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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Nov 03. 2022

엄마가 쌍수를 했다.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1.

60살이 훌쩍 넘은 우리 엄마가 쌍수(쌍꺼풀 수술)를 했다. 우리 집에서 누군가가 성형수술을 한다면 당연히 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엄마에게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2.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무례한 인간들에게 종종 대놓고 성형을 권유받는 전형적인 무쌍(쌍커풀이 없는 )이다. 지하철에 붙어 있는 성형외과 광고의 비포/애프터 사진에서 '비포'와 똑같은 눈을 가졌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다. 한 마디로 성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전형적인 눈이라고나 할까.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부득불 TMI를 남발하자면 내가 코는 비교적 예쁜 편이다. 그래서인지 간혹 가다가  "코 (성형)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제가 성형을 했다면 코가 아니라 눈을 했겠죠?"라고 답한다.  그러면 그 말에 대부분 수긍하는데, 그게 또 묘하게 킹받는다열받는다.



3.

나에게 성형을 권하는 것은 비단 무례란 인간들 뿐이 아니다. 나는 엄마에게도 지속적으로 성형을 권유받아 왔다. 다른 엄마들은 내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해준다던데, 손주의 외모에 대해서도 자비가 없는 우리 엄마에게 그런 입 발린 소리를 기대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 엄마는 정말이지 순수한 소녀 같아서 악의 한 점 없이 -아니 오히려 호의를 표현하는 것으로도- 쇼미더머니급의 디스가 가능하신 분이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내 일생 동안 성형을 권유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대학을 졸업할 때에도 성형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거듭 물어보셨다. 마치 이 모양(?)으로 낳아 놓은 것이 당신의 크나큰 귀책 인양 성형수술비도 전부 부담해 주신다고 하셨다.(고오맙습니다!)
 

아무튼. 엄마의 호의 가득한 제안이 있을 때마다 나는 '제가 비록 대중적으로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마니아층이 제법 두터운(?) 얼굴입니다.' 라며 버텨왔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내 눈에 만족한다. 다들 애프터 쪽으로 갈 째 진득하니 비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느낌이랄까? 



4.

아무튼. 그런 엄마가 쌍수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시더니 병원을 알아보고 수술을 하기까지 채 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대단한 추진력이다. 우리 같으면 인터넷으로 시술법 종류 공부(?) 하고, 병원 찾고, 후기 찾아보느라 한 세월을 보냈을 텐데, 우리 엄마는 그런 필수 절차를 간단하게 스킵하셨다. 그 대신에 아줌마 네트워크를 가동해서 "아는 사람이 xx 병원에서 했는데 잘됐대!"라는 말 한마디에 병원이 정해졌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상담받고, 수술 날짜 잡고, 수술하고. 



5.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우리 아빠께서 수술비를 내주셨다"는 점이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당연히 아빠는 "엄마가 성형수술을 하는 데에 넘어야 하는 걸림돌"의 포지션일 줄 알았는데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었다. 꼰대(불경한 언어로 표현하여 죄송하옵니다만.)와 라떼의 아이콘이셨던 우리 아빠도 세상의 변화에 꼰대력이 풍화되시는지 어느덧 똘레랑스 충만하신 분이 되어버리신 것이다. 허나 그 변화 속도가 너무 더디어, 나와 내 자매는 그 덕을 전혀 보지 못한 채 출가하였고, 결국 그 옆자리에서 존버(=인내함)하신 우리 엄마만이 혜택을 보게 되신 것이다. 보수적인 아빠 덕분에 통금을 비롯한 각종 규제에 묶여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다가 출가함으로써야 비로소 자유를 찾은 우리 자매들은 아빠의 변화에 존버는 승리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6.

아무튼. 이리도 호방하게 수술을 지르신 엄마지만, 막상 수술을 끝내니 이제 와서 멋쩍으신 모양이다. '미모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수술한 것이면서, 마치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수술한 것처럼 말씀하시기도 한다. 

아니이~ 내가 꼭 예뻐지려고 한 게 아니고오~ 
눈꼬리가 처져서 그런지 자꾸 눈에 땀이 차잖아아~
그래서 겸사겸사아~


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오랜만에 친척 모임에 나가시면서 "너무 자연스럽게 잘 되어서, 말 안 하면 쌍수 한 줄 모르지 않을까? 그냥 안 했다고 할까?"라고 진지하게 물어보셨다. (엄마, 그건 아니야. 엄마 원래 얼굴 알았던  사람들은 다들 눈치챌 거야...)



7. 

다행히 쌍꺼풀은 잘 자리 잡았다. 딸인 내가 보기에도 퍽 만족스럽다. 얼굴이 예뻐진 것은 물론이요, 인상도 발랄해졌다. 생각해 보니 100세 시대에 환갑이 넘은 나이는 성형하기에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었다. 40년 이상은 더 써야 하는(?) 얼굴인데 내 맘에 들게 바꾸는 게 당연하지. 

내가 좋아하는 '퀴퀴한 일기'라는 웹툰의 한 컷이 생각난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고 싶은 것 구매하는 데에 나이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음 웹툰 <퀴퀴한 일기> 560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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