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블록에 대성통곡하는 아이, 할머니가 떠올린 것

노인경 그림책 <특종! 쌓기의 달인>

by 혜솔

요즘 네 살 손자가 가장 자주 하는 놀이는 블록 쌓기다. 크고 작은 블록들을 높이높이 쌓아 올리고는 소리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할머니, 이것 좀 보세요! 로리가 집을 이만큼 높게 지었어요. 여기는 할머니 집이에요. 나무도 있고 동물들도 있어요!"

블록을 쌓아 바닥에 하나의 마을을 만들어 놓고,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천진하다. 그런데 지나가다 모르고 블록 한켠을 건드렸다. 쌓아 올린 구조물이 조금 무너졌다. 그걸 본 로리는 곧바로 대성통곡을 한다.

"내가 만들어 놓은 집을 할머니가 무너뜨렸어. 건드리면 안 되는데… 난 몰라! 아까처럼 해 놔요! 아까처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순간, 한 권의 그림책이 떠올랐다. 노인경의 그림책 <특종! 쌓기의 달인>(2024년 4월 출간)이다.


▲책표지특종! 쌓기의 달인 ⓒ 문학동네


이 책에는 매일같이 쌓는 일만 하는 아이 둘이 등장한다. 새 방송국 기자인 비둘기는 이 아이들을 인터뷰하기로 한다.

"매일매일 탑을 쌓는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정말이에요."
"이유가 뭔가요?"
"좋아하니까요."

아이들은 그렇게 말한 뒤에도 계속 물건을 쌓기에 바쁘다. 비둘기 기자는 쌓는 이유를 묻고, 규칙을 묻고, 목적을 묻는다. 그러나 아이들의 대답은 늘 비슷하다. 좋아서, 재미있어서, 다시 쌓고 싶어서, 무너뜨리고 싶어서.

아이들이 쌓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너지는 일 또한 실패가 아니다. 그저 쌓는 동안 웃고, 무너질 때 환호하며, 그 사이를 온전히 즐길 뿐이다. 아이들은 기자가 요구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끝내 말하지 않는다.

"달까지 높이 가려는 거군요?"라는 질문 앞에서 아이들은 정말 알고 싶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높은곳까지 쌓아 올린 탑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왜 내려왔을까?


노인경 작가는 아이의 세계를 설명하려 들기보다, 그 곁에 조용히 머무는 방식을 택해 온 작가다. 아이의 감정과 놀이를 교정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특종! 쌓기의 달인> 역시 그렇다.

이 책에서 어른은 질문을 던지지만, 작가는 답을 서둘러 제시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과정으로 존재하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어주는 작가다. 이 그림책은 이런 말을 건네는 듯하다. 왜 하느냐고 묻기 전에, 함께 어울려 보라고. 함께 타고, 함께 흔들리고, 다시 쌓아 보자고.


로리가 블록을 쌓아 올리고 한참을 바라보는 시간은 완성의 기쁨이라기보다, 스스로 만든 세계를 확인하는 순간에 가까운 것 같다. 그 세계가 우연히 무너지면 슬픔보다 먼저 밀려오는 감정은 침범 당했다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까처럼 해 놓으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고집이 아니라, 자신의 질서를 지켜 달라는 요청에 가깝다.

로리에게 이 책을 읽어 준 뒤, 물어보았다.


"로리가 쌓은 저 높은 집을 무너뜨리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 볼까?"


로리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림책처럼 저렇게 쌓는 아이도 있고, 왜 쌓기만 하느냐고 묻는 어른도 있고, 다시 쌓는 장면도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책 속에서 비둘기 기자는 끝까지 진짜 이유를 말해 달라고 조른다. 그러자 아이들은 쌓아올린 탑 아래로 내려와 기자가 보는 앞에서 탑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다시 쌓으려고요." 그리곤 해맑게 웃는다.

재미있고 즐거워서 쌓고, 다시 쌓기 위해 무너뜨리는 아이들. 로리는 이 장면을 이해하고 있을까.

오늘은 무너짐이 견디기 어려워도, 어느 날은 스스로 부수고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 책의 장면이 문득 떠오르지 않을까?


마지막의 "다시 쌓으려구요"라는 말은, 아이들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처럼 느껴진다. 끝이 아니라, 다음 놀이의 시작이라는 신호처럼. 그래서 이 책이 아이에게 주는 공감은 분명하다. 부숴도 혼나지 않고, 다시 해도 괜찮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충분하다는 인정. 그래서 이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 많이 이유를 묻느라 놀이에서 멀어진 어른들에게 건네는 초대장처럼 느껴진다.


책을 덮으며 로리가 말한다.

"할머니! 나도 블록 다시 쌓을래요."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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