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Aug 13. 2019

21. 드라마 극본 공모 당선, 그 이후 (2)

그 회사가 당신에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전편에 이어)


선택권이 내게 있다는 건,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

고냐 스탑이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선택이다.


이때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마는데,

하던 걸(이건 이제 '기획 A'라 부르자) 전면 수정하는 것도 어렵고 새 아이템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도 힘들다면,

회사가 제안한 기획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럼 작업하면서 회사 입김에 흔들릴 위험도 덜할 테니까, 어쩌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새 아이템, 찾아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선작과 같은 시기에 작업해두었던 미니 아이템('기획 X')에 대해 설명했다. 다른 공모에 냈었지만 좋은 결과는 못 봤던,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내 취향의 작품이었고, 기획안과 대본 두 개가 준비돼 있었다. 두세 문장 정도 말했을까, PD는 단호한 얼굴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작가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갖고 있던 기획안은 보여주지도 못하고, 생판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건 아니라'는 말에 그럼 '뭐가 맞는 건지' 고민했다. 집에 틀어박혀 머리만 싸매고 있기도 했고, 까페나 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수다를 엿듣기도 했다. 기획 A를 작업하는 동안 거의 보지 못했던 책과 웹툰, 다른 나라 드라마들을 뒤져보기도 했다.


한 달 후, 세 가지 아이템을 각각 A4 한 장씩 정리해 들고 갔다. (먹힐 때까지 아이디어를 내놓는건 보조작가 때 했던 일이지만, 도리가 없다.) 셋 중에 제일 구체화되어 있었던 '기획 B'채택됐다. 거절당했던 기획 X와 가장 거리가 먼 성격의, 기획 A에서 지적당했던 약점도 갖고 있지 않은, 소재도 눈에 띄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수월할 것 같은 아이템이었다. 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마음 졸였었는데, 하나라도 좋은 반응을 얻자 마음이 놓였다. 이제 '내 기획' 갖고 작업하는 거니까, 신나게 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확실히 일에 속도가 붙었다. 생각보다 빨리 기획안 초고가 완성됐고, 이게 기획 A보다 낫다고 자부했다. 담당 PD도 기획안을 마음에 들어했다. '나쁘지 않다'가 최고의 칭찬이었던 사람인데, '재미있다'는 (정확하게는 '나는 재미있다') 말을 처음 해주었고, 내부 공유한 후 피드백을 주겠다고 했다.


명절이 끼어 약속받은 기간보다 피드백이 늦어졌다. 전화나 메일로 줄 줄 알았는데 만나서 얘기하자기에 기분이 쌔해졌다. 반응이 아주 별로거나, 다음 작업을 서둘러야 할 정도로 좋거나, 모 아니면 도겠지 생각하며 회사로 나갔다. 회의실에 담당PD 말고 한 명이 더 들어온다. 당선 축하 식사자리에서 봤던, 국장님이다. 이건 정말 모 아니면 돈데.


"미안해요, 작가님."

뭐가요?

"우리가 아직 이런 걸 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왜요?

"이것도 너무 쎄서..."


순간 정말 쎈언니가 되어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머리 위가 뜨끈한 게 연기라도 나고 있을 것 같았다. 국장은 금세 자리를 떴고, 이젠 담당PD가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는 재미있었는데.' 라며.


'너무 쎈' 걸 두 번이나 써낸 나 자신이 싸이코패스처럼 느껴졌다. 교육원에선 '너무 잔잔하다'는 지적을 받던 나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편성 한 번 받아보겠다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하겠다던 초심은 잃고 자극적인 소재만 찾았던 건 아닐까. 그럼 이걸 '내 기획'이라고 부를 수 있나. 보물처럼 끌어안고 있던 기획 B가 이젠 낯설게 느껴진다. 아주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새 아이템 찾아볼게요."


아직은 이 회사를, 이 회사와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 다시 삽을 꺼내 들고 길을 나서려는 내게, PD는 조금 쉬었다 가자고 말한다. 쉬라고 해서 쉬고 있는데, 며칠 지나지도 않아 다시 연락이 왔다.  


