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Dec 18. 2020

어둔 날에도 밝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To my song : 나의 송이, 나의 노래에게

송이야.


지난 주말에 큰 눈이 왔었는데

오늘 아침 창밖에도 눈이 포근히 쌓여있네.

눈 내린 풍경을 보는 일은 질리지도 않지.

송이 네 얼굴을 볼 때처럼.



눈오는 날이면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가 있어.

"송이 송이 눈꽃송이"로 시작하는 노랜데, 뱃속에 있던 네게 자주 불러줬었다.

네 태명이 듬뿍 들어있는 노래여서.

널 가진 걸 알았던 날 눈이 내렸어서.

뱃속에서 들었던 걸 기억하기라도 하는지

지금도 이 노랠 불러주면 넌 눈이 가물가물하다

잠이 들곤 하네.


물론 항상은 아니고,

다섯번에 한번쯤은 말야.




송이태어나고 벌써 두달이 지났다.

아이는 태어날 때의 1.5배로 무거워졌고

그만큼 여물었다.


태교일기를 쓰겠다고 매거진 제목을 지어  적어두었었는데, 결국 한줄도 쓰지 못했다.

처음엔 마음이 편치 못해서.

나중엔 몸이 힘들어서.

육아일기라도 써야지 생각만 하 오늘에야 자판을 열어본다.

아직 혼자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서.

이제야 아이를 한팔로 안는 게 편해져서.


아이는 엊그제부터 제 손을 입에 넣고 빨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준을 잘 못해 자기 눈두덩일 자꾸 쥐어박더니, 이젠 제법 신속 정확하게 목표를 달성한다. 베개에 걸린 손을 찾지 못해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달래주지 않고 보고 있을 때도 있다. 미안.


아이는 이제 딸꾹질이 나도 울지 않는다.

모음 뿐이던 옹알이에 자음이 섞인다.

콧구멍이 두배로 커져서 코딱지가 껴있어도 숨못쉴까 걱정할 일은 줄었다.


세상은 멈춰선 것 같은데

아이는 하루하루 달라진다.

제 갈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해를 견디기 어려웠을 거다.

많은 이들에게 신나는 일이라곤 없는 한해였을 텐데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신나는 노래를 부른다.

아이가 웃어주니까. 그럼 나도 웃을 수 있다.

그러다 나만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걸까,

등뒤가 서늘해진다.


아이 덕분에 나는,

내일은 오늘과 다른 날이 될 거라 믿을 수 있다.

어둡고 추운 날이 영영 이어질 것 같은 겨울이지만,

오늘밤엔 모두가 각자 저녁밥을 지으며, 샤워를 하며, 요즘들어 부쩍 많아진 TV 오디션 프로를 보며 밝고 따뜻한 노래 한 곡 흥얼거릴 수 있기를.

저녁뉴스는 씁쓸해도 밤잠은 달게 자기를.

그렇게 내일 하루 또 버텨낼 힘을 얻기를.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쓴 이 글이 누군가에게 한 곡의 노래로 가닿을 수 있기를 빈다.

송이가 내 삶의 노래가 되어주는 것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