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 마인드로 상황을 해석해야 했다. 이런 마인드 세팅은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그렇다고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하였다. 똥들이 모여서 내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을 경우도 파다하였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본다면, 그저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제까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객관적으로 돈과 명예, 혹은 권력이 빵빵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성실하다고는 못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하는 샐러리맨으로서, 효심이 극진하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는 집안의 아들로서,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의 노력형 남자 친구로서, 좋은 친구들의 평범한 친구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 평범한 삶에서 특별히 당당하고 말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 할 수 있지만, 평범한 삶 속에서도 인간은 항상 갈림길 속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 평범함 속에서 우리는 더 손쉽게 추해질 수 있고, 일상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 부끄럼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샐러리맨으로서의 6년은 그 평범함 속에서 떳떳함을 찾아주었던 시기였다.
평범했지만, 그래도 부단히 누구보다 사회가 정해놓은 이상향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최대한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빠르게 하려고 노력했고, 남들이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 커리어라는 이상향을 최대한 빠르게 촉진시키고 더 많은 월급과, 더 높은 직급을 얻는 것이 '성공'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꽤 만족스러운 샐러리맨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생각한다.
6년 전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딜로이트 전략 컨설턴트로 시작했고, 이후 야놀자에서 팀원, 팀장, 총괄팀장, 실장, 본부장을 거치고, 발란에서 사업총괄이사 (CBO)로도 일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나한테 약 2년 전쯤, 뚜렷한 목표가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아주 당차게 그렇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전문경영인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고, 내 꿈에는 유통기한이 있었다. 40대가 되기 전에 전문경영인으로서 기업의 오너 역할을 해보고, 불혹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의 사업체를 스스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24, 25살 정도부터 해오면서 살아왔다.
많은 목표가 조기 달성되었다.
그러면에서 스스로의 6년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살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나름 풍족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현재의 나 자신에 만족하냐고 물었을 때, 근 몇 년간 나는 항상 불만족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다. 불만족인지, 불행인 것인지 분간하기는 어려웠다. 그 불만족의 근원은 무엇일지, 퇴사를 하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아직까지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불만족한 상황에 머물고 있다고 해서 답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지각을 해보려 한다. 샐러리맨으로서의 떳떳한 삶을 뒤로하고, 예전부터 꿈꿔온 창업가로서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어쩌면 더 빠르게 결정하였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한다.
오늘 만난 나의 은사님이 나와 대화를 하더니 이런 말을 하였다.
"너는 행복을 찾아 나서는 능력이 대단한 것 같다. 불행을 피할 줄 아는 용기가 있다."
나는 지난 6년간 샐러리맨으로 살아왔고, 부끄럼 없고 후회 없는 샐러리맨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얼마 동안 일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부끄럼 없는 창업가로 살아가려 한다.
그럼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