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초당 두부
동이 트기도 전에, ‘달그랑, 달그랑, 두부~.’ 두부 파는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골목 여기저기에서 아저씨를 불렀다. 때로 어머니께서 두부 파는 아저씨를 제때 못 만나게 될 경우에는 어린 필자를 불러 시장 근처의 두부공장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어떤 날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두부를 들고 오다가 하수도 구멍에 발이 걸려 넘어진 적이 있었다. 혼이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비닐봉지 속의 으깨진 두부를 보면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이야기이다.
장대비가 오던 날 강릉에 도착했다. 비가 그친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토박이 할머니 순두부 김규태((남, 50세) 사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두부를 만들려면 6시 이전에 시작해야 아침 손님상을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도착하자마자 서글서글한 얼굴의 주인장은 강원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한다. 두부 만드는 과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자는 어린 학생처럼 열심히 들었다.
콩은 보통 하루 전날 미리 불려놓는다. 여름에는 6시간, 봄·가을에는 8시간, 겨울에는 12시간을 불린다. 두부를 만드는 콩은 주로 백태를 사용한다. 탱탱하게 불린 콩을 곱게 갈고 그 콩물을 가마솥에 넣고 뭉근히 끓이다가 간수(바닷물)를 넣으면 두부가 완성된다.
두부 만드는 과정 중에는 두부 외에도 비지, 촛물(두유), 초두부(순두부)가 만들어진다. 필자가 흥미로웠던 점은 콩물을 분리하는 장면이었다. 한복집에서 파는 흰색 통사(얇고 투명한 옷감) 세 겹을 고정하여 만든 나무틀에 콩 간 것을 담아 봉긋하게 산을 만든다. 분쇄된 콩으로 만든 산의 무게로 인해 아래로 늘어진 천의 한가운데로 콩물이 빠진다. 어느 정도 물이 빠지면 가운데 윗부분에 나무 주걱을 푹 꽂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나무주걱을 타고 콩물이 주르륵 또 흘러나온다. 다른 지역에서 콩물을 분리할 때는 콩을 간 것을 천에 싸서 인위적으로 꾹꾹 누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반면 시간은 걸리지만 ‘나무주걱’을 꽂아 콩물을 분리하는 방법은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 인해 비지가 될 분쇄된 콩도 거칠지 않고 먹기 좋게 부드러워진다.
“저희는 할머니 때부터 그렇게 했어요. 초당에는 두부를 만들어 파는 집이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1970년대만 해도 100가구 정도가 있었지요. 집집마다 만드는 방법은 조금씩 달라요. 두부 만들 때 왜 그렇게 만드는지, 재료의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먹고살기 위해 만든 거니까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이거 하면 먹고살 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모두 경험이죠.”
두부 만들 때 왜 그렇게 만드는지,
재료의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먹고살기 위해 만든 거니까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이거 하면
먹고살 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초당두부의 유래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한다. 강릉에 삼척부사를 역임한 허엽 선생이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초당(草堂)’이라는 허엽의 호를 붙여 그 이름이 탄생했다고 전한다. 시간이 지나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정치적 풍파를 겪으면서 초당 마을의 남자들은 점차 줄어들고 노인과 아이, 여인들만 남게 되었다. 마을 여인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만드는 비용이 적게 드는 두부를 만들어 강릉 중앙시장에 팔았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두부요리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고 음식점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강릉 초당동은 두부마을로 유명하다. 두부를 만들 때는 시간이 더디 간다.
“가마솥에 콩물을 붓고 은근한 불로 끓이는데요, 서두르면 안 돼요. 솥바닥에 눌어붙지 말라고 나무주걱으로 가끔 저어야 해요. 그런데 자꾸 저으면 할머니들은 젖지 말라고 하세요. 저을수록 두부가 양이 적어진다는 거죠. 여긴 굳었잖아요. 벌써. 이쪽에는 콩물이죠. 저으면 더 굳어지죠. 두부의 크기는 집집마다 달라요. 저희는 가로와 세로가 11cm에요. 시장에 팔 때, 크면 단골들이 많이 생겼대요. ‘저 여편네는 크게 만들어서 빨리 팔고 간다.’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적게 만들면 그만큼 늦게까지 시장에 앉아있는 거죠. 허허허.”
두부의 크기는 집집마다 달라요.
시장에 팔 때, 크면 단골들이 많이 생겼대요.
‘저 여편네는 크게 만들어서 빨리 팔고 간다.’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가마솥의 콩물을 살짝 맛보니 두유 맛이 난다. 시중에서 파는 감미료를 넣은 두유 맛은 아니다. 고소하고 신선하다. 거품을 거둔 따듯한 콩물을 ‘촛물’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강릉 앞바다의 깊은 곳에서 퍼 올렸다는 바닷물을 넣는다. 바닷물이 들어가면 촛물이 몽글몽글 뭉친다. 이것이 바로 ‘초두부’이다. 처음 만들어진 두부라는 의미인데 일반적으로 굳히지 않은 두부를 순두부라고 한다. 초당동에서 두부를 주문할 때 ‘초두부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면 ‘두부에 대한 예’를 아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두부’이다.
처음 만들어진 두부라는 의미인데
일반적으로 굳히지 않은 두부라 하여 순두부라고 한다.
초당동에서 두부를 주문할 때 ‘초두부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면
‘두부에 대한 예’를 아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을 것이다.
좋은 콩 맛의 기본은 고소함이다. 두부는 맛보다 부드러움과 단단함에 대한 선호의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장은 두부를 만들 때, 가는 시간을 탓해서도 안 되고 조바심을 내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초두부를 두부 틀에 옮겨 모양을 잡기 위해 수분을 뺄 때에도 순전히 맷돌의 힘만 빌린다. 수분이 어느 정도 빠지면 눈썰미로 두부를 자른다. 정확히 11cm이다. 열두 덩이의 모두부가 찬물에서 열기를 식힌다.
“이것 보세요. 잘되었죠?”
주인장은 듬직하게 잘 나온 두부 한 모를 손으로 찰싹 때린다. 4시간이 넘은 기다림 끝에 드디어 두부를 만났다.
비지와 초두부, 모두부가 검붉은 묵은지와 함께 차려졌다. 아무런 간도 하지 않고 비지 한 숟가락, 초두부 한 숟가락, 모두부 한 점을 먹어본다. 이제 막 나온 따듯한 초두부는 말없이 구수하고 신선한 바다 내음을 전한다. 모두부는 그 자태가 우아하기까지 하다. 순백색에 간장을 얹어먹으려니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곳의 두부는 담백(淡白)하다는 사전적 의미를 정직하게 이야기한다. 밍밍하다고 생각된다면 새콤한 묵은지 한 점에 두부를 싸 먹으면 또 다른 맛이다.
요즘은 포장용기가 발달하여 두부를 사 오다가 넘어지더라도 모양이 으깨지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두부 만드는 공장을 주변에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어 아쉽다. 김이 나는 두부를 리어카에 한가득 담아 끌고 다니던 두부 파는 아저씨도 볼 수가 없다. 댕그랑 거리는 종소리가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아저씨, 두부 주세요.’라고 할 텐데 말이다.
[도움 주신 분]
토박이 할머니 순두부는 1979년 할머니와 어머니(이금자)께서 개업하였고 아들 김규태(남, 50세)씨가 두부 만든 지는 10년이 넘었다. 어느새 두부를 만든 세월이 40여 년 흘렀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967?_ga=2.121855691.1559705289.1613814797-477163452.1613098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