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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Jun 29. 2021

시트콤 '프렌즈'로 영어공부 해 본적 있나요?

'김씨네 편의점'으로 영어공부해본 후기

영어공부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자막 없이 영화 보기'라는 목표가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지 알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이루기 어렵다. 물론, 어렸을 때 영어권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제외다. 그들에게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능력치가 있다. 어렸을 때만 습득 가능한 능력을 미리 얻은 행운아, 영어공부계의 금수저라고나 할까. 아무튼. 새해 목표를 세울 때 다이어트와 함께 항상 소환되는 목표가 영어공부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막 없이 영화 보는 게 목표예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서 쉬워 보일 수도 있는데 절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의 근처에도 못 가고 포기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도 그중에 한 명이다.


영화나 시트콤으로 영어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자막 없이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비단 '영어'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전문 용어를 알아야 한다. CIS를 보기 위해서는 (평소에는 거의 쓸 일 없는) '소아성애자'라는 단어를 영어로 알아야 할지도 모른다. 빅뱅이론을 보기 위해서는 한국어로도 모르는 물리학 용어들을 알아야 할 수도 있다. (최소한 그 단어가 물리학 용어라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 셜록이나 빅뱅이론 같은 장르물을 본다는 것은 시작부터 하드 모드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많은 전문가들이 '로맨스' 영화로 영어공부를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물리학 용어나, 범죄 수사 현장에서 쓰는 언어보다는 연애할 때 쓰는 언어가 더 쉽기 때문이다.


사실 자막이 없으면 잘 모르는 단어 하나 때문에도, 생소한 슬랭 하나 때문에도 흐름이 턱 막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은 브랜드 이름이나, 사람 이름 같은 고유명사이다. 영어공부하는 사람들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시트콤 '프렌즈'도 이 고유명사 때문에 첫 화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 프렌즈 첫 화 레이첼의 대사 중에 'Sweet 'n' Low?"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건 유명한 인공 감미료(설탕 대신 커피에 넣는) 상표이다. 그걸 모르면 갑자기 왜 '달고(Sweet) 낮다(low)'고 얘기하는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서로 다른 문화도 이해를 방해하는 데 한몫한다. 프렌즈의 첫 화에는 레이첼이 결혼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들러리(bridesmaid)나, 축의금 대신 현물(?)로 축하선물을 하는 (그 당시) 미국의 결혼식 문화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다.


의외의 복병은 '발음'이다. 나처럼 대한민국의 정규 영어교육만을 받은 사람은 오직(!) 깔끔한 미국식 발음, 즉 듣기 평가 성우 같은 발음에만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거친 영국식 억양이나, 인도식 억양, 라틴 아메리카 계열 억양 등이 갑자기 튀어나오면 듣기 능력이 급격히 감소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요즈음은 듣기 평가에서도 여러 억양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라테는 영어시험은 오직 미국 아나운서 같은 발음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셜록'은 영어 공부하기에 최악 오브더 최악이네? (영국식 발음 + 전문용어 + 엄청 빠르고 많은 대사량) 하긴. 셜록은 자막을 읽기도 벅찰 때가 많다.


아무튼. 그렇게 많은 실패를 하고 나서도, 또 도전하게 되는 걸 보면 그 또한 묘하다. 정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인지, 유창한 영어실력에 대한 동경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21년 새해를 맞이하여 또다시 '자막 없이 영화보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매달 유료결제를 하고 있는 넷플릭스가 좀 아깝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영어 공부할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데, 게다가 한글/영어 자막도 다 제공해 주는데 한 번쯤 재도전해 봄 직 하달까.


김씨네 편의점 로튼 토마토 지수. 좋은 작품이다.


어떤 작품으로 영어공부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블로그 어느 글에서 '김씨네 편의점'을 추천하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실 김씨네 편의점은 나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은 작품이었다. 넷플릭스를 켤 때마다 광고를 정말 많이 하는데, 그 광고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동양인 여자애가 나와서, '굿 투 씨유, 언니! 유알 쏘 퍼니 언니~' 하며 과장된 발랄함을 뽐내는데, 내 생각에는 그 여자애의 차림새가 한국이라기보다는 일본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워 보였다. 한국과 일본의 전형도 구분하지 못하다니, 이거 또 서양인(?)들이 동양에 대한 이해도 없이 대충 만들었구먼? 동양이라면 한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다 뭉뚱그려 취급했다는 생각에 반감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재미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재미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이 작품으로 영어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경험상 너무 재미있는 작품으로 영어공부를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너무 재미있으면,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고, 그러면 결국 한글자막을 켜고 보게 된다. 일단 한글자막을 켜고 보는 순간 영어공부는 망한다고 보면 된다. 한글자막을 켤 때에는 '일단 한글 자막으로 먼저 보고, 나중에 다시 자막 없이 보면서 공부하지 뭐'라고 생각하며 합리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재미있는 드라마 하나 봤다는 데에 만족하고, 영어공부라는 목표는 성공의 어머니가 되고야 만다. 그래서인지, 적당히 재미없어 보이는 '김씨네 편의점'은 영어 공부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게다가 이 작품은 알아듣기 좀 만만해 보였다. 작품에서 김씨 아저씨와 아줌마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문장을 구사한다. 말도 느리다. 어려운 단어도 별로 쓰지 않는다. 심지어 한 회 시간도 20분 내외로 공부하기 딱 적당했다. 정말이지 영어 공부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공부한지도 어언 2주. 정말 10~20분씩 공부했기 때문에 2주 동안 겨우 4화를 시청하였다. 처음에는 자막 없이 보다가 ->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영어자막으로 확인하고 -> 맨 마지막에 한글 자막으로 내가 맞게 이해했는지 점검하는 형식으로 공부하였다.


