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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Mar 31. 2024

여행기 : 6살 남아와 함께한 프라하 2

차돌짬뽕 그 이후 (아직 4일 남았음)

불빛이 도시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두 칸짜리 빨간 트람이 다니고 손바닥만 한 돌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울퉁불퉁한 인도를 걸으니 내가 다시 프라하에 왔다는 것을 느낀다.

4번째 프라하이다. 진부하지만 진부해서 더 낭만적인 도시가 프라하 아닐까.

나는 빠리에서 6년 반을 살았지만 파리와 프라하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프라하란 도시는 뭐랄까...



깨끗한 버전의 파리랄까?

42년간 공산주의국가였다가 사회주의 국가가 된 체코슬로바키아에는 파리에서 경험할 수 없는 정돈됨이 있다. 프랑스는 혁명과 자유가 키워드라고 하지만 그 자유 뒤에 숨겨진 무질서와 무도덕이 프랑스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닌다. 아름다움과 낭만이 가득하지만 더러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 파리라면

프라하는 낭만과 아름다움 속에 질서 정연함과 규칙이 함께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 하지만 공평하게 배분되어 있는 도시 속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아, 이곳은 공산주의국가였구나 하는 것을 되새겨주곤 한다.


다섯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도착한 프라하에서 우리가 갈 목표지는 명확했다.

숙소는 프라하 5 지역, 구글맵으로 보니 식당도 없고 엄한 동네이다. 가서 밥도 못 얻어먹겠다 싶어 시내에 있는 한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어야 했다.

한국식 중식당으로 유명한 그곳에 도착해 고대하던 차돌짬뽕과 탕수육 그리고 빠지면 섭섭한, 한식과 잘 어울릴 필스너 우르겔 한 잔(500)을 주문한다.

일요일 저녁이고 손님이 겨우 3 테이블 남짓이었지만 우리의 음식은  주방장의 철두철미한 계획에 있는 듯, 너무도 천천히 나왔다.

한국식으로 모든 메뉴를 한꺼번에 주문했더라면

“어라! 전식 본식 분간 없이 시킨 거 보니 성격급한 한국인이 틀림없군” 하며 주방장이 신속하게 요리해 주셨을 텐데 전식과 본식을 따로 주문하는 바람에 주방장님이 "코스에는 시차가 중요한 유럽 사람들한테는 전식과 본식의 간격을 둔 채 음식 본연의 맛보다는 본인들의 수다가 제일 중요하지. 그러니 이 그 시간을 존중하겠어!" 하고  다짐하신 주빙장님은 우리가 주문한 탕수육과 짬뽕의 텀이 너무 길어 베를린부터 기대하던 차돌짬뽕의 온전한 기대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베를린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한식집 짬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상 깊게 맛있었다.

아, 물론 가격도 베를린의 어느 식당에 뒤지지 않게 비쌌다. (체코는 베를린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걸 감안해도 음식값이 비쌌다.)


6살 남아와 남편과 나 모두 만족스러운 저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모두 기절.



다음날(월요일)

우리 가족은 예상이란 것을 하지 않았고 계획이란 없으므로 오늘 할 일은 오늘 아침 먹으면서 생각해야 한다. 일단 중요한 것은

6세 남아님의 피로 누적을 대비한 한 시간 간격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과

6세 남아님의 폭발하는 에너지 분산을 위한 놀이터 방문과

6세 남아님의 기분 조절을 위한 달달한 음식 제공 등이 주요 일정이었다.



호텔은 정말 비주얼만 좋았지 물가 비싼 북유럽의 호텔보다 더 야박한 음식 가짓수에 놀랐고

3일 머무는 동안 매번 우리의 방 번호를 매번 물었던 호텔 직원의 무심함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튿날. 그러니까 우리의 본격적인 여행 첫째 날은

베를린과 비슷한 날씨로 추웠고 흐렸기에 우리는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해보았다.

과연, 지난밤 지하철 역에서 숙소까지 걸어왔던 6차선의 도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이며, 정녕 이곳은 6차선도로 말고는 없는가를 중점으로 동네 산책(이라 하고 사태파악)을 했다.

우리의 비주얼만 예쁘고 위치가 엄한 숙소 얘기를 더 하자면 이곳은 한국의 판교 같은 곳인데, 각국의 대기업 회사들이 모여 있는 구역이었다.

이런 곳에 스타벅스가 있다고? 할 정도로 엄한 위치에 스타벅스가 떡 하니 있고(물론 우리 숙소도 이런 곳에 호텔이 있다고? 하는 의심을 갖아야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그 주변으로 새집 증후군 트라우마를 연상케 할 건물들이 엉뚱하게 세워져 있다. 그 건물 위로는 전 세계인 누가 봐도 알만한 회사의 네온사인이 박혀있다.

회사 주변으로는 새로 지어지거나 짓는 중인 빌라형태의 주택이 가득한데, 그 단지 내 언덕에 너무도 이질적인 W간판이 세워져 있다. 뭔가 내가 제일 처음 세운 심시티 같달까...


가만히 놀이터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후 3-4시에는 한 손에 폭 안길만한 크기의 강아지와 (고급진 유모차) 부가부 유모차에 아이 한 명 혹은 둘을 데리고 다니는 동네였다. 저녁 6시가 되면 누가 봐도 엔지니어 같은 날씬이라 적고 삐쩍 말은 몸에 거북목을 가진 남성들이 한쪽 방향으로 퇴근을 하고

계속 통화중이지만 아이에게만은 친절한 대꾸를 하던 벤츠에서 꼼짝 하지 않던 엄마와 기계음 처럼 엄마를 불러 대던 아이가 한국의 아파트에서 보던 우레탄이 깔린 신식 놀이터에 있던 모습들이 참 인상 깊었다.

매우 이상한 동네이지만 이튿날부터 매우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가벼운 산책 후 시내로 밥을 먹으러 다녀오고, 한끼를 먹기위해 오고 가는 것만으로 급격하게 에너지가 소진된 3인은 다시 호텔방으로 긴급복귀하여 넷플릭스와 닌텐도로 긴급 수혈 후 요 몇 년 사이 가장 성의 없이 만든 체코 판교 스타일의 피자를 먹으며 첫째 날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우린 오늘 세끼니 외 동네 정세 파악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첫째 날을 마무리하며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었을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첫째 날과 셋째 날까지 우리는 별다를 것 없이 여행 혹은 공간 이동을 했을 뿐인데

그럼에도 어째서 여행기를 쓰려고 했던 것일까...


아, 그 이유는 바로



내 프랑스 여행기가 너무 재밌었는데 아무도 안 읽어주고 하트도 안 눌러 줘서 어떻게든 홍보해보고 싶어 글을 쓴 것 같다.

그나저나 6세 남아와 함께한 프라하 여행기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갑자기 막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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