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스팅(The Sting), 추억(The Way We Were),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머나먼 다리(Bridge Too Far),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트루스(Truth),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st night) 등은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출연한 영화다. 그의 몇몇 작품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은퇴작 미스터 스마일(The Old Man & The Gun)을 보고 나서다. 삶과 삶 행간에 있는 낱말이 와르르 쏟아지는 노인 레드포드가 너무나 멋있기에 이 배우의 지난날이 다시 보고 싶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영화 「미스터 스마일」에서 은행털이범 역할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은행을 털면서 살아가는 칠십이 넘은 노인 역이다. 이 노인은 열세 살에 자전거 절도를 시작으로 열여섯 번이나 탈옥을 성공한 사람이며 퇴물 갱단(영화에서 평균 나이 육십칠 세인 수배범으로 지칭되는 세 명의 명칭이다) 일원으로 은행을 턴다. 그렇다면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복면한 강도나 총격전, 공포로 빚어진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그러나 이런 뻔한 영상은 이 영화에서 볼 수 없다. 오히려 부드러운 몸짓과 행복한 웃음으로 농담할 줄 아는 노인이 유유히 돈을 챙겨가고 피해자들은 그를 강도가 아니라 신사였다고 증언하는 것. 생계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로 접근한 은행털이범 이야기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인생처럼 느껴졌다. 저명한 팔십 대 배우 인생을 통해 늙음을 생각하면서.
이 영화에서 로버트 레드포드는 역할이나 연기로 인한 감동보다는 노인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배우가 품고 있는 분위기로 충분하다. 그것은 걸음도 느리고 행동 또한 민첩하지 못하지만 남의 말을 경청하는 신사다운 태도 같은 것이다. 황혼 로맨스를 향한 진심 어린 표정은 상대방이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진정성이 조용한 열정으로 다가온다. 체념과 체념을 반복하는 어휘보다는 체념과 체념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어휘를 찾게 하는 표정이 깊은 감동을 준다. 은행털이범임에도 주머니 속에 있는 총을 한 번도 쏜 적이 없는 그가 많은 이에게 노인이라기보다는 신사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참으로 묘한 일이다.
“비극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도 고통받고 늙어간다. 네가 무얼 해도 시간이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지 말아라.”
- 윌리암 스태퍼드(William Stafford), 삶이란 어떤 거냐면(The Way It Is) -
늙음이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늙음을 평가 절하하는 일에 신물이 나기도 하지만 정작 누가 누구를 혐오하며 평가절하하는 행위에 가담하는 일도 졸리는 일이다. 늙음에 대한 담론을 말하다 보면, 늙음이 아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지는 엉뚱한 말 홍수에 빠지는 것도 재미없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논리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늙음을 부정하려는 아이러니도 지겹다. 젊음에 대한 욕망은 늙음의 저편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인지, 이 욕망에서 자유로운 일이 그리 어려운 것인지 아리송하다가 조만간 젊음과 늙음이라는 생각 자체를 그만둔다. 너도 이 나이 돼 봐라거나, 늙은 게 죄냐고 반문하거나, 늙으면 죽어야 해라는 무시무시한 문장과 늙음을 비하하는 신조어까지. 어디선가 들어본 말인데 종종 그 말이 총알처럼 마음에 박힌다. 왜 그럴까.
늙었기 때문에 오는 거절감이나 패배감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패턴은 비슷하다. 세상이 빨리 변해가니 때때마다 겪게 되는 어둑한 감정 곡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넋두리한다. 마음대로 자기 좌표를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은 점점 줄어들고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걸림돌은 늙음으로만 겪는 감정이 아니지만, 나이를 해석하는 감정 곡선의 패러다임이 그리 다양하지 않다.
젊음과 늙음으로 이분화된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시간이 끌고 가는 삶을 어찌 저지할 수 있을까. 이제는 죽은 시인이 된 윌리암 스태퍼드(William Stafford)도 결국 막을 수 없는 시간을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았는가. 정작 인생에서 놓치지 않고 잡고 있어야 하는 실(thread)은 무엇인지를. 그 실은 꿈일 수 있고 정의 일 수 있지만 절대로 놓치거나, 변하면 안 되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로버트 레드포드가 영화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주름진 얼굴이다. 주름 가득한 노년 배우의 얼굴은 예술적 감각이 켜켜이 스며 있다. 웃을 때 더 늘어나는 주름 사이사이에서 노신사의 연륜은 풍부하다. 내면에서 나오는 자기 삶이 얼굴 주름으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은 인생이 홀씨처럼 가벼울 때, 삶을 조응(照應)하는 미세한 새소리 같은 떨림이다. 영화에서 퇴물 갱단으로서 추적 대상이 되지만, 그 일을 감당하면서도 그의 품속에 있던 총은 한 번도 방아쇠가 당겨진 일은 없었다. 그에게 총이란 외부로 향한 삶이 아닌 내면 깊이 뿌리내린 자존감의 은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그가 은행털이범이라는 인물의 도덕적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인다.
영화 속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누구나 삶의 주인공이자 조연이다. 삶을 반추하는 관점이 자기와 타인의 눈으로 묘사하고 묘사되는 영역은 상당히 다양하다. 이것저것 비교하며 꼼꼼하게 삶의 불씨를 살펴보는 것이 인생이다. 나이로 평가하는 모든 찬사와 비난은 어느 담벼락에 비친 가로등 등불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아주 미세한 것들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라는 말처럼, 나이를 방어하는 인사는 삶의 불씨와 상관이 없다. 맞지 않는 옷에 억지로 몸을 구겨놓은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언젠가 밤이 오고 아침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과 전혀 상관이 없다.
퇴물 갱단의 일원으로 온전한 자기 삶의 찬사와 비난을 감당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총은 결코 늙음을 한탄하거나 방어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리라. 마음속에 간직한 총은 자기 웃음이고 자기 얼굴이며 자존감이 가득한 로맨스다. 이 모든 것이 퇴물로 묘사된 들 어떠리. 인생의 길목을 돌아서 나가면 또 다른 길이 나오는 것을. 그러다 어느 길에서 사라지는 것을.
로버트 레드포드가 사라진 길은 어디쯤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