4. 우리 회사는 아니고 다른 회사 PD가 기획안 보고 대본도 궁금하다는데, 대본 써보실래요?


누가? 어떤 안목 낮은 연출자가 그 싸이코패스 쓰레기 같은 기획 B에 관심을 보인단 말인가.


미니 데뷔를 앞둔 PD고, 준비하던 게 엎어져 다른 작품을 급히 찾고 있다고 했다. 편성이 코 앞이라 지금 대본을 써서 들어가는 건 무리다. 땜빵할 작품도 이미 내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저 내 기획안을 재밌게 봤고, 대본도 읽고 싶어 한다는 건데. 바로 촬영에 들어갈 테니 내 대본을 제대로 읽어볼 시간은 몇 달이 지나서야 날 거다. 그때 대본도 좋으니 더 개발해서 다음 작품을 같이 하자고 할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대본 잘 봤고, 앞으로도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래도 내겐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됐다. 현업 PD가 내 기획에 흥미를 보였다는 게. (다시 '내 기획'이란다.) '우리 회사'에선 제작할 일이 없겠지만, 혹시 모를 기회를 위해 대본을 써보기로 했다. 내 기획이니까 대본도 기획 A 때보단 수월하게 써질 거라 생각했다. 콧바람 한 번 제대로 쐬지 못하고 다시 방 안에 틀어박혔다.


그런데.  


"대본이 안 써져요."


이 말을 하면서 어찌나 얼굴이 붉어지던지. 전화 통화였던 게 다행이지.


지망생 시절엔 신나게 썼던 기획안이 막상 대본으로 들어가면 잘 안 풀려서 엎었던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프론데. 하겠다고 한 일을 못하겠다고 말을 바꾸다니. 죽도록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며칠 밤낮을 모니터 앞에 앉아있어도 정말, 한 줄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내 상태를 해석하기 위해, 열심히 이유를 찾았다. '정이 떨어져서'가 애써 찾은 이유다. '지긋지긋해, 헤어져'와 '사랑해, 너 없인 못살아'를 반복하는 못된 애인처럼, 기획 B에 대한 피드백은 모에서 도를 오가며 널을 뛰었다. 변덕을 받아주다 내 쪽에서 사랑이 식어버린 거다. 그리고 식어버린 사랑은 돌이킬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번아웃 상태였던 것 같다. 벌여놓은 걸 수습해나갈 자신이 없어서 식어버린 사랑 어쩌구 하며 도망쳤다.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다. 급하게 써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조금 쉬었다가 다시 부딪혀볼 걸. 이때 선배 작가에게 '대본이 안 써져서 기획을 포기하려 한다'고 말했다가 혼쭐이 난다. 넌 어쩜 니가 만든 인물들을 그렇게 쉽게 버리냐고.


어쨌든. 지쳐서 도망쳤으면 잠시 숨어서 회복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나는 또 삽을 지팡이 삼아 짚고 분연히 일어섰다. 이건 안 써지는데, 지금 당장 뭐라도 안 쓰면 큰일 날 것 같으니까, 다른 걸 써야 했다.


"역시, 새 아이템을 찾는 게 좋겠어요."


5. 괜찮은 소설이 있는데 아직 판권은 못 샀습니다. 각색 작업 해볼래요?


더는 '너무 쎄다'는 이유로 거절당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원래 내 취향인 말랑말랑한 기획들을 들고 갔더니 여지없이 거절당했다. 벌써 계약 기간의 반이 지나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은 편성이라도 확정되고 캐스팅 얘기가 오가고 있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대로 남은 시간도 흐지부지 지나가 버릴까 봐 겁이 났다.


그때 담당PD가 제안한 게 '각색'이다.


