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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Mar 15. 2019

서울 광장시장 빈대떡

“자글자글 기름에 부친 빈대떡은 아삭한 숙주가 씹히는 맛”

    

  기름 먹은 빈대떡이 자글거리며 노릿하게 철판에서 익어간다. 빈대떡을 부치는 아주머니는 두어 번의 뒤집개질로 두툼한 빈대떡 몇 개를 만들어 낸다. 손님들이 북적거려도 그 노련함으로 조급해하지 않는다. 빈대떡으로 유명한 광장시장은 1905년에 광장 주식회사를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시장 구경은 신이 난다.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는 것도 좋고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흥정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그중 먹거리가 풍부한 노점은 지나칠 수 없는 볼거리이다. 광장시장은 더욱 그렇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간에 노점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넘쳐난다. 노점의 긴 의자에 어깨를 맞대고 앉은 사람들 중에는 시장 상인들도 있고, 오래된 벗과 막걸리를 드시는 어르신들도 있고, 관광을 하러 온 젊은이들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백녹두 반죽 & 백녹두 갈기 & 빈대녹

  시장 가운데 길게 늘어선 빈대떡 노점들 사이에 있는 검은 맷돌들. 자동모터를 장착한 맷돌은 소복이 쌓인 누런 녹두를 쉬지 않고 곱게 갈아댄다. 젊은 새댁일 때부터 지금까지 광장시장에서 50년 가까이 장사를 해온 박금순(여, 69세) 씨는 이곳의 빈대떡 문화를 만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 처음 이곳은 시어머니께서 시작하셨어. 시장 한복판 노점에서 나물 종류를 팔았지. 나물 종류는 없는 거 없이 삶아가지고 팔았지 뭐. 그렇게 10년을 도와드리고 나 혼자 10년을 더 한 거지. 그때만 해도 서른 중반이었어. 그러다가 날이 더워지고 나물이 안 팔릴 때는 상해서 버리게 되니까 빈대떡을 해보자 하고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예전에는 솥뚜껑에 빈대떡을 부쳐 먹고 그랬어. 시골에서는 녹두빈대떡을 할 때 돼지기름을 솥뚜껑 가에다가 막 잘라서 넣고 기름이 쪽 빠지면 녹두 간 것을 가운데다 딱 놓잖아. 그래 기름이 자글자글 배어 들어가면 빨리 익고 맛있었지.”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빈대떡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음식이다. 조선시대 빈대떡의 재료도 역시 녹두였다. 내용물은 지금의 빈대떡과는 조금 다르다. 밤이나 팥을 꿀과 반죽하여 소를 만들어 녹두 반죽을 덮어 지져내는 음식이었다. 떡 종류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이용기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년)에는 빈대떡의 속에 파, 미나리, 배추의 흰 줄거리 데친 것, 쇠고기나 닭고기·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양념한 것, 표고·석이·목이 버섯, 해삼과 전복까지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빈대떡을 부칠 때 돼지기름을 사용한 것은 19세기 말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와 음식을 볶을 때 돼지기름을 사용하면서부터라는 것이다. 빈대떡의 소가 다양해지면서 각종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것도 일제 강점기 이후라고 한다. 


  『경향신문』 1947년 6월 28일 자에는 「거리의 화제(5) 날로 번창하는 빈대떡집」이라는 기사가 있다.  ‘빈대떡이라고도 하고 빈자떡이라고도 하는 녹두로 만드는 이 물건은 노인네들의 말을 들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빈자떡이라고 한다. 그러면 요즈음 거리나 골목은 말할 것 없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빈자떡집은 무엇을 말함인가. 이 많은 빈자떡집들이 손님으로 터질 지경이다. 손님들의 모습은 대부분 빈자가 아닌 문화인 신사들이다.... “자네 한 이백 원 있나?” 하고 초저녁 때면 찾아 들어가는 서울의 빈자떡집은 허망한 남조선의 혼란 모순 곤궁의 한 개 축도일까?’라는 내용의 기사에서 해방 직후 곤궁했던 사회상을 살필 수 있다.      


   빈대떡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원과 재료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서민들을 위한 부담 없는 요리이며 술안주가 되었다.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이지만, 그것보다도 비가 오는 날에 막걸리 한잔과 더불어 생각나는 것이 빈대떡이다. 먹을 것 귀하던 시절, 기름진 빈대떡으로 든든한 한 끼를 채울 수 있었던 추억이 있기 때문일까. 맛있는 빈대떡은 기름에 튀기다시피 지저야 아작아작하고 맛있다. 


  녹두는 애기 엉덩짝 두드리듯이 가만히 두면 익지.
빈대떡은 누르면 기름이 안 들어가서 맛이 없어.
속이 안 익어.
부추전이나 김치전은 눌러야 맛이 있고.
빈대떡은 두어야 기름이 쏙쏙 들어가면서 맛있게 익지.    

  빈대떡의 맛을 살리는 또 한 가지 비결은 바로 숙주의 아삭함이다. 박가네 여주인이 그 비결을 알려주었다.

  “옛날에는 우리 어렸을 때, 엄마들이 숙주를 삶아가지고 물기 꼭 짜가지고 부쳐 먹었잖아. 녹두 간 데다 넣어서. 근데 빈대떡을 부치면서 숙주 수분이 없으니까 머리카락같이 얇아가지고 질겨져요. 익은 데다 기름에 또 마르지, 부쳐서 내놓으면 또 마르지. 그래 숙주가 씹는 맛이 없어요. 고민하다가 숙주를 날 것으로 해보자 했지. 그러니까 손님들이 숙주의 향도 나고 아삭하고 맛있다고 해요.”


  그녀가 아삭한 숙주가 씹히는 맛있는 빈대떡의 비법을 알게 된 것도 오랫동안 나물을 팔면서 터득한 경험 덕분이다. 시장의 좌판에서 하루를 열었던 삶은 고단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런 어머니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딸(추상미 씨)이 있다는 점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박가네 주인이 박금순 씨라는 것을 잘 모른다. 주인의 얼굴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빈대떡 맛을 알고 찾는 나이 든 단골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백녹두, 신선한 기름, 현무암을 손으로 쪼아 만든 맷돌, 빈대떡에 들어가는 별도로 만든 김치. 살아있는 숙주가 있어야 한다는 고집이 박가네 빈대떡의 특별함을 만들었나 보다. 고소한 기름에 지져진 바삭한 빈대떡의 속은 부드럽다. 고기가 든 빈대떡, 새우와 홍합이 든 해물 빈대떡도 있다. 향긋한 숙주가 씹히는 본연의 빈대떡과 함께 맛을 비교해 보시기를 권한다.                          



광장시장 박가네 빈대떡은 박금순(여, 69세) 씨의 뒤를 이어 딸 추상미 씨가 운영하고 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역사유산' : 근대신문 속 음식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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