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누군가가 있고, 나의 세계 너의 세계가 있다는 것, 모든 것이 나와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많은 일들. 문득 그러한 구분이 가장 극심해지는 중2병 시절이 떠오른다. 이차성징의 호르몬 문제인지 뭐든지 아니꼬울 때. 내가 생각하는 나와 세상이 생각하는 내가 격렬한 충돌이 날 때. 객관화되지 않는 특유의 과한 자의식이 막 뿜어져 나올 때. 그리고 차차 그런 것들이 하나둘씩 분리되고 정제되면서, 다시 스스로가 너무도 객관적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기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더랬지
비약일 수도 있지만, 나와 다른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선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결정된다. 타인을 구분하고 좋고 나쁨을 추출하는 기준들이 결국 내가 된달까. 개인적으로 건, 취향으로 건, 사회적으로 건 타인을 구분해 나가면서 나만의 시선이 생기고, 그 시선으로 상대방을 재단한다. 그러다 점점 생각에 자기 검열이 붙고,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생각들이 나올 때쯤 비로소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타인에 대한 좋고 나쁨은 어쩌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이 꽤나 큰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떠오르는 공감 갔던 말.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계속 싫어하다 보면 어느새 닮아버리게 되는 반면에 그 사람은 빨리 갖다 치워버리고, 나를 행복하게 나를 더 멋지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좋아하다 보면 그 장점이 내 것이 된다는 말.
요즘 내 모토는 조금 덜 드러내는 것, 배설하기 전에 한 번 더 정제해보는 것.
조금 더 듣고 덜 말하고 기다려주는 것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