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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Oct 03. 2020

2020 대박

그렇게 썼었다, 스페인 Cádiz에서.


Cádiz, España, 2019.11.06   ⓒ 한서


 귀국 후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을 진짜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스페인을 다녀왔었다. 볼리비아에서 배운 Castellano(스페인에는 다양한 언어가 있지만 우리가 스페인어라고 배우는 그 언어는 카스테야노라고 하는 언어이다.)가 과연 스페인에도 잘 먹힐까 싶은 궁금함, 그리고 10년도 전에 읽었던 손미나 작가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읽고 버킷리스트가 되어버린 스페인 여행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30일이라는 기간 중 15일을 세비야에서 보냈고 나머지 15일을 쪼개고 쪼개 다양한 도시를 방문했었는데 그중에 당일치기로 다녀온 곳이 바로 해변 도시, 카디즈였다.

이 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나의 다른 작품집인 '안달루시아 30일 여행'에 적어둘 것이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이면 빠른 시일 내에 완결하고 싶다. 오늘은 푸른 대서양 바닷가, 부드러운 모래 위 나의 희망을 가득 담은 작고 뾰족한 돌로 '2020 대박'이라고 썼던 것과는 달리 대박적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지는 휴일이라서 사진으로 스페인 여행을 돌아보았다.


2020년부터 진짜 열심히 준비하고 멋지게 살아보리라 생각했던 취업준비생, 나, 박한서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사기가 꺾이기 시작했다. 고향집은 시골이라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에 한계가 있었고 배운 스페인어로 과외를 하며 돈을 벌어들기이게도 스페인어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이 적은 곳이다.(그래서 온라인 과외를 구해봤고 방송국 자료수집 알바도 해봤지만 그게 다였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 내가 생각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울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거나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도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이뤄나가고 있는데, 나는 이 곳에서 이렇게 혼자서 안갯속을 걸으며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비교되었다. 힘들고 우울했다.


3개월~4개월 정도 우울감에 사로잡혔고 나는 다시, 최악의 나를 마주했다. 여자로서 당연히 한 달에 한 번 마주하는 마법에 걸리는 주기도 언제였는지 잊어버렸다. 1년째 월경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산부인과를 여러 곳 방문했는데도 돌아오는 말은 스트레스 '때문일지도'모르니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는 말들 뿐이었다. 1년째 내 몸은 비정상인데, 만나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궁도 건강하고 나의 모든 게 정상이니까 단지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만 말했다. 비정상인데 정상이라니, 나 스스로가 자꾸만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다. 스트레스 관리도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를 자꾸만 의심했다. 내가 미워졌다. 다시 최악의 상황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가게 된 산부인과에서 호르몬 검사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검사 결과, 뇌하수체에서 분비하는 프로락틴 호르몬이 기준치에 20배가 넘게 분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프로락틴 수치가 높은 이유는 뇌하수체에 종양이 있어서 그럴 확률이 높으니 빨리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에 가서 뇌 MRI를 찍어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고프로락틴 혈증이라고 의심되는 상황에 직면해서 나는 이 병과 관련하여 유명한 여러 대학병원 의사들을 찾아보고 검색해보았고 7월, 세브란스 대학병원에서 뇌 MRI를 찍었다. 생각보다 훨씬 큰 종양이 뇌하수체와 좌측 큰 혈관까지 걸쳐있는 상태였다. 보통 이렇게 큰 종양은 수술로 떼어내면 된다지만 내 케이스는 혈관까지 종양이 걸쳐져 있는 상태라 수술을 하기엔 위험해서 장기간 약을 복용하면서 천천히 종양을 줄여나가기로 했다.

내 몸은 비정상인데 정상이라는 사람들의 말이 드디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약을 먹은 지는 이제 2달 반이 지났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월경이 없었다가 약을 복용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부터 다시 월경이 시작되었다. 내가 원래 생리통이 이렇게 심했나,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지 않은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현상이니까, 하면서 버텼다.

그리고 오늘,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후 2달 반, 2번째 월경이  끝나가고 있다. 돌아보면 모든 건 호르몬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우울감, 자살충동까지 들었던 그 모든 순간들은 다 호르몬 때문에 벌어진 생각들이더라고.

그래서 최근 명상을 시작했다. 내가 내 호르몬을 마음대로 조절해서 분비하게 할 수없다면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컨트롤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보다도 긍정적인 생각과 글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인드를 바꿔먹어야 나도 건강해지겠다는 걸 이제야 진짜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2020 대박.'

진짜 대-박적이었지, 내 2020년.

그렇지만 아직 끝나진 않았으니까 앞으로 남은 2달 사이에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좋은 일이 반드시 생겨날 것이다, 내 몸이 좋아지고 있는 것처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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