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짚으셨어요. 그거 저 아니에요.”
나는 죽일 듯이 노려보는 서연이 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갑자기 불러내서는 마치 서연이가 투신한 게 나 때문인 것처럼 몰고 가는 그를 보자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테이블 위에 올라온 그의 주먹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래도 아니야?”
그의 손끝이 다이어리에 적힌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가리켰다. 그걸 보자 목울대가 꿀렁였다.
“아, 그건 전데... 서연이 괴롭혔던 사람은 따로 있다니까요.”
억울함이 밀려왔다. 오늘 오전에 참고인을 자청해서 경찰서까지 갔다 왔다는 말을 하려다가 속말을 꾹 참았다. 잠시 용의자 제보를 받고 출동하던 형사의 뒷모습이 눈에 스쳐지나갔다. 서연이 아버지가 날 찾아와서 이렇게까지 따지는걸 보면 아마도 그 용의자는 혐의에서 벗어난 듯 했다.
“그럼, 누구야.”
“서연이 일기장을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건 서연이가 알겠죠.”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되받아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핏발 선 눈을 양옆으로 굴리며 가늠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정적이 길어지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면 서연이 아버지 하고 나는 처음부터 틀어진 관계였다. SNS를 통해 두 번 다시 이딴 사진 보내지 말라는 것이 첫 대화였으니 할 말 다한 거다. 도대체 어디부터 나와 서연이가 나눴던 문자를 들여다 본건지 소름이 끼쳤다.
“야, 넌 지금 이게 장난 같아 보여?”
깍지 낀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가 위압적으로 말했다.
“저도 안 믿겨요. 서연이가 그렇게 됐다는 게...”
“하아, 안 믿겨? 매일 같이 나체 사진 보내고, 비번 알아내서 SNS 감시하고...”
“나체는 무슨! 그냥 운동하고 나서 웃통 좀 깐 거 보내준 거예요.”
갑자기 높아진 언성에 카페 안에 앉아 있던 주변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나는 고개를 젖히고 잠시 천장을 쳐다보았다. 왜 이런 것까지 여자 친구 아버지 되는 사람한테 말해야 하는 건지 울화가 치밀었다. 임서연 한 명하고 사귀는 것일 뿐인데 얽힌 사람은 수많았다. 친구랍시고 스토킹 짓거리를 하는 최도윤이며, 성적 떨어진다고 정리하라는 어머니며, 나체 사진 보내지 말라고 경고하는 아버지까지. 도대체 무슨 관계들이 이렇게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건지 답답했다.
“서연이가 분명히 경고했던데. 저질스러운 사진 보내지 말라고.”
“그거야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죠. 여자애들 내숭 떠니까. 그리고 사귀는 사이에 그런 거 안 하면 뭐해요? 요즘 다 그러고 놀아요.”
“걸레, 라고 불렸다던데.”
주저리주저리 말하던 나는 그 말에 들이켰던 숨을 채 내뱉지도 못하고 그를 건너다보았다. 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주먹 쥔 엄지손으로 검지 손마디를 문대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아, 근데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최도윤이라고요, 그 소문 퍼뜨린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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