신인작가는 각색 작업을 하기로 하고 계약해서 데뷔하는 경우도 많다. 잘 짜여진 장르물이나 대사빨 좋은 로코가 아니면 신인으로선 편성받기가 어려운데, 기댈 원작이 있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원작은 영미권의 로맨스 소설이었다. 순도 100% 로맨스는 즐겨 보지 않던 나지만, 여자 주인공의 일과 성장 이야기의 비중이 더 높았던 이 소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캐릭터들도 마음에 들고, 기대고 갈 기승전결도 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할게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엔 절대 중도 포기하지 말아야지. 기합을 잔뜩 넣었다. 기획 A, B보다 밝은 내용이라, 작업하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남이 쓴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열심히 찾았다. 그렇게 '기획 C'의 기획안 초고를 마무리하고, 내친김에 대본 작업까지 들어가려는데, 담당PD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원작을 가진 출판사에 판권 관련해 레터를 보낸 지 오랜데, 아직 답변이 없다고. 다른 루트로 연락해볼 테니, 대본은 판권이 확정되면 들어가자고.


또 한 번 명절이 지나가고. 오랜만에 만난 PD는 결국 판권을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통보해왔다. 이번엔 사과는 듣지 못했다. 하긴, 판권이 확정되기도 전에 일을 시작하기로 '선택'한 건 나니까.


이제 더는 '새 아이템'을 만들어오겠단 얘기는 못하겠는데, 이번엔 PD가 아이템을 정해준다. 기획 C의 원작 소설은 워낙 남자 주인공의 비중이 적었기 때문에 기획안을 쓰면서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거의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그 캐릭터가 좋으니 남자 주인공 중심으로 새 판을 짜 보자는 거다.


그래. 원작 각색보단 내 오리지널을 쓰는 게 아무래도 낫지. 이거 전화위복일 수도 있겠는걸.

공들여 작업한 것 중에 일부는 살릴 수 있으니 그것도 좋다. 이번엔 삽 들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바로 옆에 있는 땅을 파면 된다.


그렇게 나는 좋아한 적도, 써본 적도 없는 로맨틱 코미디, '기획 D'의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삽을 들고 있는 곳은 로코에 딱 어울리는 꽃동산으로 보였지만, 삽질을 시작해보니 어딜 파도 돌뿌리가 나오는 험악한 돌산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로코를 잘 몰랐다. 담당PD는 제일 좋아하는 장르가 로코였고, 이미 여러 작품을 기획해 본 경험이 있었다. 여자 주인공의 가정환경, 남자 주인공의 성격, 남자 서브의 말투까지, 내가 써가는 건 다 로코에 '맞지 않는' 것이었고, 로코를 '잘 아는' PD의 조언대로 고쳐나가야 했다. 고집을 부려볼 때도 있었지만, 진만 빼고 시간만 허비할 뿐이었다. 나는 '을'이니까. (계약서를 봐도 회사가 갑, 작가가 을이다.) 기획안은 담당PD의 성에 찬 다음에야 기획팀 다른 PD들과 국장에게 공유됐고, 국장의 취향까지 저격해야 편성회의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일단은 어떻게든 담당PD라는 산을 넘어야 했는데, 이번에 내가 '선택'한 기획 D라는 루트는, 기획 A, B, C에 비해 훨씬 길고 험난한 길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고, 담당PD는 '성에는 안 차지만...' 하는 표정으로 이제 기획안을 국장에게 올리겠다고 했다. 나는 대본 작업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 입김에 휘둘려서 만든 캐릭터들을 가지고 제대로 된 대본을 쓸 수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쓰고, 쓰고, 또 고쳐 썼다. PD와의 회의는 늘 전쟁 같았고, 난 백전백패였다. 대본에 내 색깔 같은 건 점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그럴수록 대본에 대한 확신도 자신감도 점점 잃어만 갔다. 내가 내 작품을 포기하는 상태에까지 이르자 PD는 다시 '휴식'을 권했다. 속으론 '미안한데 이것도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을 삼키고 있는 게 보였다.


또 명절이다. 가족을 만나도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는 걸. 몇 달 전만 해도 계약 기간 내에 편성을 못 받을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이젠 이대로 끝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빨리 끝이 오기를 바랐다. 도망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PD에게 연락이 왔다. 나와는 달리 기운찬 목소리다. 국장이 기획안을 마음에 들어하니 빨리 대본을 수정해서 다음 편성회의에 올려보잔다.


......


전에는 PD는 재미있어했던 걸 국장이 자르더니, 이번엔 PD가 애매해하는 걸 국장이 좋다고 하는구나.


