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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Jul 08. 2019

불쾌함 어워즈: 택시 부문 시상식

나를 불쾌하게 하였던 택시기사님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나는 택시를 자주 타는 편이 아니다. 이따금씩 멀미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버스 대신 매번 택시를 탈 만큼 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며, 약속시간이 늦어 허둥대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확률로 불쾌한 경험을 택시에서 하고는 하기 때문이다.

아마, 서로를 모른 척하기에는 좁은 공간에 기사와 승객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철도” 나 “전용차로” 가 보호해 주지 않는 “무한경쟁”에 가까운 도로 상황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전투력이 0에 수렴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불쾌한 경험이 있더라도 어지간하면 항의하지 아니한다.
목소리 크고 덩치 큰 사람이 절대 우위를 점하는 이러한 종류의 싸움에서 “목소리 작은 여자”의 포지션을 차지하는 나 같은 사람은 먹이사슬의 저 아래, 그러니까 “고라니” 정도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고라니는 소리라도 내지, 나는 여간해서는 항의도 못하니까 더 밑바닥 플랑크톤 정도 될 듯하다.

아무튼.

플랑크톤이 선정한 택시 부문 불쾌함 어워즈!

이제 시작합니다. (상의 성격상 존칭은 생략합니다)



[우수상]
연륜의 빵을 날린 대전 택시기사님!


우수상은 대전에서 나에게 연륜의 빵을 날린 택시기사님께 돌아갔다.


그 날은 갑자기 도장을 만들 일이 생겼더랬다. 대전에 이사온지 두 달밖에 되질 않았으니 대전이 낯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걷던 길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지도 어플을 켜니, 다행히도 택시로 20분 거리에 조그마한 도장가게 하나가 있었다. 얼른 카카오 택시를 켜서, 그 도장가게까지 가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금방 도착했고, 나는 얼른 택시에 올라탔다. 그런데 왜인지, 택시기사님은 처음 보는 나에게 한껏 화가 나 있었다.


아가씨가 부른 건 줄 알았으면,
절대로 안 왔어요.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아서 “네?” 하고 되물었더니 더 역정을 낸다.


택시 부른 사람이 아가씨인 줄 알았으면,
태우러 오지도 않았을 거라고요!




다시 말하지만 택시 기사님은 처음 보는 나에게 한껏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내막은 이러하였다. 내가 아이폰을 보며 근처 도장 가게를 검색하고 있을 때, 자기가 내 옆을 지나갔단다. 자기는 택시기사 경력이 워낙 오래되어서, 길 걷는 저 사람이 택시를 타려는 사람인지 아닌지 척 보면 딱 구분을 한단다. 오래된 택시기사의 촉이, 저기 저 핸드폰을 보는 아낙네가 택시를 타려 한다고 알려 주었고, 그 촉에 따라 나에게 “빵(여기 빈차가 다가가니, 택시를 타려거든 어서 타라는 신호)” 하며 경적을 울렸단다.

하지만 나는 가까운 도장가게 찾느라 “빵”을 날리는 캑 시에 눈길조차 주지 못하였고, 그런 나를 괘씸히 여긴 택시기사는 ‘저렇게 길 가면서 핸드폰만 보는 손님은  절대 태우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얄궂게도, 카카오 택시 콜이 왔길래 손님을 태우러 와보니, 조금 전, 감히 자기의 “빵”을 무시한 내가 탔다는 것이다.

그는 나를 태운 것이 꽤나 약이 오르는지, 쉬지 않고 나를 비난하였다. 길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고 비난하고, 자기의 “빵”을 무시했다고 비난하였다. (중간중간, 본인의 택시운전 경력을 강조하며 길을 걷는 행인들 중 택시를 타려는 손님을 기가 막히게 골라내는 능력을 자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옛말에 “플랑크톤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말이 있다.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며 나를 쉼 없이 비난하는 통에, 먹이사슬 최하단 플랑크톤도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저기요 기사님.
제가 핸드폰을 한 이유는, 가까운 도장가게를 검색하기 위해서였어요.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택시부터 타는 사람도 있나요?
그럼 다음부터는 택시 먼저 잡아타고, 검색하는 동안 기사님 보고 기다려 달라고 할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생각 같아서는 ‘내가 핸드폰을 보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험악하게 대꾸를 해 주고 싶었지만, 플랑크톤에게는 이 정도 앙칼짐이 한계였다.



