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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Mar 14. 2020

임신 10주 차, 아직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언제쯤이면 마음껏 축하하고 축하받을 수 있을까?

오늘로 임신 10주 0일.

지난 수요일 초음파를 보면서 처음으로

사람다운 모습의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안녕?

그 날, 난임병원을 졸업했다.

안녕!


이 글을 쓰기까지 한참을 망설였다.


많은 사람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있고,

그런 죽음들을 멈추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요즘이라서.

내게 온 행운과 기쁨을 뽐내기가 좀 면구스럽고,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

하지만 엊그제 축하 전화를 주신 친지 분의

"요즘 너무 우울했는데 좋은 소식 줘서 고맙다"던 말씀에 어쩐지 기운이 나서

이 곳을 찾아주셨던,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셨던 분들께도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겐 마음 아픈 글, 보기 힘든 사진일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분들의 아픔도 언젠가 끝날 거라고, 머지않아 더 큰 기쁨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이 글은 매거진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난임 이야기를 나누던 매거진에 임신이나 태교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그럼 이젠 좀 마음이 편해졌냐고 물으신다면...

아니요.

아직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스물여덟에 결혼해 스물아홉에 첫 아이를 만난 친구가 있다.

결혼도 아이도 관심 밖이었던 때라 부럽다기보단 신기한 마음이 컸었는데,

딱 하나 부러웠던 건,

임신을 알게 된 날 남편이 꽃바구니를 사왔더라는 얘기였다.


아내가 남편에게 두 줄짜리 테스트기를 보여주고,

남편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하거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거나

아내를 얼싸안았다가 이젠 조심해야 한다며 등짝을 맞거나 하는 장면은

TV에서 참 많이도 봐왔다.


우리에겐 꽃바구니도, 환호나 눈물도 없었다.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을 때도,

안정적인 피검 수치를 들었을 때도,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기쁨은 어정쩡하기만 했다.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한 후에야 좀 마음을 내려놨더니,

갑작스러운 하혈로 다시 패닉 상태가 됐다.

다행히 아이는 잘 버텨주었고,

우리는 하루하루 '덜 위험한' 시기로 나아가고 있다.


남편은 핸드폰으로 찍어둔 초음파 동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임신하고 나서 보인 가장 진한 감정표현이었다.

나는 아직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하는 장면들을 상상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그럼 조용히 밀려오는 행복감에 뱃속이 따뜻해졌다가,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아서 이마가 차가워지곤 한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그 날이 오면

그땐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을까.


그때부턴 아이가 아플까 다칠까

안절부절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겠지.

기다림과 불안과 아픔과 막막함과...

난임이라서 겪었던 그 모든 어려움들이

엄마가 된 내겐 또 다른 모습으로 닥쳐오겠지.

그것들을 끌어안고도 되도록 씩씩하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가야겠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 삭막한 시절이 지나가면

남편과 자주 가던 작고 예쁜 파스타집에 가고 싶다.

마주앉아 잔을 부딪치며 서로를 축하하고 싶다.

아빠 된 거 축하해.

엄마가 된 걸 축하해.


고마웠어.

앞으로도 잘부탁해.


그리고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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