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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맑은물 Aug 16. 2024

시대가 흐른다

2024 [좋은수필] 8월호 원고

  2024년 여름, 대학로는 여전히 활기로 가득하다. 어디선가 새소리처럼 들리는 사람들 소리로 번잡하다. 이 번잡함이 좋다. 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소리 내어 웃고 싶다. 더운 날 열기가 사람들 발걸음처럼 쿵쿵거린다.  

   

  대학로가 처음 생길 무렵이었다.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주말이면 도로를 막아 만든 즉흥 무대에서 공연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차 없는 거리쯤 되겠지만 대중교통인 버스 노선을 변경했다는 편이 옳겠다. 젊은이를 위한 문화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바뀐 노선은 특히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에게 당황함을 안겨 주었다. 기존 노선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탓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정류장에서 내리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기도 했다.  

  공원에는 잔잔하게 통기타가 연주되거나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연극을 맛 보이기 위한 길거리 공연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다국어 시대다 보니 새롭지 않지만 그 당시, 분장한 배우들 뒤로 보이는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로 새겨진 간판을 읽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지식의 허영과 맞물려 영어 간판이 점점 늘어가는 풍경이 시작된 곳이 대학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외국어가 슬슬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점점 익숙해지던 날들. 아마도, 그때부터 우리말 대신 외국어에 길들여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사람들이 꽤 큰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몇 겹 원으로 둘러싸인 무리가 궁금해서 다가갔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그마한 할머니. 춤을 추고 있었다. 단조로운 춤이었지만, 예사롭지 않았다. 발걸음을 붙드는 놀라움이었다. 그의 꿈틀거리는 몸짓. 시선을 사로잡은 묘한 춤이 ‘병신춤’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두 손목을 엇갈리게 잡고 비틀어 팔이 꼬이는 손동작이 기이했기에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 비대칭으로 이목구비가 일그러질 때,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 생각났다. 도저히 사람 얼굴이라고 할 수 없는 추상적 모습. 그 얼굴은 슬픔 가득 담은 찌그러진 양재기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오래 써서 때가 찌들고 어딘가에서 부딪치고 깨진 상처투성이 그릇. 누구라도 짓고 싶지 않은 표정을 할머니는 일부러 만들고 있었다. 한복 치마에 가려 보이지 않는 다리는 움직임으로 보아 절뚝거리고 있음을 운율 타는 치맛자락 날림으로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유난히 작은 키. 자세히 보니 등이 굽었기 때문이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꼽추 등은 시대가 지닌 아픔을 고스란히 채우고 있는 덩어리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왜 ‘병신춤’을 추었을까.     

  지금으로부터 사오십 년 전, 저임금 도시 빈민층 마음을 그린 작품,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등장 인물이 생각난 것은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과 무관하지 않다. 불안정한 노동과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가장의 임금으로 많은 식구가 연명하며 살았던 시대 표정이 춤에 나타난다. 사회 소수자인 꼽추 아버지, 철거 경고장,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건물에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 공장에 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큰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꿈인 큰아들 영수, 버스 차장과 다방 종업원으로 일하며 식구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도록 힘을 보태는 큰딸 명희, 인쇄공장에 다니는 둘째 아들 영호, 투기업자에게 빼앗긴 입주권을 찾아오기 위해 순결을 잃어버린 막내딸 영희의 삶은 그 시대 모습이다.

  대학로에 있는 젊은이 중에는 이런 현실을 가슴에 묻어두고 ‘배워야 산다’는 어른들의 설움 담긴 말씀을 몸으로 받아낸 이들이 꽤 있었다. 문화 정책 일환으로 형성된 이 거리에서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잊는 것은 잠시, 잊히지 않는 아픔을 어쩌지 못했다. 젊음이라는 힘을 가동해 새로운 시대에 대해 꿈을 꾸었지만, 애써 잊으려고 용을 쓰면 쓸수록 반쯤 가려진 현실이 그리 쉽게 잊히지 않았으니. 이 거리가 마치 ‘낙원구 행복동’인 양, 세련된 간판에 마취되어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가난을 떼어내려 했던 사람들. 그러나 반쯤 가려진 현실을 엿보다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너저분한 현실을 목도한 사람들. 그래서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무리하게 애쓰는 일을 그만두었던 사람들. 그래도 계속 꿈을 만들고 시대를 매만진 사람들.   

  

  병신춤을 보며 아려오는 가슴을 움켜쥐었던 손으로 손뼉을 쳤으며 박수 소리와 목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어두운 현실을 파고드는 신실한 마음을 위로했다. 그 소리는 한탄과 탄식을 내포한 감탄이었다. 손바닥이 아플 만큼 쳐댔던 손뼉 소리는 소시민이 겪고 있는 통증을 어루만졌다. 할머니 얼굴에 눈물 되어 흐르는 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손, 두 다리를 곧게 펴고 등을 깊게 구부려 인사하는 작디작은 모습은 고통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일인 창무극의 대가’ 공옥진 여사는 이렇게 우리 시대 아픔을 몸으로 말했다. 백신이 부족해 생긴 곰보 자국, 월남전으로 잃어버린 이웃집 아저씨의 한쪽 팔, 약이 부족해 치료 시기를 놓쳐 마비된 몸 마디마디를 춤으로 말했다. 가난의 대물림 대명사인 장애인이 지금보다 많아 큰 욕이 되었던 ‘병신’이란 단어를 몸으로 받아내었다. 치료 없이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과 몸에 극심한 병을 얻어 살았던 많은 내적, 외적 장애인에게 이 단어를 거침없는 춤으로 표현했다. 공옥진 여사는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어 치료하는 신묘한 의술을 지닌 의사였는지도 모른다.   

  아픈 시대를 보다 명료한 색채로 덮어 보려는 의도가 이 거리 저 거리에 뒹굴었지만,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오롯이 아픈 부위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아픈 것은 아프다고 말하고 고름이 나는 상처를 치료하는 일에 인색해서 안 되었기에 공옥진 여사는 치유하는 힘을 발산한 것이리라. 쉰을 막 넘긴 나이에도 산파 할머니처럼 그 시대의 산고(産苦)를 춤으로 이겨냈으리라. 할머니는 ‘병신’이라는 장애인 비하 발언 뒤에는 우리가 몸과 마음이 아픈 장애인이라는 역설을 깨닫게 했다. 영원히 춤출 것 같았던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변화하는 시대를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는 사람들, 무수한 실선과 무수한 점선으로 이어지는 사람들, 이미 깨달은 무엇을 가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 시대는 어떤 춤으로 표현될까. 태양 빛이 직사하는 뜨거운 광장에 사람이 모인다. 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말의 중의적이며 중층적인 표현도 좋고 말이 탈색되어도 좋다. 말이 슬퍼도 욕이어도 좋고 말이 쏟아져 나와도 좋다. 모든 말이 춤이 되는 대학로에서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을 생각하다 조세희 작가를 생각하고 얼마 전에 작고한 김민기 가수를 생각한다. 말과 춤이, 문학과 노래가 이어지고 이어지는 공간과 장소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그렇게 시대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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