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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와이안 Jun 17. 2020

혼자 살기

식물 집사의 어느 심심한 오후 기록

북향 복층 오피스텔의 오후는 의외로 밝다. 쨍쨍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창문 너머 다른 건물에 비추는 빛이 큰 창 안을 환하게 비춘다. 식물집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지난 집 베란다에서 키우던 페퍼민트 때문이다. 연보라색 꽃을 틔울 만큼 높고 풍성하게 잘 자라주었다. 두 번째 식물은 키우기 좋다는 몬스테라, 세 번째 식물은 눈감고도 키운다는 문샤인이었다. 식물에 문외한이라 결코 의도한 게 아닌데도 내 눈에 그 식물들이 가장 먼저 예뻐 보였다. 다음엔 호야와 아몬드 페페, 디시디아, 스킨답서스, 유칼립투스 (중간에 로즈마리와 바질, 카네이션이 떠났지만) 순으로 점점 다양한 종류를 키우며 다른 식물들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혼자 살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이다. 서울을 떠나면 살지 못할 것 같았는데, 순간의 결심으로 막상 위성도시로 떠나와 보니 서울을 향한 동경이나 그리움 등이 금세 옅어졌다. 인천에 사는 애인이 서울에 살던 나와 데이트를 할 때면 누군가가 어디냐고 묻는 전화에 "나 서울에 왔어"라고 대답하는 것이 참 낯설었는데,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약 한 시간 거리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나 역시 그 질문에 "서울에 가는 중이야"라고 대답한다. 서울은 마치 작심하고 나가야만 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 때문에 나갈 때 내가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은 아직도 서울이니, 그 말인 즉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줄 이런 저런 사람들이 거의 서울에 있다는 뜻이다. 가까이는 살지만 서울에서 일하는 애인이 들르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나는 대부분 혼자서 시간을 보낸다.


일이 많을 때도 있지만 혼자서 하는 일은 대부분 조절이 가능하고, 소통이 없어 의외로 금세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거나 혼자 찾아보고 이해한 후 끄적이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 조율만 잘 된다면 그 이외의 시간은 모두 내 시간이다. 이전까지는 사회에서 만난 언니와 만 10년을 함께 살았다. 한 번도 큰 회사에 가본 적도 없는데 나의 이런저런 흐름을 돌이켜보면 결국 혼자 일하고 혼자 사는 조용한 일상을 위해 진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물론 불안할 때도 많은데,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직업이 불면으로 밤을 지새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별 생각이 없는 날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척 혼자만의 가만한 시간을 보낸다.


최악의 심심함을 느껴본 건 지난 1월에서 2월 사이다. 혼자 살아본 적이 없거니와 낯선 도시에서의 겨울은 정말 오도가도 못 하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애인이 오지 못하는 주말이면 괜히 화가 났고, 내가 결국 해야 하는 것은 결혼뿐인 건가 하는 마음만 들었다. 불안했다. 책도 음악도 영화도 드라마도 요리도 좋아하는 내가 그런 극단적 심심함을 느낀 것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37년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심함이 해소된 것은 코로나 전염병이 한창 확산하던 무렵이다. 모두가 심심하고 답답하다고 난리를 쳤던 것이다. 그 상황이 이미 익숙한 나는 심심함을 느끼며 전화를 하거나 그 심정을 공유하는 메시지들 덕에 심심함을 덜었다. 내게 필요한 건 참 단순하게도 누군가와 가늘거나 굵게 연결된 어떤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 무렵 북향이어서 유난히 더 추웠던 집이 점점 살만한 온도가 되었다는 것도 나를 살렸다. 겨울 동안 성장을 멈췄던 식물들에서 새로운 잎이 하나씩 돋아났다. 자고 일어나면 식물들은 밤 사이 새로운 일을 벌였다. 이후에 나는 지금 모니터 너머 선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나의 식물들이 결코 멈춰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고 있다. 식물이 살아 움직인다는 감각이 지금도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살면서 이런 교감을 느끼게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식물 집사'라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바로 그 사람임을 자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린 인테리어가 문제가 아니라 이 감각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요즘 나는 혼자 사는 데 꽤 익숙해졌다. 일이 없으면 불안하기는 하지만 아무 일 없이 오후를 보내는 게 기쁘다. 식물의 시간들을 지켜보는 게 좋다. 혼자 이것저것을 해내며 살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있다는 것도 의미 있다. 혼자 사는 것의 편안함, 혼자 사는 것의 심심함, 혼자 사는 것의 대단함. 이제 이 감정들을 넘어 혼자 사는 것의 익숙함을 느끼기까지는 또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혼자 사는 날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지금은 가벼운 심심함이 찾아온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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