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서 Nov 21. 2020

2020이 가기 전, 도비가 되었다.

코-시국에 취뽀한 이야기.



한... 몇 년 뒤에 외치게 되려나....


중학생이었던 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굶주린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은 왜 저렇게 살아야 하고 나는 또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풀리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그 '이유'에 대해서 찾아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나와 그들의 '운명'이겠거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비야 씨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고 무르팍 도사에 나와서 숫자 3까지 천천히 세리다가 "방금 한 아이가 죽었어요." 그리고 다시 "하나, 둘, 셋, 또 다른 아이가 죽었어요."라고 말하던 그 모습을 보고 뒤통수를 쾅, 누군가가 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아주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즐겼다. 기자단이며 국토대장정이며 박람회 참여, 카페 아르바이트 등등 그런 활동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돈'이기도 했다. 나를 꾸미고 나의 역량을 발휘하고자 돈을 벌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거라는 그 마음으로 뭐든 열심히 해봤는데 대학을 졸업하니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졸업하면 바로 될 줄만 알았던 취업도 어려웠다. 그럭저럭 한 지방 사립대생은 취업도 힘들구나, 싶었다. 아무리 대학생활을 열심히 해봤자 몇천만 원짜리 대학 졸업장 하나 갖자고 그렇게 돈을 투자했건만 돌아오는 건 이 종이 한 장이라니. 그러느라 연애도 못해봤는데 연애라도 미친 듯이 해볼걸, 제기럴.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대구국제개발협력센터의 ODA기초과정 수업이 눈에 띈 것이다. 잊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뭐에 홀린 것처럼 수업을 신청했고 매주 토요일 오전 9시까지 약 2시간을 운전해가며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ODA기초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공공개발원조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중학생 때 나의 뒤통수를 후려쳤던 한비야 씨의 카운팅이 자꾸만 겹쳐서 생각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굶주리는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왜 저 사람들은 저기에 저렇게, 나는 왜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아주 아주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지구 상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와 관련이 있었고 모든 국가와의 관계로부터 나타난 결과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비단 선진국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가 이 지구 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타래가, 아주 얇은 실로 감긴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국제개발협력에 뜻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 어쩌면 중학생 때부터? 아니, 한비야 씨의 책을 읽었던 초등학생 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이 일에 뛰어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결심을 하게 되었고 심장이 두근거려 그날 밤은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볼리비아에 다녀왔고 빈곤의 현장을 봤으며 교육의 불평등과 심각한 빈부격차를 경험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광경을 목격했으며 나 또한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을 당했다. 외곽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도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산업이 엄청나게 다른 속도로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언젠가는 아동학대의 현장을 보고 듣기도 했다. 그것이 아동학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했었고 아동노동이 합법인 곳에서 어제까지 등교를 하던 학생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 아이들을 학교에 붙을 수 없어서 화가 났고 속상했다. 이 외에도 너무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아, 내가 해봐야겠다. 나는 별거 없는 사람이지만 아주 작은 날갯짓이 돌풍을 일으킨 듯 나의 움직임 하나로 돌풍을 일으켜야겠다.

그래서 1년 3개월간의 취업준비 생활 후, 이 코-시국에 국제개발협력 기관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나 엄청 힘들었어! 너무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결국 취업했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어제 첫 날을 겪고 기관의 해외사업에 대한 교육연수를 받은 후에 들던 생각은 하나였다.

 작은 날갯짓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기획력과 예산관리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필요로 하더랬다. 규모는 작아도 많은 나라에 지부가 있었고 그것을 적은 인원이 다 관리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내가 가진 경험만 가지고 일에 빨리 적응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신입이 그런 걱정을 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과 욕심이 크다. 누군가는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중간만 하라고 했다. 그래, 중간이라도 할 수있길..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간 선배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받으며 그렇게, 그렇게 성장해나가야겠다.


 다음 주부터 차차 인수인계 과정을 거친다. 첫날 교육을 받고 퇴근 30분 전, 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앞으로 신입 개발협력가의 삶을 종종 지켜봐 달라.



매거진의 이전글 2020 대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