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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통 Feb 18. 2024

중독된 부재

-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을 읽고

안된 사람이 많다고 해서 안됐다는 게 의미 없는 말이 돼버릴 수도 있나요. 죽는 사람이 많다고해서 죽음이 의미 없는 말이 돼버릴 수도 있나요. 말 없고 성실하다는 것은 별로 묘하지 않은데 모수라는 사람을 왜 묘한 양반이라고 하나요……천은 그렇게 반문하지는 않았다. - 37p.


고체보다는 액체에 가깝고 액체보다는 기체에 가까운 것은 많아요. 술도 진실도 마음도 그렇죠. - 51p.


대부분의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자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들은 자신의 말과 작업에 쉽게 몰두한다. 몰두하고 도취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듯이. 그런 몰두와 도취 때문에 그들은 몰이해 늪에 빠진다. 실은 예술가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나는 생각했다. - 106p.


#뜨거운유월의바다와중독자들 #이장욱 #한국 #소설


군대 때부터 모아온 핀 시리즈가 벌써 50권이라, 매번 새로워서 좋다. 50권 기념 이벤트는 없나, 주에 한번씩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다가 서포터즈 공고를 보고 바로 신청했다. 다행히도 서포터즈에 당첨되어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제공을 해주었다. 아직은 차가운 이월이지만 왜 유월의 바다를 이야기했을까.


소설의 이야기는 연과 모수, 천과 한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심은 연과 천. 부재된 인물들은 그 중심점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또 다른 구심점으로 보인다. 그런 끌려짐에 중독된 이들의 이야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월의 바다는 뜨겁지만 이들의 색채는 열정적이라기보단 어딘가 수심이 깊은 곳을 바라보는 것 같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지만, 자못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어딘가 결여된 모습. 본인들의 삶에 집중하는 모습. 당연하지만 똑같진 않은 모습. 그리고 부재자가 생기는 순간 이들은 조금 더 비슷해진다. 부재의 이유가 다름에도.


그래서 유월의 따뜻함이라면, 이들의 유대감을 강하게 하지 않을까 했지만. 유대감은 중독의 대상이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지켜줄 뿐이다. 톨스토이의 말마따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고. 서로에게 공감을 바라지도 않고 연과 천은 각자의 과거에 중독되어 있다.


어쩌면 환상, 아니 환장적인 이야기. 부재자의 의미는 살아가면서 줄어들 수 있을까. 아마 픽하고 웃음이 나올 수 있도록 줄어들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짧은 웃음에도 많은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을까. 아니. 웃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참사 앞에서 어이없는 발작(웃음)이 나와버린 한나처럼.


개인적으로 이들의 대화가 참 중독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박하고, 자신을 밝히고, 상대의 말을 따라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런 대화를 했던 상대를 잃는다는 것은 확실히. 큰 상실로 다가오지 않을까. 짧게나마 만난 나였지만, 몇몇 구절들이 자꾸 중독스럽게 떠올랐다.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드라마에서도 그런 회상 형식이 유행한다던 거 같은데. 드라마에서는 급박하게 현재의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글 속에서 이들의 현재는 잔잔하다. 파도는 크지 않다. 이미 한번 잡아먹힌 것.


잡아먹힌 후, 삶에, 사랑에, 사람에 중독된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들은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핑퐁. 부재와 실존을 넘나들며. 나도 이런 중독을 하고 싶단-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부재는 너무나 아프고, 그 이후의 실존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다만 그들과 같이 바라보는 바다를 꿈꾸고 싶다. 편하게 이야기하고.


덤, 평론을 보면서 ‘미친 사람인가?’라고 헛웃음이 나왔다. 부재자들을 허수(i)로, 남아있는 이들을 실수로 이야기하며 도식화한 게 너무나 이과스러웠어서. 너무 재밌어서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었다. 반면 도식화는 단순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나갈거기에, 도식화된 원은 계속해서 돌 것 같았다. 실수와 허수를 넘나들며.


덤2, 오늘 들어오는 길에 꽤 밝은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씨는 따뜻했고, 딱 이정도 색채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집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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