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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철우 Nov 16. 2022

문콕과 스토리텔링

 저녁에 아이를 학원에서 픽업하고 집의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밤 10시가 넘어서 집 앞의 주차구역은 보통 만차라서 멀치감치 떨어진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데 운 좋게 비어있는 자리 하나를 발견했다.

“오.. 재수!”

즐겁게 파킹을 한 이후 뒤에 있던 아이가 문을 여는데 “쿵” 소리가 났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어 내려보니 소위 문콕을 한 것이었다.


요즘 자주 발생한다는 문콕..

옆에 주차된 카니발의 옆면이 우리 차의 문 끝자락에 부딪치면서 작은 상처가 났다.

 이걸 어떡하지?

일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넘어가? 뭐 일부러 확인하지 않으면 잘 모를 것 같은데.. 사실 우리 차도 문콕 당한 적 많잖아..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한데 옆에 있는 아내가 말한다.

“빨리 전화해! “


앞면 유리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안 받는다

두 번째 걸었다. 역시 안 받는다.

“안 받는데.. 그냥 가자!”

나의 볼멘소리에 아내는

“메모라도 남겨야지. 이거 나중에 블랙박스도 있고 CCTV도 있어서 우리가 한 줄 다 알게 될 거야..”

“내가 보기엔 잘 안 보이는데..  전화를 해도 안 받잖아”

“마지막으로 한번 해봐”


할 수 없이 마지막 전화를 했는데 상대방이 받았다. 그런데 대뜸

“이 보세요.. 지금 몇 시인데 계속 전화하는 겁니까?” 라며 내게 화를 낸다.

“아.. 그게 아니고요.. 카니발 차주님 되시죠?”

“그런데요..”

“아. 저희 아이가 차문을 열면서 카니발에 상처가 생긴 것 같아요.. 내려와서 확인 좀 하셨으면 해서요..”

“아. 그래요?  그럼 내일 확인할게요..”

“아니. 그래도 저희가 한 게 맞는지 확인을..’

“어차피 상처 자체가 없었으니 그쪽에서 하신 게 맞습니다. 낼 연락할게요..”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매우 상했다.

“아니. 기껏 생각해서 전화 줬는데.. 왜 이런 식으로 나오지? “

예의도 없고 기본이 안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거 잘못 걸렸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분명 문콕으로 조금 상처 난 걸로 엄청 바가지 씌우고도 남을 사람 같았다.


집에 들어와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문콕이라고 치니 어마어마한 사례와 내용이 나왔다.

보험처리가 되느냐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이 200만 원 넘는 수리비를 요구해서 소송까지 갔다고 하는 사람, 자동차 보험에서 자차보험을 활용하는 방법, 아이가 일상생활 보험에 가입한 경우  보상이 되는가에 대해 된다는 사람과 안된다는 사람으로 갑론을박했다.

나는 매우 짜증이 났다.

괜히 바보같이 먼저 연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 정말 이상한 사람일 것 같다. 겨우 이걸 가지고 엄청 큰 금액을 부르면 어쩌지? 나는 뭐라고 말하면서 대응해야 하나? 견적서를 먼저 받아달라고 해야 할까? 보험처리를 먼저 해야 할까? 나는 밤새 시나리오를 혼자 쓰면서 침울했다.


다음날 아침,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어제 그 피해자였다.

“지금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실래요?”

“아.. 네..”

올 것이 왔다. 드디어..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50대 후반쯤 보이는 아저씨가 핸드폰 라이트 기능을 켜서 차량의 이쪽저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문을 열다가..”


인사를 꾸벅하고 말문을 여는데 그 아저씨가 내게 말한다.

“아.. 사실 어제.. 거래처에서 계속 밤늦게 전화가 왔거든요.. 그래서 제가 거래처인 줄 알고 실례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갑자기 당황했다.

“아닙니다. 제가 시간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여러 번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한참을 살피더니 문콕이 찍힌 부위를 가리킨다.

“이건가 봐요..”

“네 그렇습니다.”

“음.. 제가 락카 사다가 칠하면 될 것 같은데요..  신경 안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될까요?”

“ 뭐 애들이 다 그렇죠.. 암튼 전화 주셔서 고맙습니다. 올라가 보세요..”

 나는 당황했지만 혹시 맘이 바뀔까 봐 빨리 인사를 꾸벅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나는 도대체 왜 밤새 저분을 악마화 해서 이상한 시나리오를 그리도 길게 썻떤가…”

워싱톤&제퍼슨 칼리지의 경영학과 교수인 조너선 갓설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스토리텔링으로 진화한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옛날 문자가 없고 기록이 불가능했던 시절 인류는 생존을 위해 쉽게 소통하고 이것을 잘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스토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냥 바위를 기준으로 열 발짝 걸어가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처녀 바위(실제 바위를 보면 처녀를 약간 떠오르게 하며 이 마을에는 처녀가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바위에서 죽었다는 전설이 따로 존재한다.)에서 열 걸음 걸어가라고 하는 것이 소통이 쉽고 기억을 오래 하게 만들었다.

스토리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위험에 대비할 수 있었다.


스토리는 위험한 사람에게 대들거나 남이 배우자를 유혹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준다.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된다.  우리의 뇌가 실제 상황에 반응하는 것처럼 스토리에 반응하기 때문에 다양한 위험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이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고민해서 준비한다. 오늘날 스토리텔링 경영기법도 여기서 출발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스토리는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기억하게 하고, 삶을 유지시키는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인간은 스토리를 만들고, 소비하고, 집중하고 몰입한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어두운 측면은 바로 음모론이다.

스토리에 집착하게 되면 의미 없는 것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마치 구운 빵을 보면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인류는 달에 간 적이 없다거나, 9.11 테러를 미국 정부가 일으켰다는 음모론도 실제 사실과 상상 속의 사실을 연결해서 만들어 현실적을 설명한다.

단순 팩트에 전혀 엉뚱한 스토리를 스스로 만들어 감정을 소모하고,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단순한 상대방의 오해를 가지고 여러 인터넷 사례를 짜깁기 해서 전혀 근거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 얼굴도 본 적 없는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제 나는 과도한 음모론을 만들어낸 것일까?

적당한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대비를 한 것일까?

정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꽤 긴 시간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감정을 소비하고 과하게 매몰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특히 요즘처럼 유튜브에 수많은 스토리가 넘쳐나는 스토리 과잉 시대에 이제는 스토리의 부정적 역할도 고민하면서 순기능을 활용하되 역기능을 항상 경계하는 삶의 자세를 좀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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