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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21. 2021

흰 찰쌀보리의 구수한 맛과 건강만 생각한 우리 동네 빵

전북 군산 보리 만주

          

  1920년대 말, 군산 부두에는 가마니를 겹겹이 쌓아놓고 그 위에 앉아서 쌀의 뉘(등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를 고르는 미선 여공을 포함해 남녀 노동자가 2,000여 명 있었다. 당시 이곳은 전국의 쌀이 모였다가 일본으로 갈 준비를 하던 곳으로 철도변이나 항구 옆에는 정미소가 많았다. 당연히 무역 거상들과 일본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이 시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이즈모야라는 고급 화과점을 비롯해 여러 제과점들도 생겼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은 급히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故이석우 씨가 이성당 빵집을 시작하여 현재 4대째 운영을 하고 있다.      



  이성당이 군산 근대문화를 대표하는 빵집이라면 오늘의 군산의 삶을 상징하는 빵집은 따로 있다. 군산에서 유명한 농산물 중 하나가 흰 찰쌀보리라고 한다. 흰 찰쌀보리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포만감을 주고 특히 베타카로틴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당뇨 등 성인병 예방과 변비 개선, 다이어트에 좋다. 흰 찰쌀보리로만 빵을 만드는 빵집이 있다기에 찾아가 보았다.


  지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영국빵집. 겉에서 보면 아직 1990년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시간이 멈춰있는 듯하다. 내부도 그러하다. 그것이 주인을 닮은 영국빵집의 매력이다. 정석균(남, 68세)씨에게 영국빵집이라고 작명을 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80년대만 해도 외국의 나라 이름을 걸고 빵집 이름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 영국빵집이 80여 개나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동네마다 영국빵집이나 독일빵집 하나쯤은 있었던 것 같다.      


  “영국빵집을 1984년 서른둘에 시작했어요. 기술을 처음 배울 때는 꿈이 있잖아요. 큰 제과점 사장이 되겠다는. 개업하고 2-3년은 잘 되었죠. 그러다가 IMF가 오고 프랜차이즈(franchise)가 전국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동네빵집이 거의 문을 닫게 되었어요. 저도 힘들었고 살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보리의 구수한 맛과 건강을 살린 보리 만주를 개발하게 되었어요. 보리에는 팥이 어울려요. 팥의 당도를 적절히 찾는 것도 어려웠지요. 달아서 맛있다고 할 수도 없고 달지 않아서 맛없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


흰찰쌀보리 만주와 단팥빵, 흰찰쌀보리 초코파이


  영국빵집은 모든 빵에 흰 찰쌀보리가 들어간다. 보리마루 만주에는 달지 않은 단팥이 가득 들었다. 구수한 보리 내음도 난다. 두 개만 먹어도 배가 불러 여럿이 나누어 먹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를 고민하여 만들어 낸 흰 찰쌀보리 초코파이도 이곳의 대표상품이다. 필자는 제일 좋아하는 야채빵을 발견하자 덥석 베어 물었다. 보리가 들어가서인지 밀가루 빵처럼 쫀득하지는 않지만 몸에 좋다는 양배추가 잔뜩 들었다. 당근, 돼지고기, 양파가 아삭하게 씹힌다. 슈크림빵은 살살 부드럽게 찢어서 달콤한 크림을 입안에 오래오래 두고 녹여 먹어야 한다. 다음 순서는 아이가 되어 행복하게 눈을 감고 음미하는 것이다.    

 

흰찰쌀보리 야채빵과 슈크림빵


정석균 사장과 그가 아끼는 믹서기

 판매장 위에는 넓은 빵 제조실이 있다. 제조실 구석구석에는 그가 빵을 만들면서 사용해 왔다는 조리도구가 많다. 30여 년 동안 조용히 반죽을 치댄 아와 믹서는 가장 아끼는 도구이다. 벨트를 직접 갈며 오랜 시간 동안 주인장의 손발이 되어 준 동반자 같은 기계이다. 이 외에 카스텔라 트레이와 오븐기도 있다. 까맣게 변한 그것들은 사용을 하든지 안 하든지 버리지 못하고 그의 자부심처럼 진열되어 있다. 


  “이 컨백션 오븐기는 너무 오래되어서 버린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조리도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좋은 빵을 만들 수가 없어요. ‘째(멋)’부리는 것은 멋있어 보이지만 어렵지 않게 누구나 할 수 있고 정말 맛있는 것이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먹거리는 이윤의 논리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정직함과 정, 지역의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째(멋)’부리는 것은 멋있어 보이지만
어렵지 않게 누구나 할 수 있고
정말 맛있는 것이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먹거리는 이윤의 논리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정직함과 정, 지역의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정 사장이 아끼는 제빵 조리기계들

 주인장의 주름진 손에서 그의 성실함과 빵에 대한 자긍심, 지역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단골손님들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이제 그에게는 10년 동안 함께 해온 듬직한 아들이 있다. 촘촘한 세월을 이겨낸 동네빵집의 이야기에 마음이 따듯하다.                                                                 

[도움 주신 분]          


영국빵집은 1세대 정석균(남, 68세), 김신숙(부인)씨, 2세대 정요한(큰아들, 37세)씨가 운영하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 맛이 동네빵집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914?_ga=2.45830500.1559705289.1613814797-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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