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님, 이 글은 우리 집 고양이가 썼습니다.
브런치 작가에 떨어졌다.
기성 작가도 한 번쯤은 떨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니, 아무것도 아닌 내가 떨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떨어졌을 당시에는 저렇게 이성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재도전 끝에 붙고 나서야 ‘하긴, 그땐 떨어질만했네’했지, 떨어졌을 당시에는, 그저 화만 났더랬다.
브런치 작가에 떨어졌을 때 “브런치 작가 탈락”이라는 검색어로 여기저기 검색을 해 보았다. 나처럼 떨어진 사람들의 후기(!) 를 들으며 좀 위로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했다. 다들 성숙한 분들이셨다.
[내가 기대했던 글]
동네 사람들! 호랑말코 같은 브런치가 감히 나를 못 알아보고 작가에서 떨어뜨렸습니다! 브런치가 안목이 없습니다! 브런치 작가 심사는 엉터리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브런치 작가 떨어진 건 전부 브런치 잘못입니다!
여러부운! 이게 다 브런치 때문인 것 아시죠?
[실제 대부분의 글]
아무래도 내 소개가/기획이/글이 부족했던 것 같다. 브런치 작가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던 나를 반성한다. 오답노트(?)를 만들어보니 이러이러이러한 점이 부족했건 것 같다.
더 노력해서 재도전해야겠다.
.......
못난이처럼 남 탓하는 사람을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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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떤 기분이었냐 하냐면, 이런 기분이었다. 회의 시간에 팀장님이 (내가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낸 상황. 회의가 끝나고 팀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간 상황. 난 “오늘 팀장 왜 저래요? 왜 우리한테 히스테리를 부려?”라며 팀장 욕을 하려던 참인 상황. 그런데 나 빼고 모든 팀원들이 “우리가 부족했나 봐요. 팀장님이 말씀해 주신 부분 잘 고쳐서 다시 작성해 보죠”라고 말하는 상황.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만 우주의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당첨 운이 좋지를 않다. 비타500 뚜껑의 [한병 더]가 내 당첨운의 맥시멈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행히 합격 운은 좋은 편이어서(당첨 운과 합격 운은 엄연히 다르다) , 입시라던가 취직 과정에서 불합격의 상처를 덜 받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브런치 작가에서 떨어진 것 굳은살 하나 없는 곳에 생긴 상처였다. 게다가 브런치는 떨어진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보시오 브런치 양반,
거 떨어진 이유라도 좀 압시다.
아니, 이유라도 알아야 재도전을 하지. 거 너무한 거 아니오?
속으로 (솔직히 말하면 몇 명에게는 겉으로도) 브런치를 욕했다. 아니 요즘은 불합격 통보도 성의 있게 하는 추세인데, 불합격 통보가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닌가? 내 글을 읽기는 하였나? 심사하는 직원이 몇 명이나 되지? 아니, 애당초 전담 심사관이 있기는 한가? 나는 하수니까 그렇다고 쳐, 심지어 현직 작가도 떨어지는 게 말이 돼?
자가발전을 통하여 내 열등감이 최고조에 이를 때까지, 나는 지질한 구남친같이 굴었다. 다른 사람의 브런치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이 사람보다 못한 게 뭔데?” “왜 이 사람은 되고 난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구질구질한 전 남자 친구 같이 굴었다는 말이다.
구 남친도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실연의 상처가 치유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냉정을 되찾으면 나의 부족한 점도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한다. 하긴, 내가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지. 게다가 소재도 특별할 것도 아니고, 기획도 부족했지. 하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새 여친에게 프러포즈하는 심정으로 브런치 작가에 재도전했다.
인간이 참 간사하다.
잘 풀리고 나면, 예전의 분노는 급격히 쪼그라든다. 나를 떨어뜨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불합격 사유를 안 밝히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브런치 작가 합격하는 법”처럼, 족보나 공략집 위주로 작가에 도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나같이 그릇이 간장종지만 하여서, 불합격 메일을 받고 졸렬하게 삐쳐있던 동지들을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여기에 당신보다 더 속 좁은 사람이 있으니 힘 내십시오.
더불어, 떨어졌을 당시 했던 아래의 결심도 지킬 겸 해서.
내가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기만 해 봐라.
브런치 뒷담화를 브런치에 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