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 복순이는 실내에서는 절대 배변을 하지 않는다. 강아지가 배변을 최대 6-8시간을 참을 수 있다고 하기에, 하루 3-4회 반드시 산책을 나가야 한다.
아내와 주말에 팝업식당을 하게 되어 주말마다 복순이를 집에 둘 수 없어 식당으로 함께 출퇴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방형 케이지가 아직 없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넣고 안고 다닐 수 있는 포대기를 어깨에 메고 서울숲으로 향했다.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2호선으로 환승, 다시 수인선으로 환승하여 서울숲 역에서 내리는 경로다.
포대기 테두리 쪽에 그물 망사가 있어서 복순이의 얼굴을 가릴 수 있었지만,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복순이 얼굴이 내 가슴팍 높이에서 튀어나왔고, 사람들은 복순이를 발견하면 살짝 놀라거나 귀여워했다. 자신의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주기적으로 복순이를 관찰했다. 복순이는 내향형이고 나와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한 강아지여서 답답할 수도 있는 포대기에서도 얌전히 있다.
하루는 외국인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강아지가 참 얌전하다고. 얌전한 게 아니라 예민해서 조용한 거라 대답해 주었다. 복순이를 보고 내게 말을 걸었으니 할아버지도 강아지를 키우셨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을 꺼내 자기가 키우던 몰티즈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할아버지께 한국에 왜 오셨는지 여쭈니 아내와 함께 아시아로 전도 여행 중이라고 한다. 나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하시면서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냐고 하시길래 그런 적 없다고 했더니 놀라워하셨다.
어떤 아저씨는 나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관심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불만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판단하기도 전에 복순이가 왜 이렇게 얌전하고 귀엽냐며 복순이를 만지려고 하길래 나는 몸을 틀며 예민해서 물거라 이야기해 주었다. 무례하다고 느껴질 수 있었지만 대화를 해보니, 반가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해서 그런 거였다. 자기네 강아지는 스탠더드 푸들이라 이렇게 데리고 다니는 생각을 전혀 못해서 연신 부럽다는 말을 우리에게 건넸다.
어떤 아주머니는 복순이를 매고 있는 나에게 앉으라며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복순이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강아지 때문에 유난 떨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연신 거절했지만 아주머니는 다시 앉지 않으셨고, 아주머니의 배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아주머니와 아내는 개 키우는 사람의 대화를 했고, 알고 보니 아주머니는 강아지를 키운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분이라 아마도 강아지에 대한 사랑이 한창 넘치는 분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2-3 정거장 뒤에 내리면서 다시 아주머니께 자리를 돌려드렸다.
나는 절대 남에게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이 아니지만, 복순이와 산책하면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와 내가 강아지를 키운다는 사실로도 보이지 않는 벽이 금세 허물어진다. 강아지 때문에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받은 이유는 그 사람이 강아지에게 가지는 감정과 내가 복순이에게 가지는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동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