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7살 아이와 함께 산다. 일주일의 90프로는 복작복작 사람의 소리가 채워지고 남은 십 프로의 오프로는 남편이 친구를 만나러 간 저녁. 아이가 일찍 잠들어 내가 저녁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되겠다. 아직 미혼이며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이 이 한 문장을 읽었을 때 드는 생각이 부디
아이 때문에 자신의 삶이 사라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삶의 의미가 크게 없었고 인생에 유머 따위는 없던 사람에게 아이라는 것은 매일 웃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다. 혹은 "나의 인생을 손해 보는 것이다"라는 말로 계산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삶은 일이 많아질수록 빼곡하게 채워진다. 내가 혼자였던 때, 남편과 단 둘이었을 때 무엇을 더 많이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삶을 꽉 채우고 보람차게 살게 된건 아이와 함께 살면서부터이다.
어른의 체력은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어린이들의 하루는 오쏘몰 이뮨을 세 달 치 먹어도 감당이 안될 양이다.
이보다 하루를, 일년을 꽉 채우고 살아갈 다른 방법은 없다.
나는 종종 이 고요한 시간을 즐기는 중이다. 무엇하나 덧붙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 담백한 이 시간에 글이라도 잘 써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고. 일기장의 짧은 메모마저 남기지 못하더라도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이 짜 맞춰지기만 해 줘도 좋은 순간의 연속이 될 것이다.
여느 해와 같이 나의 일 년은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고 마트에는 유난스럽도록 10월이 시작되자마자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 유럽인들의 긴 겨울의 유일한 행복이자 유일한 낙이 크리스마스 뿐이니 그럴 수 있겠구나 한다지만 여름이 끝나자마자 10월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는건 조금 섣부르지 않은가?
유럽살이 16년 차. 심리적 겨울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서머타임이 종료가 되면 자연스레 이런 고요한 밤 좋아하는 향초를 하나 켜두고 사색에 잠긴다.
올해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이번 해에는 무엇을 했는지 차근차근 곱씹는다.
나이를 먹어 다행인 거 젊었을 땐 1년간 고작 책 몇 권 읽은 것, 부지런히 기록한 것 따위에는 귀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젠, 그 작은 것들에 감사해진다.
한강 작가 덕분에 올해 책을 다섯 권(아이 책을 대신 읽어준 것을 포함하면 서른 권도 넘지만 이건 과감하게 빼본다.)이나 읽은 것. 매일은 아니어도 매달 다이어리를 작성한 일에 대해 장하고 뿌듯함으로 나 자신을 토닥여 줄 수 있는 것은 이번 한해는 내가 바르게 나이를 먹었다는 증표가 되는 것이다.
사실 나의 올초 계획에 있던 야심 찬 계획 - 큰 집으로 이사하기와 매달 200씩 부수입을 올리는 것, 주 4회 달리기 같은 위대한 것들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흔을 앞둔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실망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것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그것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
주 1-2회라도 달리기를 1년 내내 꾸준히 해왔다는 점. 경제적인 큰 변화는 없었지만 좌절스러운 일도 없었다는 점이 잘해왔다는 결과라고 생각하면 나 스스로가 제법 잘 보낸 한 해 같다는 생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월 말에나 해야 할 것 같은 연말결산이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나의 고요한 시간에는 나 자신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기에 이 사람은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수 있지만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의도하는 바는 단 하나도 없다.
그저 나의 글을 읽고 하트를 달칵 클릭해주는 것. 오늘의 나와 같던 사람이 지구 어느한켠에도 있구나 하며 미소짓는 것 그것이 전부일 뿐이다.
나도 한강 작가처럼 문장을 끊어 읽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문체로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아니기에. 아주 짧고 단순하게 글을 적어내려본다. 이렇게 써 내 놓은것만으로도 잘 했다 스스로 칭찬해주는 것은 덤이다.
글을 사랑하는 당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당신
K직장생활에 찌들어 퇴근하는 당신에게도
오늘 하루를 보내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건배를 하는 당신에게도
넥플릭스와 유뷰트도 꺼버리고
냉장고 돌아가는 모터소리를 배경 삼아
나와의 고요한 시간을 갖어보시길 권해보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