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Feb 21. 2022

곱슬머리가 닮았네. 그거 하나 닮았어.

나를 닮은 아이를 보는 기분은 어떤가요?

첫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던데,

송이는 영락없는 아빠 판박이다.

쌍거풀 없는 눈, 도톰한 입술, 피부톤에 뼈대까지.


시부모님은 물론 시가 쪽 친척들은

아기가 아빠 어릴 때랑 어쩜 이리 똑같냐며

놀라워하고, 또 즐거워한다.

한두번도 아니고 그런 얘길 반복해 듣다보면

(이미 알고 있는데도) 조금 맥이 빠지고 만다.

사랑하는 남편을 빼닮았으니 그걸로 기쁘다고 좋은 얼굴로 말하고 싶지만... 아니!(기쁘다도 아니고 사랑하는도..., 아닙니다) 솔직히 서운하다. 어쩐지 속좁게 느껴지지만, 약이 오를 때도 있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때, 아이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 그리고 송이를 품고 있던 시간 내내 나는, '나를 닮은 아이'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나와 똑닮은 아주 작은 인간을 마주보면, 너무 신기하고 애틋할 것 같았다.

데 내가 아닌 남편 미니미가 두둥, 등장한 거다.


친정 식구들이나 내 친구들은 듣기 좋으라고 날 닮은 부분을 짚어줄 법도 한데, 그런 말은 한번도 못 들어봤다. 찾을래야 찾기가 힘든가보다.

하긴, 내가 못 찾는 걸 누가.

낳자마자는, 신생아 땐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빠를 닮는 법이라는 말을 위안삼았는데, 클수록 아빠 얼굴 쪽으꾸준히, 한발짝 한발짝 가까워지고 있다.

중학생 쯤 돼서 덩치까지 비슷해지면, 송이아빠가 속썩일 때 송이한테 꿀밤이라도 주고 싶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한때는 (산후우울증 비슷한 걸 겪던 시기에는) 시험관 과정에서 난자가 바뀐 건 아닐까하는, 드라마에도 안 나올 해괴한 상상까지 해봤다.

날 안 닮았다고 내 자식이 안 예쁜 건 아닌데,

가끔 서운을 넘어 서글퍼지기까지 하는 내 자신이 이상했던,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발견하고야 만다.

나를, 이 엄마를 닮은 구석을!


아기 머리카락이 어느정도 길어지자

짧을 땐 안 보이'곱슬기'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아침이면 사방팔방으로 뻗쳐있었고, 저녁까지 그 기세가 죽지 않았다.

배냇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을 땐 매트에 떨어진 아기 머리카락 중에 특히 구불거리는 걸 찾아들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미용실 갈 때마다 마법, 아니 매직을 강권받는 나를,

어쩌다 마음이 동해 그 매직을 받겠다고 하면 스탭 세 명은 달라붙어 땀을 뻘뻘 흘리게 되는 내 머리를,

우리 송이가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하하!

그럼 그렇지, 내 뼈와 살을 그렇게 가져가놓고, 그 증거 하나 남지 않았을 리가 없다!


... 미안, 송이야.

이왕이면 좋은 걸 가져가지 그랬니.

사춘기가 되고 자기 외모에 몰두하게 되면 이게 꽤나 큰 고민거리가 될수도 있는데 말이지.


물론 지금의 송이는 자기 머릿결에 아무 관심이 없고, 엄마인 나만 가끔 곤란해질 뿐이다.

빗질할 때 자꾸 엉켜서 아플까봐.

사진엔 더 부스스하게 보여서.

어릴 때 굳이 미용실을 자주 가야 하나 싶어 단발까진 길러볼 생각이었지만, 상상했던 - 육아예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 윤기나는 바가지머리는 도저히 안될것 같고,

사극에 나오는 각설이나 망나니처럼 되기 전에 잘라줘야 하나 고민이 되고.

아... 근데 그게 또 너무 귀여울 거 같기도 하고!

흐흐. 또 미안, 송이야.


머릿결 하나 닮은 걸로 이렇게 웃고 울고 호들갑떨 수 있는데,

얼굴까 요목조목 나랑 닮아 있으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남편한테 물어보면 "신기하지!" 재미없는 대답 뿐이고.

나 닮은 아기 보겠다고 이 소박한 형편, 더더욱 소박한 체력에 또 낳을 수도 없고.

또 낳는대도 이번엔 날 닮을 거란 보장도 없네.

근데, 닮았다고 송이보다 더 예쁠까?

그럴 수가 있을까?사람이 사람을 이보다 더 예뻐할 수 있나?


어떻게 해도 궁금증은 안 풀릴 것 같고,

지금은 그저 생각날 때마다 (아빠 몰래) 송이를 훈련시킬 뿐이다.


우리 송이, 누구 아기야?

물으면,

엄마 아기!

대답할 수 있게.


아직  말 못하는 아기는 배시시 웃으며 엄마 어깨를 콕 찌른다.

그럼 또 괜한 서운함과 없는 궁금증은 사르르 녹아버리고 만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으로 아이를 울리고 말았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