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캡틴 마블>
최초의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
2008년 <아이언맨>부터 이어진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은 서로 유사한 서사구조와 동일한 세계관을 유지하며 하나의 장르를 형성했다. 히어로 장르의 한 특징은 영화 내외적 상황이 보다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시리즈로 이어지는 히어로 영화의 특성상 한 영화가 다른 영화와 연결되고, 시리즈 전체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히어로라는 특성, 다시 말해 대표성 문제 때문에 사회정치적 사안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성은 이때까지 여느 영화가 보여준 영향보다 직접적이고, 표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코믹스가 영화화되면서 더욱더 대중적인 영역에서 히어로가 다뤄지기 시작했고, 이들은 그야말로 특정 집단의 '히어로'가 된다. 그리고 이 장르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로 마지막 장을 열었다. 모두가 예상하듯 <어벤저스: 엔드 게임>은 이 장의 성대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캡틴 마블>은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마블 시리즈의 이음새이자 마지막 장 이후의 서사시를 이끄는 새로운 등장인물로서 등장해야 했다.
그런데 <캡틴 마블>은 10년에 걸친 마블의 히어로 영화사를 장식하는 변곡점이다. <캡틴 마블>은 이음새이자 새로운 등장인물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더욱이 최초의 여성 히어로라는 인식부터 갈등과 서사구조의 변화, 히어로에 대한 인식 변화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보통의 히어로 영화에서 벗어나 있다. 이러한 변화점은 꽤 허술한 서사적 형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서사는 고유의 형식상 필연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캡틴 마블>이 여타 히어로와 다른 점은 세 가지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과거의 중요성, 각성의 이유와 방식, 히어로의 힘을 쓰는 방향성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특징은 앞서 언급한 '최초의 여성 히어로', '서사구조 변화', '히어로 인식 변화'라는 영화 외적 특징과 맞물린다. 즉, 캐럴 댄버스가 캡틴 마블이 되는 과정은 이 영화가 생겨나는 계기와 호응한다. 영화의 내외적 상황이 서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캐럴 댄버스는 과거와 유리된 채 서사가 진행된다. '비어스'일 때 캐럴 댄버스는 트레이닝과 임무에 충실한 사회 구성원이다. '크리 제국'의 충직한 군사로 기능한다. 반면, 그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으면서 정체성을 정립하는 순간부터 그는 자립한다. 이는 이때까지 모든 마블의 히어로들이 가져온 과거의 중요성에서 벗어난다. 마블의 대부분 히어로들은 혈통이나 실험을 통해 슈퍼파워를 갖춘다. 반면 '캡틴 마블'은 사고를 통해 우연히 얻은 힘을 자각하면서 강해지게 된다. '우연히'는 분명 혈통이나 실험과 다른 과정이다. 이 '우연히'는 혈통 혹은 실험이 가진 힘의 원천에 묶여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캡틴 마블'은 원천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히어로다.
'캡틴 마블'이 각성하는 계기는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다른 히어로들이 자신의 힘이 생겨난 원천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본래 힘을 끌어내는 각성의 서사는 이 영화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캡틴 마블'은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나아가기 위해 일어선다. 아버지 혹은 트라우마, 힘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자신을 얽매는 것들에 대항한다. 나약하기 때문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힘이 '캡틴 마블'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다른 조력자들은 그의 자각을 도울 뿐이다. '캐럴 댄버스'로 돌아오길 바라는 램보와 자신을 돕길 바라는 탈로스는 '캡틴 마블'의 자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캡틴 마블'의 힘에 대한 자각이 곧 크리 제국의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캡틴 마블'이 로난의 함대를 빛처럼 질주하며 부수는 마지막 액션은 그 자유로운 해방의 질주다. 크리 제국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스크럴을 척살하고자 하는 로난의 함대는 '캡틴 마블'의 질주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캡틴 마블'은 스크럴들의 활로를 찾기 위해 먼 우주로 떠난다. 그는 자신이 자각한 힘을 과오를 청산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른 히어로들은 자신이 대표하는 인종이나 종족의 생존을 위해 힘을 쓴다. 그러나 '캡틴 마블'이 보여준 방식은 히어로의 대표성에서 벗어나 있다.
'캡틴 아메리카'의 '어벤저스', 그러니까 1세대 '어벤저스'의 고민이 내부로 향해 있다면, 2세대 '어벤저스'의 고민은 외부로 향한다. 이러한 거대한 경향성은 아메리카의 캡틴이 아니라 경이로운(marvel) 캡틴의 정체성과 깊게 연관된다. 앞선 서술에서 봤듯, 영웅은 자신이 연고를 둔 집단에 소속감을 드러낸다. 영웅들은 어디선가 어떤 국가의 군사력으로, 어떤 왕국의 수호신으로, 어떤 집단의 정의로 현신한다. 1세대 '어벤저스'는 그 소속집단의 결집과 외부에 대한 저항 그리고 내적 대립을 거쳐 새로운 위협에 다다른다.
캡틴은 어떤 그룹의 리더이자 대표자이며 그렇기에 높은 인격성과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캡틴 아메리카'가 지고 있는 도덕적 책무는 그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다. 또한, '캡틴'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수없이 다양하다. '캡틴 아메리카'와 1세대에게 주어진 상황은 정의와 현실, 원칙과 예외가 충돌하는 딜레마다. 그 충돌 속에서 1세대는 자신의 정의와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숭고하게 지켜나간다. 반면, '캡틴 마블'에게 주어진 상황은 '캡틴 아메리카'의 것과 다르다. '캡틴 마블'에게 주어진 상황은 전면적 위기이다. '어벤저스'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적을 직면해 있고, 그 적은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어긋난 신념을 관철하고자 한다. 이 위기는 1세대의 방식으론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캡틴 마블'이 이끄는 '어벤저스'는 '캡틴 아메리카'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이다. 그리고 <캡틴 마블>은 그러한 변곡점을 서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캡틴 마블'은 과거보다 현재를 존중하고, 자신의 연고나 소속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힘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나 '도의적으로 바른' 것을 위해 사용한다. 이들은 자신의 이권과 신념을 위해 싸운다기보다 적절한 명분과 의지를 따른다. '캡틴 마블'은 어떤 스승이나 은사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영웅이다. 주변 인물들의 역할은 도움으로 한정된 채, '캡틴 마블'은 스스로 일어선다.
자립하는 영웅으로서 '캡틴 마블'은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그는 다른 영웅들과 다른 출발, 과정, 결과를 보여준다. 물론 아직 히어로 영화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기는 힘든 탓인지, 이음새의 마감이 출중하진 않다. 이야기의 완성도나 형식미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다음을 준비하는 영화로서 <캡틴 마블>이 보여주는 변화의 양상은 마블의 다음 영화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마블의 2세대 '어벤저스'는 독창적이고 자립적인 영웅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힘에 대한 자각을 통해 자립으로 나아가는 '캡틴 마블'의 길은 소속이라는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가득 찬다. 그렇게 "말괄량이" 같다는 수식어는 이제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이다. 불완전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영웅의 모습이 기대되니 말이다. 어쩌면 불완전해 보이는 <캡틴 마블>의 형식도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미친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 모양 빠지면 어떤가, 이렇게 신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