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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Oct 21. 2019

두 번의 결혼식과 다섯 번의 장례식

누군가의 슬픔이 나의 경험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슬픔이 나의 경험이 된다는 것은

두 번의 결혼식과 다섯 번의 장례식






짧은 삶의 대부분을 정처 없이 떠돌며 지내다 보니, 지인들의 경조사에 함께할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았다. 지인을 넘어 가장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과 동거인 아버지의 장례식마저 참석할 수 없었으니, 알만한 삶이다. 그러한 내게도 두 번의 결혼식과 다섯 번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많지 않은 숫자지만 나름 두배 이상만큼 장례식에 자주 참석하였으니 어쩌면 이제 내게는 경사보단 조사가 더 익숙한 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결혼 생각이 없는 내게 대부분의 경사는 일종의 품앗이(?) 개념이라 보였고, 때문에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과 달리 참석 여부에는 의무감이랄 것이 없던 것도 적잖은 이유였지만 언젠가 '축하는 미뤄도 위로는 미루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난 후로 조사에 있어서 만큼은 나의 상태보다 상대의 마음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전히 혹은 아직은, 그리하며 살고 있다.




copyright 2016. 동경(insta@id1992) all rights reserved. [인도/갠지스강 화장터]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그 마저도 기억이 또렷하지 않은 어느 날에 같은 반 한 친구가 방학식을 끝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종례시간마다 차조심, 길조심, 불조심이란 구호를 외쳤는데 아마 친구는 그 셋 중 하나를 조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기다란 검은 차는 운동장을 배회했고 그 친구의 책상 위에는 하얀 꽃이 가득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아니라, 초등학생인 내 친구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친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몇 차례나 더, 어두운 긴 밤이 싫었던 내 사람들은 그 하늘을 밝히는 별이 되겠다며 멀어져 갔다.


"나 아직 정장 없으니까 아직 죽지도 말고 결혼도 하지 마라"


20대 초반, 농담 삼아 친구들에게 하던 말이다. 이제는 남은 결혼식이 몇 되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지, 축의/부의금은 얼마를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먼저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 큼의 시간을 보내다 와야 하는지. 누군가에게 희(喜)와 애(哀)로 가득 채운 그 시간이 당시 나에게는 그저 숙제와도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장례식 후로 20년 정도가 지났나. 적어도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는 일만큼은 평생 어색했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어색함을 기어이 익숙함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집에 있는 가장 어두운 옷을 골라 입으면서도 끊임없이 예의를 걱정하며 손발이 차갑던 스무 살의 내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이제는 큰 고민 없이 모든 채비를 다하고 근처 ATM을 찾는 내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copyright 2016. 동경(insta@id1992) all rights reserved. [스페인/산티아고 순례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색함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축하보다 위로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더욱이 실감하게 된다. 취업을 하는 만큼 이직에 실패하고, 결혼을 하는 만큼 이혼을 하고, 축복을 낳는 만큼 우울한 마음이 가득한 삶에 대한 위로. 떠난이의 부재를 온전히 안아야 할 남겨진 이에 대한 위로. 이제는 고맙다거나,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나무라는 말을 내게 직접 들려줄 수 없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이 가득한 그런 세상.


하염없이 걷다 보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그들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내 머리를 가득 수놓곤 한다. 이제는 때가 되어도 만날 수 없어 슬펐다가, 왠지 입에 담으면 안 될 것 같아 먹먹하다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감히 나의 경험이 되고, 한 편의 글로 쓰인다는 것이 적잖이 송구스럽지만 죽음에 대한 침묵보다 그들의 찬란한 삶을 기억하는 것이 가장 담백한 위로일 거라고. 멈추지 않는 생각에 스스로 몸이 닳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 뿐이라고.


며칠 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던 그가 먼 길을 떠났다. 이제는 그를 따라다니는 것이 근거 없는 꼬리말이 아닌, 가장 밝고도 어둡던 그의 길을 환히 비춰줄 커다란 달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랜만에 안녕을 빌어본다. 

부디 그곳에선 잘 지내냐는 말이 인사가 아니기를. 

그저, 마음껏 지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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