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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Nov 02. 2019

Please의 미학

별 거 아닌 것의 부드러운 힘


별 거 아닌 것의 부드러운 힘

Please의 미학





사람의 말과 향에 꽤나 민감합니다.


나의 공식적인 첫 출간물의 작가 소개말. 꽤나 고심하며 적어 내린 저 한 줄의 속내는 말 그대로 피곤한 성격이란 뜻이다. 좋아하는 만큼 그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의 종류만 해도 수십, 수백 개. 문득 예상컨대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이런 나의 성격에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하호호 떠들다 순식간에 미간이 팍 찌푸려져 있으니 말이다. 한 예로, 나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적잖이 무던한 그는 나의 열 받음에 종종 공감해주지 못하는데 '아, 그게 그런 뜻이야? 몰랐는데'하며 남은 복장을 마저 터지게 하거나 '생각 멈춰! 그만 가 그만!'하고 잘라도 잘라도 새로 생기는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나를 진정시키느라 곤욕을 치르곤 한다.


기분 좋을 때엔 '섬세' 수틀리면 '예민'해져 버리는 나는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말'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마울 때 고맙다고 하지 않는 것,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물음을 무시하는 것이다. 부탁해,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등. 늘 시간이 부족한 현대사회의 고충이려나, 그 3초의 시간이 부족해서 (몇몇) 사람들의 말 끝은 늘 허전하기만 하다.




copyright 2017. 동경(insta@id1992) all rights reserved. [인도/바라나시]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친구들은 여행 경험이 많은 나를 전적으로 믿고 히말라야와 인도 여행길에 올랐고, 나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그들의 귀와 입이 되어 열심히 묻고, 사고, 싸웠다. 약 세 달의 여정 동안 우리는 다행히 크게 다투거나 귀국 후 다시 얼굴 볼일이 없다는 등의 슬픈 결말은 없었고 그저 두 번의 (아마도) 가벼운 (나의) 지랄이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러했다.


"야, 그것 좀 해봐"

"그것 좀 줘봐"


친구 녀석 하나가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를 말로 자꾸만 나의 예민 스위치를 건드린 것이다. 나는 한 달가량을 참다가 결국, "시키지 말고 부탁을 하라"라고 했고 친구는 사뭇 당황한 얼굴로 전혀 몰랐다고 사과했다. (정확한 지랄과 빠른 인정은 우리의 인도 여행이 평화롭게 마무리된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여담이지만, 그 후로 친구는 한국에 돌아가 본인 가족들의 언어 습관이 본인과 아주 닮은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놈들이 모든 상황에서 자꾸만 입을 다물고 있기에 "가만히 있지 말고 그 손에 쥔 휴대폰으로 번역기 좀 켜라. 인스타 하려고 유심칩 산거냐"라고 성질을 냈다. 친구들은 그 후로 조금씩 용기를 내어 물건을 구매하고, 택시기사와 흥정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


갠지스강을 끼고 있는 인도의 바라나시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일행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을 뜨면 가트로 나가 짜이를 마시고 설사를 하고, 아침을 먹고 설사를 하고, 받아온 영화를 보다가 설사를 하고, 팔찌를 꼬다 화장실로 뛰어가는 일이 전부였다. 때문에 우리는 늘 물과 휴지를 들고 다녀야 했는데 하루는 가트로 나가는 길에 친구가 펜 한 자루를 사겠다기에 휴지도 살 겸 작은 상점에 함께 들렀다.


나는 먼저 휴지를 하나 사고 뒤로 빠져 벽에 기대 서있는데, 친구가 상점 직원을 향해 대뜸 외쳤다.


"One pen!" ( 펜 하나!)


펜 한 자루를 사겠다던 친구는 너무나도 정직하게, 말 그대로 펜 한 자루! 를 연신 외쳐댔다. 나는 그 뒤에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 비스듬히 서있다가, 서둘러 친구 뒤에 바짝 붙어 서서


"Please!"


하고 덧붙였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어느 인도 청년은(아마도 가게 주인의 친구로 보였다) 엄지를 세우며 good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친구는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모든 말 끝에 플리즈를 붙였고 더 이상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았다.


결국 나의 두 친구 모두 부탁해/Please로 하여금 해프닝이 생겨난 셈이다. 물론 친구들에게는 전혀 악의란 게 없었다. 그저 본인의 말투가 그러한지 몰랐고, 외국어가 서툴렀고, 펜이 사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날의 해프닝을 어느 외국인이 대뜸 카페에 들어와 커피 한 잔! 외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깔깔대며 맥주잔을 기울이곤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부탁해, 부탁해요 라는 말은 생각보다 사람의 마음을 잘 녹이고, 더 나아가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어쩌면 사람의 말이라는 게 그런 걸 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별 거 아닌 것이 가진 부드러운 힘이랄까. 아 다르고 어 다른 말 한마디가 나의 첫인상을 결정하고, 기왕이면 긍정적인 단어들로 풀어낸 생각들이 곧 말의 품격을 만드니 말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사과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살아갈 예정이다. 나의 첫인상과, 가치관이 그간 어떻게 비추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의 삶에는 말 끝에 부탁한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덧붙일 3초의 시간이 충분할 예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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