저는 기사님이 경적을 울렸는지도 몰랐고요, 알았다고 해도 그땐 도장가게를 찾아보느라 안 탔을 거예요.



그 와중에 ‘기사님’이라 예의 바르게 칭하는 나 자신이 너무 없어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젊은 여자의 대거리에 험악한 욕이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비난도, 각오했던 험한 욕도 없기는 했지만, 남은 십 분여간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본인도 내게 조금은 미안했던지, 내릴 때가 되자 어느 쪽에서 내려주는 것이 편하겠느냐고, 어이없을 정도로 자상한 목소리도 뒤늦은 친절을 베푼다. 물론 10분 내내 까닭 없이 얻어먹은 면박이 저 말 한마디에 풀릴리는 없다. 이날, 어찌나 황당하고 분하던지, 난생처음으로 택시 불친절센터에 전화를 하는 기염을 토했더랬다.



[최우수상]
극강의 멀티 플레이어


최우수상은 이년 전 서울에서 만난 극강의 멀티플레이어에게 돌아갔다.

몰상식한 시비는 기껏해야 기분이나 좀 상하고 말겠지, 가끔 상상 이상의 행동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택시가 있는데 그분이 그러하였다

약 이년 전 나와 그의 결혼식에 주례를 봐주신 주례 선생님과의 식사 약속이 있던 날이다.

택시에 탄 나와 그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는데, 택시기사가


일명 칼치기를 하며 난폭운전을 하는 동시에

핸드폰으로는 콜을 받으며

2대의 무전기로 (왜 운전석에 무전기가 2대나 있을까.) 배차를 하는


극강의 멀티플레이어였기 때문이다. 뒷좌석의 나와 그는 지구 종말을 앞둔 커플처럼 가는 내내 손을 꼭 붙잡았다.





[대망의 대상]
자신의 한계에 도전 중인 고행자


앞의 두 분을 제치고, 대망의 대상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 중인 고행자가 선정되었다.


유난히 추웠던 재작년 겨울, 나와 그는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택시를 탈 때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십 분정도 지나자 택시기사가 매우 매우 졸려운 것 같았다.


그는 졸음을 쫓기 위해 물을 마시다가 그래도 잠이 오는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는지 영하의 날씨에 창문을 활짝 열었다. 편하게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탄 것인데 졸지에 칼바람을 맞으며 덜덜 떨게 되었다. 너무 추워서 창문을 좀 닫아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백미러에 비친 기사를 흘끔 보니 눈이 거의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감겼다가, 애써 부릅떴다가, 다시 감겼다가 부릅떴다가를 반복하는 동안 나의 심장도 같이 쪼그라들었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내리고 싶었지만, 이미 강변북로에 진입해서 내릴 수도 없었다.

퇴근길 정체 덕분에 미터기의 요금은 자비 없이 올라갔지만

이렇게 천천히 가면
사고 나도 죽지는 않겠지’


라는 마음에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탄지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도 소용이 없는지, 택시기사는 최후의 수단(아마도)을 사용했다. 

족집게를 가지고
본인의 수염을 한올씩
뽑기 시작한 것이다!!!!!!




경악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그만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저렇게까지 운전하는 것을 보면 일면 안쓰럽기는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그런지 경악스러운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영겁과 같은 한 시간 반(한 시간 반 동안 칼바람을 맞은 셈이다) 이 흐른 후에야 우리는 동태처럼 꽁꽁 언 몸을 택시에서 빼낼 수 있었다.


이상으로 불쾌한 택시 어워즈 시상을 마칩니다.


안타깝게도



승차 거부하셨던 기사,

거기 가면 빈차로 와야 하는데 오늘은 복도 지지리도 없다며 투덜대셨던 기사,

옆 차와 시비가 붙어 싸우느라 바쁜 길 지체하신 기사,

나라 걱정을 가장한 쌍욕의 향연을 보여주신 기사


등등의 소소한 불쾌감을 주셨던 분은 근소한 차이로 탈락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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