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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joge Jun 20. 2024

우리는 다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어제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삼십 대 초반 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어떤 동물들은 자신의 새끼가 야생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새끼를 죽인다고 했다. 요즘 세계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경향도 어쩌면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을 최적화하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싶다고도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자신의 모습을 지금으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동생의 말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챗 지피티와의 대화


그러다 문득 동생의 모습에서 나를 봤다. 경기 침체, 자연재해, 온라인상에 흐르는 너무 많은 쓸데없는 정보들, 비교와 동일성의 지옥에서 느끼는 박탈감. 이 모든 것들이 나와 동생 같은 젊은 사람들의 꿈을 쪼그라들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바람이 빠지는 풍선처럼 매일 조금씩.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을 몸으로 느끼고, 폭염으로 사망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미래를 향한 기대나 야심, 꿈같은 것들이 아주 미세하게 줄어드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순진하고 막연한 꿈을 꾸는 것이 젊은이들의 특권이고 정체성인데 갈수록 꿈 대신 두려움만 커진다. 회사에서 <핵개인이 시대> 송길영 작가를 초대해 강연을 들었다. 강연이 끝날 무렵 작가가 스치듯 남긴 한 마디가 인상적이었다. '한 번 꿈을 펼쳐보세요.' 회사에서 꿈을 펼쳐보라니. 그는 이제 세상은 '크리에이터' 아니면 '플랫폼'으로 나뉘기 때문에, '플랫폼'이 될 수 없다면 '크리에이터'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 회사도 내가 거쳐가는 하나의 플랫폼일 뿐 회사를 너무 믿지 말라고도 했다. 그리고 '크리에이터'로 자립해 근근이 먹고살 수 있으려면, 좌절과 성장의 이야기를 담은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서사를 아카이브 형태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흩어지고 쪼개지고 홀로 서는 시대의 핵개인으로서 우리 각자는 어떤 고유한 서사를 써 나가고 있는 걸까.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14세 미만 청소년의 SNS 금지법이 통과되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출처) 내가 처음 인스타그램을 쓰기 시작한 게 2011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니까 지금 10대 초반 친구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스타그램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릴 땐 학교 교실에서 매일 만나도 누가 어떤 집에서 사는지, 주말에 부모님과 어떤 곳을 여행하는지, 무엇을 먹고 누리며 사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집에 여유가 없어 혼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정도의 이벤트가 발생할 때나 다른 친구들과 명백하게 구분되는 강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지금은 어떨까. 잠깐 상상해 보면 끔찍하다. 매일 수시로 비교당하고 상처 입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떠올려보면 알지도 못하는 얼굴들인데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에서 저자는 이웃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공감하고 연결되는 데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 본능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날 SNS에서 이루어지는 가볍고 피상적인, 비교하고 중독되는 연결이 아닌, 공감하고 위로받는 진정한 연결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만큼이나 중요해진 시대이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진정한 연결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기 쉽지 않고, 온라인에서의 연결은 오프라인에서의 연결을 돕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IT 업계 사람들은 다시 유튜브, 인스타를 넘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거대 SNS를 꿈꾸는 것 같다. 챗지피티로 대표되는 생성 AI 기술이 세상에 나온 후 그런 기대가 다시 커졌다. 천지개벽할 신기술이 나왔으니 잘만하면 새로운 걸 만들어내 판도를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OOTD, 책, 영화 등 일상의 이것저것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내가 무엇을 입거나 샀고, 어디에 갔는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 나와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회사에서는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 간의 연결을 더 디테일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데, 그 연결이 정말로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는 연결이 될 수 있을지, 그건 허울에 불과하고 회사의 수익 창출만이 단 하나의 목표인 것은 아닌지 복잡한 마음이 든다.


- 비교와 동일성의 지옥에서 벗어나, 각자 빛나는 개인이 쓰고 있는 고유한 서사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 외부에서 수집하는 명령이 아니라, 정말 들어야 하는 목소리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 감정의 부스러기만 남기는 연결이 아니라, 진짜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는 연결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중독적 소비, 비교와 동일성의 지옥에서 벗어나 고유한 서사를 만드는 핵개인으로 성장하려면 수많은 노이즈 속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걸러내는 '필터링'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 알아야 한다. 즉,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이전에 오롯이 혼자되는 시간, 고독의 시간이 필수임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진정한 연결은 자기 자신과의 연결에서 시작되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건강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독은 자기 이해와 자기 사랑을 촉진하는 중요한 도구다.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보다 먼저 책을 읽고, 산책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는 고독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한 문제가 아닐까? 고독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줄 수 없을까? 그런 사람들 간의 연결은 가볍고 피상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고민과 질문이 난무한 글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천천히 생각이 정리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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