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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통 Aug 21. 2023

애정 없는 여름과 조그마한 납량특집

여름을 싫어하는 편이다. 생일인 계절을 좋아한다지만,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내가 생겨난 가을과 겨울 즈음이다. 봄의 화사함은 기분이 좋아질 수는 있지만, 뭔가 시작해야 된다는 부담감 넘치고. 여름은 일단 땀이 많아서, 습해서, 괜히 불쾌해져서 싫어한다.


그럼 불쾌하지 않다면 여름을 좋아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YES다. 불쾌하니까 싫어하지, 하지만 습하지 않다면 여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쾌적한 날씨인 여름날, 나뭇잎과 햇빛을 보면 이게 쾌청이구나 하고 생각을 한다. 그 순간만큼은 어느 순간보다 바라보는 것들이 만족스러워진다.


결국 애증이다. 조금은 악우 같은 관계. 날씨는 매번 바뀌니까, 항상 편한 친구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여름이었다. 라는 농담을 자주 건네는 나지만, 그 순간은 대부분 행복한 여름을 담고 있다. 물론 종종 비꼼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간간히 큰 선물을 주는 친구다 보니, 나도 이 정도로 대드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슬슬 올해 여름이 끝나간다고 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악우가 떠나가니 아주 편안할 것만 생각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아쉬움이 좀 더 컸다. 좀 더 잘 놀았으면 어떨까, 올해는 여행도 가지 않았는데, 벌써 여름이 끝났다고?


매년 많은 일이 있지만, 올해 여름은 유독 특별하지 않았다. 뭔가 텅 빈 느낌이랄까, 덥다 덥다 ㅆ 소리까지 나온 더위는 여전했지만, 더위 먹을 정도로 밖을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몇 가지 루틴을 만들어 보겠다고 헬스장과 작업실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건 계절과 관계 없는 것 아닌가. 뭐랄까 이번 여름에 유독 애정이 없는 것 같았다.


애정 없는 시간.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는 시간.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환장하는 편이다보니, 의미에 쌓여서 혼자 피곤해하는 편인데 오히려 이를 덜 만드는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애정이 없지만, 계절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법을 좀 더 알아간 여름. 애정의 방면이 다르다는 것.


예비군 때문에 간 본가(원주)에서 아빠의 차를 타며, 꽤나 먼 거리로 먹부림을 다녀오며, 조용한 부자 관계기에 멍하니 구름 예쁘네 따위의 소리와, 이 가게를 간 적이 있나? 하면서 아빠와 대화하는데, 아빠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너랑 이럴 시간이 이제 얼마나 더 있겠니”


생명감이 넘치는 여름에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묘하게 속이 얹힐 것 같기도 했지만, 아주 맛집이었다. 종종 하는 생각이지만, 직접 듣고 나니 느낌이 좀 묘하기도 했다. 마침 그 날 서울로 돌아오는길 해가 짧아졌다는 걸 알기도 했고. 이 기억을 애정으로써 기억할 수 있을까,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예전에 부모님과 있던 여름은 어땠지 하면서. 납량특집인가? 아 또 의미 부여하네. 뭐 일단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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