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비행기
미세한 몸의 쏠림이 느껴졌다. 몸이 약간 뒤로 뉘이는 듯하더니 어느새 몸은 중심을 잡았다. 흘긋 옆의 창문 너머를 보니 그제야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앞에서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뱅글뱅글 정해진 경로를 천천히 돌아가며 장치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듯했다.
지금 속도로 어떻게 이렇게 큰 무게를 하늘로 띄우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제 곧 이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귀에 꽂혔다.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퀴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우우웅- 점점 더 빨라지는 바퀴 소리, 점점 더 휙휙 지나가는 창 밖의 풍경들은 얼마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체감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 날개에 힘이 생길 정도로 엔진의 추력이 힘을 갖게 되면 드디어 비행이 시작된다. 천천히 바퀴도 안으로 접혀 들어간다. 비행기의 무게와 양력이 같아지고, 추력과 향력이 같아지는 상태에서 비행기는 수평을 유지하며 순항하게 된다.
비행기를 한 두 번 타본 것도 아닌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언제쯤 상승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맹숭맹숭 비행기가 활주로 도는 것처럼 늘 같은 자리만 맴맴 도는 기분을 날마다 느끼며 살아간다. 그렇게 쌓인 하루하루는 내게 너무 짐처럼 무겁기만 하다. 도대체 나이는 들어가는데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내가 뭘 배웠다고 할 수 있고 어떤 실력을 쌓았다고 스스로에게 자부를 할 수 있을까.
활주로를 도는 비행기는 비행을 할 수 있는지 점검을 하는 시간이고 따라서 성공적인 비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점검을 마치게 되면 이륙 허가를 받고 드디어 날개의 연료탱크를 연소시켜 엔진의 추력을 받아 뜨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점검하는 시기’는 이제 마쳐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제는 어떤 것에 추진력을 얻어 상승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열망도 들었다. 계속 같은 자리를 돌고만 있는 답답함이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상승시킬 연료가 충분한지도 모르겠고, 준비가 제대로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비행을 해야만 하는 시기는 올 것이고 그때는 정말 멋지게 날아오르고 싶다는 기도가 나왔다. 비행기가 엔진의 고속 추력을 정해진 타이밍에 잘 받아 이륙을 성공하듯이, 내 인생에도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연료들이 상승을 해야 할 시기에 잘 작동하여 내가 나를 넘어서는 추력을 발휘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