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7일 <Day 3>
사실 나는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푸른색티셔츠를 입은 프리워킹투어 가이드가 아닌 빨간색티셔츠를 입은 가이드와 함께 진행을 했다. 여행을 끝내고 글을 정리하면서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해보니 확실히 푸른색티셔츠 회사 가이드들과의 투어가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Claro에서 드디어 유심칩을 구입했고 오전에 도심 투어를 할 때 지나친 세비체리아 Mister DA에 와서 20솔의 큰 세비체와 8솔의 음료를 주문해 먹었다. 엄청 시큼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지가 않다. Leche de tigre가 맛을 중화시키는 것 같았다. 이런 세비체는 처음 맛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허여멀건 이 음식을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세비체를 먹으려며 페루로 가야한다는 말이 진짜 정답이구나!
점심을 세비체를 먹고 티켓확인을 하러 여행사에 갔었는데 분명 오후에 오면 된다고해서 1시쯤 갔더니 너무 빨리왔단다. 5시 넘어서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는 허탈하게 나왔다. 대신 산 페트로 시장에 가서 리나 라는 과일주스집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어를 알려주기도하고 볼리비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고 다음 목적지인 아레키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산페드로 시장을 둘러보고 과일을산 뒤 어딘지 모르는 어떤 성당 앞을 지나 분수가 엄청나게 솟아오르고 있던 공원에 앉았다. 시간을 이렇게 여유롭게 보내는 것도 괜찮구나, 페루라는 다른나라에 오면 좀 더 부지런해 질 줄 알았는데 그냥 광장에 앉아있는것만으로도 나는 다른 나라에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하고 있다. 방학이 필요했으니까. 쉼이라는게 필요했으니까.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언어는 어디서 배웠냐는 것이 주요 질문으로 등장한다. 그러면 으레 볼리비아에서 일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렇게 통성명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언어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아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과 더 가까워질 수있는 계기가 된다. 언어 공부를 오래 해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뻤다. 이들의 생활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에서 큰 선물을 받은 것같다.
시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광장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조용하던 광장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코파카바나 호수의 가까이에 있는 페루의 푸노에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들이 함께 쿠스코에 현장학습을 하러 왔단다. 아이들은 나에게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했지만 부모들은 내 대신 ‘일본에서 왔어, 그렇지?’라는 대답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셨다.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어디? 일본? 도쿄? 중국? 아니, 아니, 아니…
마지막으로 한국이 나오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하는게 항상 씁쓸하다. 언제나 같은 레파토리로 한국 어디서 왔어? 남한? 북한? 이건 한국어로 뭐라고 해? 내 이름은 훌리오야, 한국어로 뭐라고 해? 훌리오라고 해. 이런 말을 지겹도록 들어왔던 것을 대답하자니 또 귀찮긴 했지만 글도 아이들에겐 좋은 추억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 대답을 해주었다. 심지어 함께 사진까지 찍었다. 내 사진이 어떻게 쓰일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광장의 분수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대열을 맞추는 순간 수 십대의 카메라가 나를 겨눴다. ‘겨눴다.’라는 단어처럼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나는 얼른 그 곳을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플래시가 터지는 곳에서 얼른 인사를 마치고 빠져나와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그냥 스타벅스에 가서 1시간 동안 앉아있자고 마음을 먹었다. 돈을 더 쓰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먹었지만 마지막으로 12솔짜리 라떼를 주문했다.
어제부터 계속 들르는데 매니저 아저씨와 인사를 했음에도 기억을 잘 못하시니 아예 아저씨한테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했다. 그런 한국인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여행사를 가면 되니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고 가면 되겠다.
여행사에 도착해서 확정을 지었다. 처음엔 여행사 아저씨가 내 이름의 성을 달게 부르길래, 뭐지? 싶었다가 갑자기 정색하면서 직원에게 너가 잘못했네, 라며 꾸짖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나 못 가는건가? 싶은 마음이 덜컥 들었는데 그것도 잠시 장난이라며 방긋 웃었다.
“아! 아저씨, 뭐에요! 완전 놀랐어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세뇨리따! 진정해요, 진정해~’라며 장난을 쳤다. 한참을 놀랐다며 아저씨와 이야기하다가 진짜 마추픽추로 가는 일정을 다시 확인 받았고 그리고마침내 마추픽추 행 기차표를 손에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안데스산맥에 걸쳐있는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는 증거(거주권)를 보여주면 마추픽추에 들어갈 때 20달러까지 할인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이 당시만해도 긴가민가했는데 나 또한 볼리비아 거주권을 가지고는 있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여 질문도 하지 않았던게 후회가 되었다. 나중에 내가 거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걸 알게된 파비앙 아저씨도 안타까움에 여덟 팔 자 눈썹을 하곤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니... 결국 제 값을 치르게되었다만 혹여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남미 나라 거주권을 가지고 있다면 마추픽추 입장권을 구입할 때 꼭 제시해 보시길!
그 날 저녁엔 쿠스코에 살고 있는 친구의 친구에게 저녁을 얻어 먹었다.
여행을 오기 전부터 일면식도 없었던 사이인데 밥을 차려주겠다는 말에 나는 한사코 괜찮다고 거절했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밥을 주시는 분도 그렇고 전혀 모르는 사람 집에 가서 밥을 얻어 먹는 나도 참 웃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감사하게 오늘, 그리고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 또한 맛있게 잘 먹고 갈 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