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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맑은물 May 06. 2023

두둥둥, 손가락 움직임과 손끝 압력과 손톱 감각

  서랍에서 기타 줄 봉투가 손에 걸린다. 어라? 이것이 여기에 있었구나…. 이제는 잘 치지 않는 기타. 여분으로 남겨 둔 줄이다. 참 오랫동안 기타를 치지 않았다.   

   

  외롭고 지루했던 시절이었다. 낯선 도시, 신혼생활, 조심해야 하는 임신초기의 불안함. 듬성듬성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합류하는 일이 서툴렀던 날들. 웃고 떠드는 일과는 결이 조금 다른, 시간 공백 넓이만큼 내면 생명력에 대한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시절.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개인 취향과 상당히 밀접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모르지 않았기에 그 누군가와의 이야기 나눔이 절실했던 시절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바쁜 것과 상관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날들임에도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을 데리고 다니는지, 지루한 일상은 휴식도 없는지, 결정권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의 앙앙불락 시간은 맥없이 소진되었다.

  책을 읽는 일도 시들해지고 베란다에서 거리풍경을 보는 것도 그냥저냥 할 때 기타가 곁눈질했다. 여섯 줄에서 튕겨 나오는 제각각 소리 조합은 우줄우줄하게 공간에 맴돌았다. 방안 테이블 아래로 흐르다, 의자 다리를 휘휘 돌다가, 책장에 있는 책으로 여유작작 다가가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까. 불협화음조차도 기억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두둥둥, 하고 여섯 줄이 시차를 두고 울릴 때, 방 안에서 숨을 죽이거나 움직이고 있는 작은 먼지조차 기타 소리에 반응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상상했다. 다양한 소리를 내는 기타 몸체의 공명. 그 소리가 공기 중으로 퍼질 때 풍부한 상념을 갖게 했다. 왼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오른손 움직임으로 탄생하는 소리는 단절되었던 삶의 먹먹한 종소리 같다고 할까. 신음 같기도 한, 정갈하면서 다정한, 멀리 있는 듯 가까운, 눈을 가려도 들리는, 결코 박제될 수 없는 삶의 소리가 유의변전한 생생함으로 공간을 채웠다.

  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특성은 특별한 의도 없이 나오는 웃음 같았다. 굵기가 다른 여섯 개 기타 줄. 각기 저음과 고음 사이에서 숨기척이라도 찾아내는 울림이 저마다 달라 마음에 담쏙 안기는 평화와 비슷한 것들이었다. 여섯 줄에서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은 상황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마음 같았다. 줄이 느슨하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고 팽팽하면 끊어진다. 민감한 감각을 지닌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긴장이 섬세한 감정을 만드는 것처럼 기타와의 완급조절은 허세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아 좋았다. 자세히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친밀감 같은 것. 그 느낌을 손가락 움직임과 손끝 압력과 손톱 감각이 이미 알아챘다.

  양 손가락을 이용해야 소리가 나고 두 로 기타를 품에 안고 서로 기대어야 좋은 소리를 낸다. 왼손으로 줄을 잡고 오른손으로 줄을 튕기면 여섯 줄의 울림이 울림통에 들어가 몇 바퀴를 돈 다음 화음을 뱉는다. 기타 몸체에 조금만 금이 가도 모래주머니 만지는 소리가 난다. 굵은 줄처럼 가라앉아 있는 허무한 일상, 중간 줄처럼 어정쩡하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가는 줄처럼 남보다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아킬레스건이 울림통에 들어가 화음이 된다. 왼손과 오른손의 조화, 가슴에 안겨 울리는 기타는 사람 마음을 품게 한다.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식구가 늘어남으로 달라졌다. 소설책 읽는 일이 아이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베란다에서 무연히 거리풍경을 보는 일이 아이 옷을 널고 거두어들이는 날로 달라졌다. 아이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는 내 마음에 있는 울림통에서 화음이 되었다. 그때, 종종 치던 기타는 작은 눈으로 웃어주고, 큰 입으로 웃어주었다. 그 소리는 코를 실룩거리며 찡끗하는 웃음 선율이었다. 웃음에 빛이 있다면, 아마 그 빛은 잔잔하게 번지는 따뜻함이었을 것이다. 기타는 특별한 의도가 없어도 따뜻할 수 있는 웃음이었고 골짜기와 등성이를 오르내리는 삶의 여정에서 흔들림을 잡아주는 손이었다   

  

  얼마 전, 공연을 보았다. 기타 하나로 인생을 노래했던 가수들도 나이가 들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타는 예전보다 훨씬 좋은 것이겠지만 그들 음악은 예전 같지 않았다. 성량도 약하고 목소리에 힘도 부족했다. 그러나 나의 외롭고 지루한 지난날 기억이 가수의 약한 성량처럼, 삶의 깜부기불처럼, 반짝반짝했다. 음향기기를 타고 울리는 기타 소리는 내 이야기를 데리고 불꽃처럼 둥실 공연장을 떠돌아다녔다. 그동안 누워있던 생각이 차차 선명해지며 활개 쳤다. 깊은 무력감이라도 살아있는 생명은 누워있는 생각에서 깨어난다는 것. 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의 손가락에서 우울하고 무기력한 현실을 털고 일어나는 불특정한 사람들 힘이 느껴졌다. 기타를 튕기는 힘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여섯 개 기타 줄을 조율해서 만날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 생각이 마음에서 메아리친다.  증폭이 점점 빨라진다. 그 속도가 가량맞을지라도 삶 이야기를 맘껏 풀어놓을 것이다. 기타 위에 살포시 쌓인 먼지를 쓸어버리고 지난 이야기를 여섯 줄 서사로 얼크러지게 할 것이다. 그러면 나의 기타 이야기는 집안을 가득 채울 것이다. 비록 서툰 음의 진동이라 해도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환상과 현실의 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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