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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Aug 03. 2021

악명 높은 네덜란드 점심, 좋은 점도 있다!

한국을 떠올리면 제일 그리운 것 중 하나는 점심시간이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 식당에서 3-4000원이면 국, 밥에 반찬 몇 가지를 곁들인 백반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도시락을 챙겨가 동료들과 반찬을 나누어 먹거나, 매일은 아니지만 회사 주변 맛집 투어를 했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라 알차게 쓰기 위해 12시 땡 하면 나갔다. 근처에 맛있는 곳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으면 들뜬 마음으로 같이 가보는 게 소소한 재미였다. 그러고 나서 회사 근처 테이크아웃만 되는 카페에 줄을 서 커피를 한잔씩 사고 동네 한 바퀴를 걷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바쁘지 않은 날에는 이렇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기분 전환을 확실히 하고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보통 점심을 집에서 간단히 챙겨 오는 편이다. 일단 어딜 가나 음식 값이 비싸다. 구내 카페테리아가 있는데, 조그만 샌드위치 하나에 5 유로, 6 유로다. 그다지 퀄리티가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재료를 사서 집에서 대충 만들면 같은 가격으로 일주일 치 점심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 보니 귀찮아도 꾹 참고 점심을 챙겨가게 된다. (한국도 빵은 비싸지만, 한국 빵은 일단 맛이 있고... 여기서의 샌드위치는 비유하자면 한국에서는 김밥 한 줄 정도 될 것 같다). 제대로 된 식당에 가서 먹기엔 주문하고 음식 나오는데 기본 30분 넘게 걸리니 오래 걸리기도 하고, 일과 시간 중에는 가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리고 점심을 매우 간단히 먹는다. 샌드위치 하나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급한 일이 없더라도 컴퓨터 앞에서 일하면서 혹은 쉬면서 먹는 경우도 있고, 배가 고프면 미팅 중에 주섬주섬 꺼내서 대충 먹기도 한다. 같이 먹더라도 삼십 분 안에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키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덩치로 샌드위치 하나를 달랑 먹는 것을 보고 처음엔 놀랐다. 특히 제대로 된 샌드위치도 아니고, 슈퍼에서 파는 2 유로짜리 스프레드를 발라서 대충 먹는 걸 보면 영양 균형도 안 맞고, 저걸 먹고 힘이 나는 걸까 생각했다. 내가 토마토, 샐러드도 곁들이고 계란도 삶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면 "오, 점심 한번 럭셔리 한데~" 이런 반응을 할 정도다. 이런 식문화도 청교도적인 검소한 문화의 영향이라고도 하고, 우스갯소리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미각이 덜 발달해서라고도 하는데... 그래도 덩치 큰 더치인들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빵 한쪽을 꺼내 먹는 건 볼 수록 신기하다. 점심은 간단히 넘기지만, 이곳에서 제대로 식사라고 할만한 끼니는 저녁이다. 점심은 그저 허기를 달래는 용으로 때우고, 저녁엔 집에 가서 한 끼 식사를 제대로 먹는다.


나는 점심에도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에 익숙해서 (밥, 국, 하다못해 파스타) 요즘도 저녁에 남은 음식을 싸가기도 하고 오트밀 죽을 따뜻하게 데워서 먹기도 한다. 한국에서처럼 그냥 근처에 가서 후딱 국밥 한 그릇, 아니 김밥 한 줄에 장국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챙겨가는 편이다.


그래도 '점심 뭐 먹지'의 소소한 재미를 잃은 대신 얻은 것도 있다. 일단 일의 흐름이 크게 끊기지 않아 점심시간 이후에 일을 다시 시작하는데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나만 그럴 수도 있지만 거한 점심 식사 이후에 다시 일을 시작하려면 출근한 직후처럼 워밍업 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실제 먹는 데 한 20분, 먹고 정리하고 앉는데 10분, 점심 먹기 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서 하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에선 점심 먹으면서 미팅을 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라 효율적일 때가 많다. 아예 점심 미팅으로 해서 단체로 샌드위치를 주문해 먹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샌드위치..) 그리고 미팅이 아니어도 자연스레 각자 일 얘기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의 사생활 오픈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집에 빨리 갈 수 있다. 하루 8시간 일하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퇴근할 수 있으니 좋다. 또, "저녁"의 중요성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어서 야근이나 회사 이벤트를 하더라도 저녁 먹으러 집에 가야 한다고 하면 구차한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점심에 대한 아쉬움이 정말 사그라드지는 않았었는데, 재택근무를 하니 좋은 점 추가다. 점심도 거하고 저녁도 거하게 먹을 수 있다. 물론 하는 사람도 나, 먹는 사람도 나이니 오롯이 내 수고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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