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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Dec 31. 2021

단유에 관한 단상

서운하지? 나도 서운해, 아주 많이...

송이야,


엄만 요새

"사랑하니까 떠나보낸다"는 말이 진심일 수도 있다는 걸, 살면서 처음으로 느끼고 있어.

그만 보내주자, 엄마 찌찌는. 다 송이 널 위해서야.


이제 너 밥도 잘먹고 우유도 먹을 수 있고

샤인머스켓도 엄마보다 많이 먹잖아...

거기에 찌찌까지 먹으면 배 아야 할 수 있어요.


그만 울고. 발버둥 그만. 다리 아파.

엄마가 우리 송이 다리 쭉쭉 해줄까?

너 왜 갑자기 웃어? 눈은 반짝반짝...

아니, 찌찌 아니고 쭉쭉 해준다구!

찌찌는 안 줄거야, 없어, 이제 안 나와~

미안, 엄마가 미안~  여보, 이제 쭉쭉도 금지어야!




100일만, 6개월만, 돌까지만 먹인다는 게

14개월을 넘겨버렸다.

처음엔 모유 양도 적고 자세도 안 나와

고통스럽기만 하던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시간이 되어있었다.


송이에게 젖을 먹이는 시간.


젖먹는 아기의 뽀얀 얼굴을 보는 게 즐겁기도 했지만,

멍하니 티비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는 주로 졸릴 때와 잠에서 깰 때 젖을 찾았다.

물고 자면 치아에 안 좋대서 졸려할 땐 얼른 아기띠로 안아 재웠고, 밤잠이든 낮잠이든 깨서 찾을 땐 양이 준 후에도 그냥 물렸다.

젖을 문 채 서서히 잠을 깨고 세상을 맞는 그 시간을 아이도 나만큼이나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임신 전보다도 많이 빠진 몸무게가 좀처럼 늘지 않자 주변 여자 어른들은 얼른 젖을 끊으라고 했다. 그럼 몸도 덜 축나고 체중도 늘 거라고.

남편은 다른 이유로 단유를 재촉했다. 나랑 다시 술잔을 부딪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겠다고, 끊겠다고 말만 하고 미루고 미루다

아이가 고집이 더 세지면 끊기 어려워질 것 같아

크리스마스날 밤 남편과 맥주 한잔 하고, 그 핑계로 다음날 아침부터 단유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아이에겐 최악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네.


난임병원 다닐 때부터 끊었다가 2년 반만에 마신 맥주는 참 달았다.

하지만 한모금 한모금 마실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목이 막혔다.

1년 넘게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젖부터 물렸었는데.

내일 아침부터 그걸 못하게 된다고?

그럼 뭘해야 돼?


단유 일주일째.

아침에 배시시 웃으며 깨던 이 순둥이는

이제 엉엉 울면서 일어난다. 

자고 일어난 데다 울기까지 해 목이 마를텐데

물병을 쥐어주면 던져버린다.

울음을 그치고 잠이 완전히 깰 때까지 안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티비유치원을 보여주거나 샤인머스켓을 먹이는 등 달래는 법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고, 달래는 시간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아직은  놀다가도 뜬금없이 젖을 찾으며 울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다.

쓴맛 나는걸 바르거나 반창고를 붙이는 방법은 왠지 쓰고 싶지 않았다.

아이도 옷을 들추거나 가슴을 만지는 법은 없다.

그저 내 가슴을 향해 손가락질만 하며 운다.

달랄 때마다 주더니 왜 갑자기 안 주냐고,

어째서 사랑이 변해버린 거냐고, 원망하는 얼굴로.

그냥 다시 줘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게 쉽지 않다.

다시 줘버리면,  겪어내야 한다. 불어서 아프고 불편한 가슴도. 죄인 된 것 같은 묘한 죄책감과 미안함도.


아이의 서운함은 점점 줄어들겠지.

얼마 안 있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 거다.


나만 기억하겠지. 젖을 먹고 먹이던 시간은.

단유하면 호르몬 변화로 우울해질 수도 있다던데,

우울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크다.

한 시절이 끝나버린 것 같은 서운함.


어쩌면 나는 이 시절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내 품에 쏙 들어오고,

뭘 억지로 가르치거나 혼내야 할 일도 없고,

괜히 기싸움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주고받을 일도 아직은 먼.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시절.


사후세계를 다룬 한 영화가 떠오른다.

앞으로 영원히 머물게 될, 인생의 한 순간을 고르도록 했던.


지금의 나라면 망설이지 않고 고를수 있다.

낡은 쇼파에 앉아 아침 햇빛을 받으며,

우리 둘다 잠은 아직 좀 덜 깼고,

...송이를 안고 젖을 물리던 순간.


벌써 그립다, 너무너무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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