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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Feb 26. 2019

그리고 어느새 밤

영화 리뷰 <심야식당 2>

 새벽녘에서 정오, 노을까지 해가 뜬 시간은 경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밤의 시간은 경계가 흐릿하다. 사람들은 시간 단위, 분단위에 쫓긴다. 바쁘게 일하고 지쳐 녹초가 되면 어느새 밖은 어둑어둑하다. 밤은 뭉근하게 다가온다. 시간은 더 이상 사람들을 몰아세우지 않는다. 사람들은 밤이 되어 하루 내 쌓인 노곤함을 풀어놓는다. 잔뜩 긴장한 몸들을 풀어놓는다. 심야식당은 이런 밤을 채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자정부터 아침까지 모두가 집을 향하여 자신의 보금자리를 돌볼 때 심야식당은 문을 연다. 그래서 늘어놓는 얘기들은 긴장이 풀려 격의를 꺼내게 되는, 진솔한 말이다.



 심야 식당의 공간은 '복닥복닥'하다. 작고 따뜻하다. 사람들은 한 팔이면 닿을 거리에 있다. 작은 공간은 사람으로, 음식으로, 말들로 가득하다. 이런 분위기는 영화의 가장 마지막 쇼트에 잘 담겨 나온다. 카메라는 작은 창문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북적한 모습을 쭉 둘러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쯤, 영화의 처음을 열었던 '마스터의 소개'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면서 겹쳐지는 심야식당의 모습은 그 공간에 들어가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잔상으로 남긴다. 지친 하루를 풀어놓는 공간, 마스터의 심야식당은 관객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공간을 채우는 사람과 음식, 말은 서로에게 가서 닿는다. 낮보다 따뜻한 밤의 공간에 사람들은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야기들을 열고 닫는 것은 음식들이다. '마음이 담긴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되돌려 보지 않더라도, 마스터가 내놓는 음식들은 하나 같이 정갈하고 따뜻해 보인다. 음식은 식사가 주는 의미만큼이나 주요하게 와 닿는다. 음식 하나에 사연 하나, 이야기 하나가 엮여있다. 또, 마스터가 만들어주는 음식은 '내가 원하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낮에 먹은 음식과는 다소 다른 의미를 지닌다. 낮에 하는 일들이 모두 '먹고살기 위한' 것들이라면 심야식당에서 먹는 음식들은 '공허한 배고픔'을 채우는 위로이기 때문일까.



 말,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들이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인해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자신의 말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들의 말은 길거나 애잔하지도 않고 날카롭거나 예리하지도 않다. 다만, 담백하게 자신을 담아낼 뿐이다. '진솔하다'는 담백하게 전해지는 이들의 말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의 이야기는 별다른 수사도 꾸밈도, 애쓴 슬픔도 필요가 없다. 에피소드의 중심이 된 세 여성은 자신의 단어들로 이야기를 한다. 이들의 말은 구태여 직설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나 많은 것을 뱅뱅 돌아가지도 않는다. 자신의 단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작위적이지 않다.

 <심야식당 2>는 애써 소리를 내 울지 않는다. 감독은 '울부짖기 위해' 감정의 속도를 마구 올리지 않는다. 변해가는 상황에 맞춰 인물들은 지긋하게 따라간다. 인물은 울리기 위해 울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삶을 위해 운다. 그들의 삶이 위협받더라도 그들은 그저 이 비극을 슬프게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영화는 비극을 비추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하게 건네는 호의를 비춰준다. '항상 그곳에 있는' 마스터를 중심으로 하는 이웃들은 인물들에게 언제나 자상하다. 그들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섣불리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그렇게 이웃들은 애써 울지 않는 인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심야식당의 사람들, 마스터뿐만 아니라 단골손님들과 오가다 들린 손님들 모두 인물들에게 손을 내민다. 어쩌면 심야식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꿈 일지도 모르겠다. 이 따뜻함은 소박함을 넘어 때로 환상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완전한 타인에 대해서 완전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한다. 따뜻한 음식을 베풀거나 때로 잠자리를 알려주기도, 곤란한 상황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기도 한다. 마스터는 사람들을 감싸 안는 보금자리처럼 세 인물에게, 이웃들에게 한 없이 베푼다. 물론, 심야 식당을 이용한 이들은 마스터에게 마땅한 돈을 지불할 것이다. 그러나 마스터가 돈을 받는 장면은 일체 나오지 않는다.

 심야 식당은 끊임없는 이해와 화합의 공간이 된다. 마스터는 때로 완벽한 인물로 보인다. 이 이상적인 공간과 인물이 아름다우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인물들의 결핍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세 여성은 각각 무언가 '결여된 상태'로 제시된다. 이는 남자, 남편, 아들이라는 가족 구성원이다. 세 여성의 결핍은 아주 우연히도, 남성의 부재와 결부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결핍은 마스터와의 직간접적 계기들로 해소된다. 이런 부분은 마스터와 심야 식당의 온기 있고 포용력 넘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 여성의 문제를 단순화하기도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이런 아쉬운 뒷맛에도 불구하고 심야 식당이 주는 따뜻함은 여느 정갈하고 온기 있는 음식 못지않다.

 사람, 공간, 음식 그리고 이야기는 밤의 흐릿한 경계 안에서 여러 재료가 하나의 접시로 완성되듯 뒤섞여 만난다. 마스터의 심야 식당은 온기 가득한 공간에 진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허한 마음을 채우는 음식이 있는 완전한 '회복'의 장소다. 낮을 전쟁처럼 치른 사람들은 심야식당에서 위로를 받는다. 호의를 받고 싶은 날, 혹은 침묵 속에서 다른 이들의 이야기로 위로를 받고 싶은 날 <심야식당 2>은 부담스럽지 않은 담백함으로 시간을 채워줄 것이다. 




* 이 글은 아트나인에 올렸던 리뷰를 일부 수정하여 게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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