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럽의 스트렝스 파인더, 즉 강점 테스트를 했다. <다능인의 성장 기록>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내 강점으로는 복구, 발상, 지적 사고, 전략, 존재감이 나왔다. 첫 번째로 나온 '복구' 테마가 가장 두드러지는 강점이었는데 이는 쉽게 말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1. 타인에게 유감을 표하기보다는 자신의 단점 극복에 집중한다.
2.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개선할 부분을 파악한다.
3. 개인적/직업적 발전을 원한다.
4. 취약한 부분을 찾아 고치는데 집중하면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신기하게도 모두 맞는 말이었다. 의외인 점은 나는 여태까지 단점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은 강점이었다는 것 정도. 우선 나는 문제점을 빠르게 찾아내는 편이다. 어떤 제안을 들었을 때 '이 부분이 문제가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팍 떠오른다.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에 집중하는 것 같아서 싫었고,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비판적인 것 같아 싫었다. 다른 사람이 열심히 떠올린 아이디어에 괜한 태클을 거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떠오른 문제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더라도 그냥 나 혼자 속으로 미안해했다.
두 번째로,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은 '결핍'이었다. 단순히 어떤 분야를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 잘 없다.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못했다면,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면 극심한 괴로움과 함께 결핍감을 느끼고 그제야 노력하기 시작했다. 부족함을 느끼고 결핍을 원동력 삼아 발전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런 내 성향을 대학생 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수능 성적이 평소처럼 나오지 않아 원하던 대학에 원서조차 내밀지 못했고 결핍감을 가진 채로 다른 대학의 문턱을 밟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의 내 목표는 편입이었다. 입학 전부터 토익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학기 중에는 열심히 학점관리를 하고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러나 학점은 공부만으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큰 문턱이 있었으니 바로 '발표'였다. 첫 발표는 5분짜리였는데도 너무 떨려 우황청심환을 먹고도 덜덜 떨었다. 앞으로 더는 발표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과는 특이하게도 교수님께서 발표 과제를 정말 많이 내주셨는데 나는 일단 피하고 봤다. 조별과제가 생기면 "내가 발표 빼고 다 할 수 있어. 자료조사, PPT까지 다 할게. 대신 발표만 해 줄 사람?"이라는 말로 선수를 치고 빠져나갔다. 그러나 모든 조원이 돌아가며 발표를 해야 하는 수업도 있었다. 역시나 떨리는 마음을 안고 어영부영 발표를 한 뒤 자리에 앉는데 문득 '현타'가 왔다. 나 왜 이러고 있지? 아직 1학년밖에 안 됐는데. 남은 생활도 이렇게 발표 못하는 채로 보낼 건가? '현타'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결핍감이 온몸을 휘감고 나를 자괴감의 나락에 떨어뜨렸다. 그때 다짐했다. 나 이거 극복해야겠다고.
서점으로 달려가서 각종 책을 읽어봤다. 프레젠테이션 하는 법, PPT 만드는 법 같은 기술적인 면을 다룬 책부터 사람의 심리나 뇌 인지에 초점을 맞춰 발표할 때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하는지, PPT 화면 구성은 어떻게 하고 내용은 얼마나 담아야 하는지 등...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파워포인트 책을 사서 따라 하며 기술을 익히고 틈만 나면 공모전 수상작을 찾아보며 감을 잡았다. 다음 학기 수강신청은 무조건 발표가 많은 수업으로 했다. 수업계획서를 읽어보고 발표 수업이 있다고 되어있으면 무조건 신청했다. 교양까지. 그리하여 그다음 학기 수업에는 단 한 과목도 빠짐없이 발표가 있었고, 나는 모든 수업에서 발표를 맡아했다. 조별과제가 생기면 "따로 하고 싶은 사람 없다면 발표는 내가 할게. PPT도 내가 만들고. 괜찮지?"라는 말로 선수를 쳤다. 공부했던 내용을 참고해서 열심히 PPT를 만들고 대본을 썼다. 그리고 그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 눈 감고도 줄줄 읊을 수 있도록. 다음에는 빈 강의실을 찾아다니면서 PPT를 앞에 띄우고, 마이크를 잡고, 혼자 발표 연습을 했다. 강의실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으면 질리듯 외웠던 대본도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막히는 부분을 찾아내고 다시 연습했다. 우리 단과대학에는 대학원 수업이 없어서 강의실 문을 일찍 닫았기 때문에, 저녁에는 언덕 위 문과대, 사회대까지 올라가 빈 강의실을 찾았다.
그 뒤로는 발표를 잘한다는 칭찬을 안 들은 적이 없다. 편입한 학교에서는 PPT 공모전에 나가 상금도 탔다.
이 외에도 못하는 것에 집중해 발전했던 일이 크고 작게 많았다. 토익을 공부할 땐 리스닝이 안 되는 게 싫어 하루에 몇 시간씩 LC만 공부해 결국 LC 만점을 받아냈고, 영어가 잘 안 읽히는 게 답답해 원서강독 수업에 나가고 매일 영어 원문을 읽고 번역해 이코노미스트 번역 파트너가 되기도 했고, 꾸준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성격이 싫어 '100일 글쓰기'수업을 들으며 100일 동안 빠짐없이 글을 쓰기도 했고, 화장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1:1로 메이크업을 배우기도 했고, 사진 찍히는 일이 어색한데 그것을 탈피하고자 얼마 전에는 스튜디오에 가서 모델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발전을 했으니 결과적으로 볼 땐 좋았지만, 그 원동력이 결핍이라는 게 싫었다. 단어부터 부정적이었으니까. 예전에 회사에서 다른 코치님들과 대화를 나눌 때 한 명씩 돌아가며 각자 삶에서 중요한 것, 원동이 되는 것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모두 긍정적인 단어를 말하신 반면 나 혼자 부정적인 단어를 말해 스스로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스트렝스 파인더에서는 이것이 내 강점이라고 한다. 자문자답으로 스스로 더 잘했을 수도 있던 것을 파악하고, 발전하려고 하고, 문제 해결을 즐기는 성향이라고. 문제 해결을 대가로 보수를 받는 일을 하면 좋고 이에는 고객 서비스, 컨설팅, 프로그래밍 등이 있으며 자신에게는 좀 더 관대 해지라고 한다.
단점도 어떤 상황에 적용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강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