나는 누구 장단에 춤을 춰야 했던 걸까.


분명한 건, 이젠 춤출 기운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거였다.


사실 사람마다 피드백이 다른 게 당연한 건데, 그때 난 한 회사에서 나오는 피드백은 일관성이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을 그 피드백 하나하나에 휘청이고 상처 받았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내 작품에 스스로 확신을 갖는 것. ...말은 참 쉽다.


6. 계약기간이 끝났습니다. 연장할래요, 종료할래요? 작가님이 선택하세요.


네, 제가 선택해야죠. 모든 게 제 선택이었구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내린 선택은,


"이만 헤어집시다."


국장이 내 기획안을 좋게 봤다고는 하나, 회사에서 내게 해주는 지원들을 보면, 난 오래전부터 방치된 상태였다. 공모에 당선된, 글 제법 쓰는 신인작가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희미해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태로는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계약 종료를 위한 계약서가 오갔다. 계약기간 동안 작업한 작품의 사용권은 향후 일정 기간 동안은 회사에 종속되고, 이후에도 회사에 우선권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돈 얘기도 빠질 수 없다. 편성이 되지 않은 작품의 기획안과 대본은 고료의 일정 %만 인정해주기 때문에, 3년 전 받은 계약금 중 일부를 반환해야 했다. 처음엔 원천세를 제외하고 반환하면 된다더니, 나중엔 회계상 문제가 되니 원천세를 포함해 반환하고, 세금은 세무서에 가서 반환받으라고 통보해 왔다. 헛웃음이 나왔다. 세무서에서 하는 얘기는 회사와 달라서, 혼자 계산해본 금액의 일부밖에 반환받지 못했다. 어쨌든 그걸로 끝.


끝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담당PD는 '좋은 거' 쓰면 연락 달라며 웃어 보였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다시 연락할 일은 없었다. 아직 좋은 걸 못 써서이기도 하고, '내게' 좋은 걸 가져가더라도 회사의 생각은 다를 터라, 다시 지난 3년이 반복될까 봐 염려되어서이기도 하다.


계약을 마무리할 때 많은 조언을 해 주었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제작사 대표가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해주었지만, 이번엔 덥썩 물어버릴 수가 없었다. 역시, 지난 실수들을 반복할 것 같아서다. 내겐 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왜 나는 규모 있는 회사와 계약하고도 3년 동안 미니 하나를 못 만들어낸 건지 복기하고 반성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 글을 쓰며 그 시간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통렬하게 반성한다.


나는 여섯 번의 선택을 했고, 이제와 돌이켜볼 때 조금도 후회되지 않는 선택은 딱 하나.

마지막 선택뿐이다.




결혼이란 걸 해보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맞춰가며 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싸우기 싫어 참고 참다가 더 크게 폭발하기도 한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와 남편은 5년 동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려 애써왔고, 지금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포개져 있다.


작가와 제작사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회사에 바라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회사가 내게 원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도 회사를 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편성과 방송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보고 손을 잡은 거니까. 싸워도 현명하게 싸우고, 흔들어도 휘둘리지 말고, 상처 줘도 상처 받지 말아야... 정말이지 말은 참 쉽다.


맞춰봐도 맞춰봐도 불량 퍼즐처럼 도무지 안 맞는다면, 헤어지면 된다.

이혼이 스트레스 지수 2위라던가. 성과를 보지 못하고 회사와 결별하는 것도 분명 무척 힘든 일이다.


당신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 해도 너무 풀이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랬다. 드라마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는 늦은 자각에 괴로워했다.

지금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 드라마와 안 맞는 게 아니라, 그 회사와, 그 PD와 유독 안 맞았던 거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준비가 부족했었다고.


3년 동안 많이 힘들었고 그 후유증도 길게 갔지만, 계약했던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돈 주고 못 배울 걸 (소정의) 돈을 받으며 배웠고, 나는 조금 더 나은 작가,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믿는다.

다음에 다른 회사,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땐 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징한 이별이나 이혼을 겪고 나서도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사람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20. 드라마 극본 공모 당선, 그 이후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