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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통 Jul 08. 2023

사라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는 이유

여름의 분기점을 맞이하며 (에어컨)

종종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편이다. 술이 약해서, 체력이 없어서 갑자기 사라질 때, 누군가는 나를 걱정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은 욕으로 시작하지만. 그만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라짐은 큰 두려움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소하게 핸드폰만 사라져도 종일 답답할 수 있는데,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불안할까? 모르겠다. 나는 욕심이 많은 편이고, 가진 것들을 잃지 않고 싶다.

사라진다는 것은 남았다라는 것과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령 조선이라는 국가는 있었지만 사라졌다. ‘존재했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형태로 이어져 남아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남았다는 것은 무엇으로 알까, 기록이 있고, 문화재, 유물들이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은 멸종 혹은 미스터리로 불리게 된다.

그렇지만 사라짐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령 멸종위기의 동식물, 누군가의 죽음, 일회용품, 막 쓰는 책갈피 등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 이외에도 사라지는 것들이 정말 많다. 어쩌면 내가 느낄 수 있는 사라짐은 내가 알던 것들로 한정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사라진다는 개념도 내가 아는 것이란 범주 내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책이 사라진다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책들이 사라지는 것이고, 라면이 사라진다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라면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무언가’ 사라지는 것은 내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 사라진다는 의미란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 흔적이 있게 사라지던, 사라짐은 나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앎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고, 그것이 채워지고 말고의 차이는 대단히 클 테니까.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될 것 같냐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자살을 할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의 세계가 갑작스럽게 달라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이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사라지는 것은 –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0으로 수렴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음식(+)이 있다가 먹음으로서(-) 사라지는(0) 것처럼, 물론 이 흔적은 내 몸에 칼로리로 빵빵하게 쌓여 흔적으로 남겠지만, 이러한 수렴의 과정이 없는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말 그대로 미스터리다. 내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이 알아간다는 것은 사라질 것이 더 많단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도, 지식도, 돈도 말이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아이유의 ‘안경’이 있다. 안경을 써서 피곤한데, 굳이 더 자세히 보진 않겠다는 내용을 재치 있게 설명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건 늘 피곤한 상태는 아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 또한 굉장히 다양하다. 사라지는 과정에서 –가 있다는 것은 역으로 +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욕심이 많은 편이라 잃는 것(–)을 싫어한다는 의미는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싶단 의미이기도 하다. 사라지는 것들을 상상하기에 앞서, 내가 가진 것들을, 아는 것들을 조금 더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사라짐에 더 많은 슬픔과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가야 할 것이다. 어차피 내가 배워봤자 죽고 나면 다 0이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다.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알아야, 더 많은 생각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니까.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그 모든 것을 굉장히 협소적으로 볼 것 같은 내 생각의 범위다. 사라진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혼자 헤맬 것 같아서,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읽어보고 싶다. 다시 시작해보는 마음으로.

아, 사라지는 것에 대한 반등으로 얻는 것이 있을 것 같다고 말은 해뒀는데, 이번에 돈을 불태워 망가진 에어컨을 교체하게 되었다. 지금은 +-로 생각하지만, 익숙해지면 얘도 0이겠지. 부질 없지 않게 여름에 열심히 켜둬야겠다. 에어컨이 사라졌던 순간은 오히려 에어컨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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