그래서 김씨네 편의점으로 공부한 소감은? 오오오! 들린다 들려! 영어가 들린다! 알아들을만하다! 완벽히는 몰라도 대충 무슨말 하는지 정도는 큰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드라마로 영어를 공부할 때에는 대부분 1화에서 포기했는데 이것은 4화까지 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알아듣기가 비교적 쉬우니 덜 지루했고, 좌절감도 덜했다. 모르는 단어도 확실히 적어서, 한 문장 가지고 씨름하는 일도 적었다. 시트콤으로 영어 공부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문장 하나 붙잡고 씨름하다 보면 공부 의욕이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는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는 기분이었다면, 김씨네 편의점은 초등학생이 중학 수학을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할 만했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극 중 인물들의 발음이나 문법이 엉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씨아저씨는 be 동사는 무조건 is만 쓴다. (You is... They is....) 아무리 김씨아저씨가 이민1세인 설정이라지만 다른 영어는 비교적 유창하게 하면서 be동사만 거슬리게 쓰는 건 좀... 확실히 김씨 부부의 영어는 발음도, 표현력도 따라하기에 썩 적합한 언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트콤으로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이 '김씨네 편의점'을 강력하게 추천할 생각이다. 김씨 부부나 한인교회가 나올 때에는 왕왕 틀린 문법이나 발음을 구사하지만, 이민 2세인 자넷(김씨부부 딸)이나 정(김씨부부 아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친 아저씨의 중국식 영어도 들을 수 있고, 매니저 셰논의 전형적인 영어 듣기 평가 발음도 들을 수 있다. 특히 한 때 좀 놀았던(?) 정(김씨부부 아들)과 김치(정의 친구. 이름이 김치임)의 다소 거친 표현도 공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영어공부를 지속하기 에 좋은 시트콤이라는 것은 큰 장점이다. 아무리 좋은 표현, 좋은 발음으로 점철된 시트콤이라도 영어공부를 지속하기 어렵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러한 면에서 비교적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적당히 재미있는 '김씨네 편의점'은 영어 공부하기에 제격이다. 특히 비교적 알아듣기 쉽다고 하는 시트콤 '프렌즈'도 어려웠던 사람이라면, 김씨네 편의점에 한번 도전하기를 추천한다. 일단 알아들을 수 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다음에 더 어려운 시트콤에 도전하면 된다.




혹시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aura(아우라)라는 단어를 검색해 본 일이 있는가? 이 단어는 시트콤 프렌즈 첫 시즌 첫 화에 나오는 단어이다. 이 aura라는 단어를 네이버 영어사전에 검색해 보면 연관검색어에 의외의 것들이 나온다. hump(혹), hairpiece(가발), gravy boat (그레이비 소스용 보트모양 그릇) 등등. aura 라는 단어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러한 단어들은 프렌즈 첫 시즌 1화에 나오는 단어들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프렌즈로 영어공부를 '시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모르는 단어가 많은데 영어공부를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이러한 단어를 검색한 대부분의 사람이 '프렌즈로 영어공부'하기라는 목표를 포기했을 것이다. 역시 아무리 좋은 교보재도 지속하기 어려우면 소용이 없다.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aura(아우라)를 검색해 보면, 연관검색어에 의외의 것들이 나온다. 대부분이 프렌즈로 영어공부를 시도한 사람들이 찾은 단어이다.



후기를 쓰다 보니, 내가 무슨 유명 영어 강사라도 되는 것처럼 써 놨네. 당연히 나는 영 공부랑 하등 관련 없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다만 매년 '자막 없이 영화/드라마/시트콤 보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으로서 느낀 바를 적어 보았다. 나처럼 넷플릭스 유료결제가 영 아까워서 영어공부라도 해 볼까 하고 기웃거리는 동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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